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담으로 간 차이나 타운
언제 : 2020년 4월 11일 토요일
어디 : 인천 중구 북성동2가 14
코로나 19로 외출하지 않으니 일주일이 무의미하게 지난다.
지금쯤
여의도는 벚꽃이 만개하여 볼 만할 터인데, 볼만한 곳은 통제한다기에
집에서 가까운 인천대공원 벚나무가 오래되어 꽃이 볼만하기에 사진을 담으로
인천대공원에 가니 모든 입구를 통제한다.
어디로 갈까?
이번에는 월미공원 벚꽃길이 나름 운치가 있어 월미공원에 가니 그곳도 통제하여
그러면 자유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
인천 차이나타운을 거쳐 자유공원 벚꽃을 보러 가니 자유공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니 점심시간도 지나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들고 차이나타운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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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가
인천 역에서 본 차이나타운 입구 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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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 가는 길
평소에 주말이면 매우 혼잡한 곳인데,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로 이곳 역시 사람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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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박물관
이곳도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당분간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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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京劇 : Peking Opera)
베이징(北京)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고 하며
서피(西皮). 이황(二黃) 2가지의 곡조를 기초로 하므로 피황희(皮黃戱)라고도 한다.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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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성당
1960년 당시, 이곳 차이나타운에는 4,000여명의 중국화교가 거주하고 있었고,
소수의 화교 카톨릭 신자들은 답동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황을 하였다. 그러나 중국 화교 신자들의 언어 소통과
민족 이질감으로 화교들을 위한 성당을 절실히 요구하게 된다.
이에 미국 메리놀회에서 1960년 7월 17일 화교를 위한 선린 성당을 설립하고 중국 만주에서 사목 경험이 있고,
중국어에 능통한 고요셉 신부를 초대 신부로 임명하게 된다. 현 성당 건물은 초대 신부의 노력으로
1966년 6월 9일에 완공된 건물이다.
설립초기에는 중국 화교를 위한 성당이었으나 초대 고요셉 신부가 노환으로 귀국하고,
중국 화교 신자는 감소하게 되고, 관할 구역 내 한국인 신자 수 증가로 한국인 성당이 필용하게 됨에 따라,
1972년 10월 1일 해안 성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한. 중 함봉 본당으로 운영되다 그 후 화교 신자가 감소함에 따라 한국인 성당이 되었으며,
1981년 2월 최기산 보니파시오 신부(전 인천교구장)가 첫 한국인 사제로 부임하였다.
현재 해안성당은
이 지역에서 치명 당하신 10분의 순교자를 기리는 제물진두 순교 성지를 관활하고 있다.
국수의 역사
차이나타운에 오니 국수의 역사도 알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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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거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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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주지역
중학생 때 어쩌다 기차로 인천에 놀러와 이곳 차이나타운을 걸으면 이곳에서 영화촬영을 많이 했다.
그때는 독립군 영화가 많아
이곳 중국인 마을에서 영화 촬영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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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중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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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가는 길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 벚꽃 구경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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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출입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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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차이나타운에서 바라본 인천항과 월미도/월미도에는 산벚꽃이 피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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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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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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