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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고흥) 소록도 중앙공원과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

 

소록도 중앙공원과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을 나서니 어느새 해가 서산에 기울고 있다.

 

내 어렸을 적,

어머님 따라 교회에 갈 때면, 교회 언덕 아래 토굴을 파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한센병 환자들을

기억한다.

 

마을을 들어서려니

외부 방문객 출입 금지라는 간판이 떡 버티고 서 있고, 자원봉사자인 듯한 건장한 두 남자가 길을 막으며,

중앙공원 가는 길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란다.

 

마을 교회도 둘러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부탁하기도 어려워

할 수 없이 발길을 중앙공원으로 돌린다.

 

중앙공원 올라가는 길옆에는

소록도 한센인들의 감방이라고 할 수 있는 갱생원인 강금실과 검시실이 있는데,

늦은 시간이라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돌아섰는데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자료를 찾으니 그곳에서 엄청난 고통과 치욕적인 짓들이 벌어진 현장인 것을 알고

자세히 둘러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외부인 출입금지

 

한센병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해가 벌써 서산에 기울고 있다.

둘러볼 것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현재의 병원본관

 

 

한센병 박물관

 

 

식량창고

 

 

 

 

 

 

 

 

 

 

 

 

 

 

 

 

 

 

옛 녹산초등학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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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실

등록문화재 제67호

 

 

소록도 중앙공원 들머리에는 1935년 지어진 감금실이 있다.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설치된 감금실은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아 만든 H 형태의 건물이다.

15칸 방에 딸린 철창과 방 한쪽에 마련된 변기가 마치 교도소와 같다.

감금실은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거나 도망쳤던 환자들을 잡아 가둔 곳이다.

이곳에 끌려온 환자들은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됐다.

환자들은 감금실을 나가면 옆 건물 검시실 단종대 위에서 단종수술(정관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감금실 벽에는 스물다섯 나이에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은 '이동'이라는 환자가 쓴 시가 남아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후략)"


감금실 옆에는 검시실이 있다. 한센병 환자가 죽으면 검시실로 옮겨진다.

사망 원인을 알아낸다는 명목으로, 사망자들은 해부를 당했다.

해부를 마친 시신은 간단한 장례절차를 거친 뒤 화장을 했다.

 

한센병 환자들은 태어나 세 번 죽었다.

한센병이 발병했을 때 한 번, 해부될 때 두 번, 그리고 화장터에서 소각될 때 세 번.

 

 

검시실

등록문화재 제66호

 

감금실 바로 옆 붉은 벽돌집이 하나 더 있다.

같은 해 지은 검시실이다.

수도꼭지가 2개 달린 먼지 쌓인 침상이 한가운데 놓여있다.

한센병 환자들은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사망 원인 조사를 이유로 부검 당했다.

 

 

 

 

구라탑

구( 구원할 구 救)   라(문둥병 라 癩)

"한센병은 낫는다"

 

 

한하운 - 보리피리 詩碑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리리

 

 

평생을 나병으로 고통받은 시인인 한하운의 시는

인간의 고통과 절망이 극한적 상황에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가,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병이라는 천형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기보다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데,

그것이 그의 시에서 뿜어내는 서정이며 빛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

 

 

 

 

 

 

 

 

 

 

소나무

소록도의 애환을 혼자의 가슴에 안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이 소나무 삶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다를바 없다.

 

 

동백꽃을 담느라.....

 

 

 

 

소록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사람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백년 한센병을 이겨냈던 그들의 흔적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2005년 11월 23일,

소록도의 집집마다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두 간호사가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고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천막을 치며 간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천막을 접어야할 때인것 같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이 큰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고

헤어지는 아픔을........

 

 

 

 

소록도 중앙공원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낮에 보았던 소록대교도 석양에 물들고 어선들은 서둘러 녹동항으로 달린다.

 

계획으로는 오늘 거금도까지 둘러보아야 내일 일정이 차질 없을 터인데

이미 해는 저문다.

 

내일 일정은 녹동항에서 일찍 남열해변으로 이동하여 일출과 남열 우주전망대에 올라 다도해를 보고

나로도 우주센터로 이동하여 관람을 마치고

오후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여행길에서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최소한 여행지와 주변에 대해 공부를 하고 지형도 인터넷으로 살펴보고 떠나야 하는데

느닷없이 훌쩍 떠났다가 현지에서 일정에 차질을 빗는 때가 있다면

이번 소록도 여행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