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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3) 목민심서 ‘부임’편 6번째 항목 ‘이사’ 원활한 민관 소통이 적폐 청산의 첫걸음

 

(3) 목민심서 ‘부임’편 6번째 항목 ‘이사’ 원활한 민관 소통이 적폐 청산의 첫걸음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1호가 적폐 청산이었다.

 정부는 각 부처나 기관별로 적폐청산위원회를 조직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다산은 200년 전부터 적폐 청산의 중요성을 인식해왔다.

면 단위로 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된 내용의 결론을 관에 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민심서 12편 중 제1편 ‘부임’편의 6번째 조항 ‘이사’에는 적폐 청산과 관련된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이사’란 목민관이 임지에 부임해 실무를 살펴보며 행정을 직접 시행함을 뜻한다.

그동안 한 고을을 맡아 정사를 펼쳤던 구관 사또가 떠나고 신관 사또가 부임해 모든 절차를 마치고

실무에 들어가는 단계다.

이사 조항에 열거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산의 개혁적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은 목민관이 업무를 시작하는 날

관내의 사족(士族)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공문을 내려 이같이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관(本官)이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니지만 과분한 나라의 은혜를 입고 이 고을에 부임했다.

아침저녁 근심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다. 묵은 폐단이나 새로운 병폐로 백성들의 고통이

 되는 것이 있으면 한 방(坊, 특정 구역) 중 일을 잘 아는 사람 5∼6명이 한곳에 모여

조목(법률이나 규정 등의 항목)을 의논하고 문서를 갖춰 가져오게 하라. 혹 한 고을 전체에 해당되는

폐단과 1방, 1리의 특수한 고통은 각각 한 장 종이에 쓰되 방마다 하나의 문서를 갖춰 7일 이내로

함께 와서 바치도록 하라.”

구악(舊惡)이나 신악(新惡), 구폐(舊弊)나 신폐(新弊)를 가리지 않고

그동안 쌓였던 적폐(積弊)를 샅샅이 올려 바치라는 내용이다. 다산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예상하고 처리 방법도 제시했다.

▶백성이 목민관 믿고 편히 생각하게 만들어야

관청 앞에 큰 북 설치해 백성 민원 파악하고

집무실 옆에 고을 지도 두고 지리 숙지해야

“어떤 경우 아전·군교·토호들이 들으면 싫어할 일이 있어 후환이 두려워 드러내어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각각 엷은 종이로 풀칠해 봉하고 그 바깥에 표시한 뒤

어느 날 정오에 함께 읍내에 들어오고 또 함께 관청의 뜰에 와서 본관의 면전에서 직접 바치도록 하라.

어떤 간민(奸民)이 있어 문서를 고치거나 삭제한다면 적발해 엄한 징계를 내릴 것이다.

이 점을 익히 알라. 여론을 수집하기는 쉬우나 개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칠 만한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것이야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오늘에 들떠 날뛰지 말며 다음에 실망하지도 말라. 면이나 마을의 사사로운 폐단이나 혹 사심을 품고

사(私)를 끼며 헛되이 과장하거나 그 실상을 감추거나 뜬소문을 꾸미는 사람이 있으면

결국 죄를 받게 될 것이니 조심하라.”

오늘날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가 어떻게 그 고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논의구조를 만들어 그동안 고을 내 발생하던 부정과 비리, 관행이나 악습 등을

자세히 파악해 개혁하고 시정하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지적해 여론을 수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고치고 바꾸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새롭게 사또가 부임했으니,

온갖 비리와 부정이 시정되고 새로운 개혁이 이뤄지리라 믿고 그냥 날뛰거나 과장된 이야기를 퍼트려서도

안 된다는 말에 의미가 크다.

다산은 당장 적폐를 고치거나 바꾸지 못한다고 실망해 포기해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단기간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은 시간을 두고 지혜를 짜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취임 첫날 영을 내려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폐막(고치기 어려운 폐단)을 묻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해야 한다.”

‘이사’ 조항에는 다산이 주자(朱子)가 고을 사또가 돼 행했던 어진 정치를 예로 들면서

목민관이 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을 밝힌다.

첫 번째 원칙은 민생(民生)이다.

 목민관이라면 백성이 먹고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백성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화(敎化)하는 일이다.

세 번째는 교화 다음으로 학업을 익히게 하는 일이다.

“목민관이 백성들을 대함에는 반드시 민생을 먼저 한 뒤에 교화하고 이후 학업을 익히게 해야 한다

(君子之於小民也 必先養而後敎 敎而後學焉).”

잘못된 관행, 부정이나 비리, 부패는 바로 백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관련돼 있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때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민생이 해결되면 교화를 통해

고을 풍속을 순화하고 효제(孝悌)를 권장하며 오륜(五倫)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후 배움을 통해 백성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이사’에서 첫 번째 임무가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스스로 고발하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두 번째 큰 임무는 민관 소통에 대한 내용이다. 다산은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적폐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고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관에 호소하러 들어오는 백성이 부모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친숙하고,

아랫사람과 뜻이 제대로 통해 막힘이 없어야 백성의 부모와 같은 목민관이라 칭할 수 있다.

마침 식사 중이거나 목욕하는 때라도 문지기가 금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어기면 매를 맞게 해야 한다.

혹 뒷간에 가 있는 때라면 잠깐 기다리게 한 뒤 만나야 한다.”

다산이 민관 소통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옛날 중국 고사(故事)에 주공(周公)이라는 정치가는 ‘삼토포 삼악발(三吐哺 三握髮)’을 강조했다.

식사 중 민원인이 오면 입안에 든 음식물을 뱉고 손님을 만나는 일이 아침마다 세 번이었고,

머리를 빗거나 머리를 감는 동안에 손님이 오면 세 차례 머리털을 움켜쥐고

그대로 손님을 맞았다는 뜻이다.

백성과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 다산이 제시한 또 다른 조치는 관청 앞 기둥에 북을 걸어두는 것이다.

민원을 위해 관청을 찾지만, 중간에서 가로막는 아전이나 외부 인사가 있다면 백성의 뜻을 전달하기 쉽지 않다.

이를 위해 백성이 목민관에게 직접 전할 수 있도록 큰 북 하나를 걸어둬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목민관과 백성이 서로 신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지켜야 서로에게 신뢰가 생긴다. 약속을 어기면 동시에 신뢰 또한 무너져

 행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어떤 업무에 정해진 기한(期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기한을 지키고,

약속한 일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벌이 따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다산은 매우 꼼꼼한 행정가였다.

이사 조항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한 내용이 있다. 취임과 동시에 해야 할 업무로

그 고을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불러 고을 전체 지도를 그리게 해 집무실 벽에 걸어놓는 일이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고을 관내도(관내 상황을 잘 보여주는 지도)를 정확히 그려

집무실에 두면 고을을 파악하는 일이 쉬워진다.

위치 또한 눈에 익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서남북과 방위를 각각 표시해 면의 이름, 마을 이름도 표시하고

사방 도로의 이수(里數·거리를 리 단위로 나타낸 수)와 큰길, 작은 길, 다리, 나루터, 고개, 객점,

절간이 있는 곳 등을 모두 밝혀놔야 한다.

이를 통해 고을 풍속이나 지리, 아전과 백성이 왕래하는 길을 알 수 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2호 (2018.04.04~04.1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