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
언제 : 2020년 7월 25일 토요일
어디 :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전철 안에서 내 앞에 베낭을 맨 두 사람이
오산 독산성이 있는데, 풍광이 아주 뛰어나다며 옆 친구에게 꼭 한번 가면 후회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귀가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니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하며
선조 25년(1592)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하여 임진왜란 승기를 잡는데
결정적 계기를 만든 곳이란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장맛비 잠시 그치고 날 선선하다.
전철 세마역에 내려 버스 기다리는데, 20여 분 기다려도 버스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도를 보고
12:40
걷기 시작했다.
평소 여름날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 할 터이나 비 온 뒤라 걸을만 하다.
25분만에 독산성 입구에 도착하여 세마대지까지 다시 오르막길을 땀 흘려 오르니
13:25
독산성 세마대에 섰는데 비 개인 후라 시야가 확 트여 정말 멋지다.
북으로 인천 송도 고층군과 관악산과 삼성산이 뚜렷하고, 잠실 롯데빌딩이 광교산 어깨에 고개를 내밀고,
동으로는 동탄 신도시 4개의 고층 빌딩과 초록의 야산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남으로는 평택은 물론 천안 광덕산까지는 높은 산이 없어 시원하고
서으로는 서해대교 아치와 멀리 가야산인 듯한 거대한 산이 조망되어
왜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인지를 알 수 있었고,
코로나 19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오랜만에 가슴 뻥 뚫리는 풍경에 흠뿍 젖었다.
권율은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영의정까지 지낸 권철이다.
권율은 과거 공부보다는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니며 지리를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과거 공부를 시작해 45세에 관직에 오른다. 권율은 다른 사람에 비해
매우 늦게 관직에 올랐고 성적도 중하위에 속해 있어 출세가 보장된 중요한 자리도 맡지 못했다.
권율은 여러 관직을 거치다 55세의 나이에
광주 목사가 돼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1592년 7월 전라도 남원 지역에서
1천여명의 군사로 1만5천여명의 왜군에 맞서 승리(이치 전투)한 권율은 그해 12월 오산 독산성에서도
5일 동안 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독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권율은 명군과 연합해 한양을 되찾기 위해 행주산성으로 군사를 옮겼다.
1593년 2월 3만명의 왜군이 7개 부대로 나뉘어 행주산성을 공격했다.
성을 지키는 병력은 수천여명에 불과했지만 권율은 2중으로 두른 목책과 아래에서 올라오는 왜군을 공격할
화포와 석포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변이중이 개발한 화차 등 왜군보다 우수한 무기도 갖추고 있었다.
결국 조선군은 승병들의 활약과 아녀자들이 날라준 돌까지 던지면서 싸워 왜군을 격퇴시켰다.
행주산성의 승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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