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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문경) 사적 제147호 및 명승 제32호 : 문경새재 조령관 풍경

 

명승 제32호 : 문경새재 조령관 풍경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 6.5km

걸어서 약 2시간 30분 왕복 13km 약 4시간 소요되지만,

주차장까지 생각한다면 왕복 15km로 쉽게 생각하는 트레킹 코스는 아니다.

 

여행의 시작은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저 산 너머에는 어떻게 생겼으며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나 역시

10년 전에 문경새재를 걸었기에

이번 문경새재 트레킹은 주흘관에서 조령관을 넘어 수옥폭포까지 문경새재 일주를 생각했는데,

갑자기

동행인의 다른 일로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괴산군 연풍면 수옥폭포 방향에서 조령관까지 걸어볼 이유가 생겼다.

 

 

조곡폭포

 

 

 

 

조곡관 = 영남 제2관문

 

 

 

 

조곡약수

이 약수는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청산계곡 사이로 흐르는 용천수로서 물이 맑으며 맛이 좋아

길손들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주는 영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문경새재길을 걷기 위해 주흘관을 출발하여 조령관을 향하나

조곡관까지 약 3km를 걷고는 

포기하여 영남 제 2관문인 조곡관에서 영남 제 3관문인 조령관까지 가는 길은 조용하고

 사색하며 걷기 좋다.

 

 

 

 

 

 

 

 

 

 

바위굴과 새재우

옛날 갑작스런 소낙비로 이 바위굴에 들어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진 후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성장하며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이 심하므로

어머니가 자초지종과 함께 아비의 엉덩이에 주먹만한 검은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후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던 중 어느 깊은 산골 주막에서

중년의 선비가 "어허 그 빗줄기 마치 새재우 같구나" 함으로 아이가 "새재우"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 부자지간 임을 알게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청춘남녀가 이곳에 들면 사랑과 인연이 더욱 깊어져 평생을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귀틀집

주로 산악지대에서 사용되던 한국식 통나무집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물정(井)자로 모양이 되고

"방틀집" "말집" "목채집" "틀목집" "투방집" 혹은 정한식(정한식)집" 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말까지

화전민의 귀틀집이 문경새재 주흘산 등산로변에 남아 있었으며, 현재 울릉도 나리분지에 남아있는

귀틀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방법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엇물리는 네 귀가 잘 맞도록 아귀를 지어 놓으며, 나무사이에는 진흙을 발라

보온성이 좋고, 특히 자연 소재 그대로 주거생활에 반영해 습기조절, 산림욕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오늘날 옛 형식을 보완하여 웰빙 주거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양지 녘 개울은 맑은 물이 내리고

북쪽 개울은 아직 얼음이 녹지 않고 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한마디!


발원지라 함은 흐르는 물줄기가 처음 시작한 장소를 말한다.

낙동강(洛東江,)은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되어 영남 지방을 통해 남해로 흐르는 강으로,

태백시에서는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 삼척도호부편을 근거로 "황지연못"을 낙동강 발원지로 주장하나

학계에서 현지답사한 결과 "너덜샘"이라고 한다.

황지연못을 상징적인 발원지로 보고 실제 발원지는 금대봉 남쪽 계곡(너덜샘)으로 봄이 타당하다.

(위키백과)


그런데

문경초점을 낙동강 발원지라고 하면 옳지 않다.

문경초점에서 시작된 물은 상주에서 낙동강 본류와 합수되니 낙동강 수많은 지류 중의 하나일 뿐

본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령악수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넘나들 때 타는 목을 식혀주던 역사 속의 명양수로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하는 백수령천(百壽靈泉)이라고 했다.

 

 

조령산신령각

 

새재 산신령의 전설

 

조선 태종 때 처음으로 조령의 길을 개척할 때의 일이다.

문경현감이 긴급히 조정에 장계(馳하여야 할 중대 안건이 있었다.


문경새재를 넘어가는데 새재의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역졸이 호환(虎患)을 당하였다.

이 장계를 받은 태종은 대노하여

즉시 봉명사(奉命使)를 차원(差員)하여 문경새재 산신령을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봉명사는 문경새재에 도착하여 산신령을 포박하려고 하나 산신령을 잡을 묘안이 나지 않았다.

궁여일책으로 새재 산신사(山神祠)에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한 후 제문을 불사르고

혜국사에 머무르면서 기다렸다.


그날 밤 만월인데 삼경쯤 되어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호랑이 울부짖음이 일어나더니 잠잠해진다.

그 이튿날 새재 산신사 앞마당에 대호(大虎)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봉명사는 그 호랑이를 박피하여 태종대왕께 호피를 바치고 사실을 상주(上奏)하였다.


그후부터 문경새재에는 호환이 사라졌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전진공(錢珍公 : 聞慶錢氏 2世祖)이 혜국사에 유숙하여 있는데 그의 꿈에

새재 산신령이 현몽하기를 '나는 새재 산신령이요 나라에 득죄하여 아직 면죄를 못 받았으니

그대가 나를 위해 나라에 상소(上疏)하여 억울한 죄명을 씻어줄 수 없겠는가?'하고 간청했다.

 

그는 쾌락(快諾)하고 즉시 새재 산신령에 관한 사죄상소를 올렸더니

태종께서 친히 비답(批答)을 내리시어 새재 산신령의 죄를 사(赦)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드디어

문경새재 제 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다.

이쪽은 경상북도 문경이고 저 너머는 충청북도 괴산군이다.

 

 

문경 현판 - 영남 제3관문

괴산 현판 - 조령관

 

 

 

 

정약용 시비(詩碑)

 

 

 

 

 

 

연풍새재 일출

작가 : 곽 원 준 - 2013년 11월 1일

 

조선 제일의 고개 연풍새재.

그 길의 중심에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과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하여

"생명과 태양의 땅 충청북도"

의 희망과 미래를 표현했다네.

 

 

연풍새재비

이곳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이다.

 

 

 

 

조령관에 서



흰 머리칼 날리며

옛길

걸으니


 


새재 넘는 바람

아직

차건만


삼월 초

솔향

그윽하여 낯설지 아니하다

 

 

지나온

회한 많아


어지러운

마음

달래려


얼음

깨어

백수령천(百壽靈泉) 한 사발 마셨더니

 

투덜투덜 말 듣지 않는다

 

어화

벗이여!

 

높고

낮은 산봉우리

어디서 생성하여 예까지 왔는지

 

물은

서 시작하나

어디로 가는지 굳이 알려 하지 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