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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4) 목민심서 ‘율기’편 ‘칙궁’ 옷차림은 단정히, 백성은 정중히 대하라


(4) 목민심서 ‘율기’편 ‘칙궁’ 옷차림은 단정히, 백성은 정중히 대하라




요즘 부쩍 공직자들의 태도 문제가 많이 이슈화되고 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가 낙마하거나, 사회 저명인사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이 잇따른다.

다산은 자신의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고 늘 강조했다.

목민심서 서론(序論) 격인 ‘부임’편 다음에는 본론인 율기·봉공·애민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율기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修養)해 인격(人格)을 닦는 일이다.

율기편 여섯 조항의 첫 번째는 ‘칙궁(飭躬)’이다.

칙궁은 공직자가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작업을 뜻한다.

“몸을 일으키고 움직일 때 절도가 있어야 한다.

관(冠)과 띠(帶)는 단정히 하며, 백성들 앞에 임할 때는 장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목민관의 도리”라고 하며

항상 의관을 제대로 정리해 모습을 단정하고 장중하게 보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다산이 밝힌 목민관의 자세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촛불을 밝히고

세수를 마친 뒤 의복을 단정히 입고 띠를 두른 뒤 묵묵히 단정하게 앉아서 정신을 한곳으로 모은다.

잠시 뒤 생각을 풀어서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 선후를 정한다.

무슨 공문을 처리하고 무슨 명령을 내릴까도 정한다.

할 일에 대해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할 수 있을지 방법도 생각해둔다.

할 일을 정할 때마다 사욕(私慾)을 끊어버리고 하나같이 천리(天理)에 따르도록 힘써야 한다.”

‘사욕’을 버리고 ‘천리’에 따를 것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여기서 ‘천리’는 바로 공(公)에 해당하는 일이다.

공사(公私) 개념으로 따져 사욕은 끊고 공심(公心)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다음에는 입어야 할 의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을 신으며 의자에 앉아 아랫사람들의 참알을 받는 것까지 다뤘다.

군사(軍事)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때는 당연히 군복을 입고 칼을 차서 군 지휘관의 모습으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군대를 방문할 때 군복을 입고, 재난 시 관련 옷을 입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시경’을 인용해 “점잖은 위의(威儀)는 덕의 표현이다” “공경하고 삼가는 위의는 백성의 본보기”라고 말해

때와 장소에 따라 격에 맞는 의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송(宋)의 명신이던 범중엄(范仲淹)의 예를 들어 자세한 설명을 했다.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 하루 동안 봉양받은 비용과 행했던 업무를 비교해 서로 상응할 정도면 잠이 깊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에는 기어이 맞먹을 수 있는 일을 하고야 만다.”

또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시경’의 시 한 편을 인용했다.

“저 군자여! 일하지 않고는 먹지 않는다(彼君子兮 不素餐兮).”

고을과 주민을 위해서 자신이 향유하는 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아먹으며 권력이나 누리는 목민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대목이다.

마음가짐과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된다.

“공무에 여가가 있으면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안정시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방책을 헤아려내

정성껏 잘되기를 도모해야 한다”며 겨를이 있을 때마다 백성의 삶에 대해서만 마음을 기울이라고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송나라 정자(程子)의 명언인 글자 네 자 ‘시민여상(視民如傷)’을 보기 편한 곳에 걸어놓고 보라고 했다.

‘시민여상’은 본디 ‘맹자’ 책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정자가 벼슬살이하는 동안 늘 활용했기 때문에 정자의 이야기로 인용했다.

백성들을 상처가 나 돌봐주고 보살펴주지 않으면 통증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여겨,

항상 손을 넣어주고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만들기 위한 세 원칙도 만들었다.

“벼슬살이에는 세 글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밝음(淸, 청)이요, 둘째는 삼감(愼, 신)이요, 셋째는 부지런함(勤, 근)이다.”

청렴한 마음가짐에 신중한 행동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라는 매우 평범한 내용이지만,

이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산이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다시 한 번 다룬 이유다.

다산은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선례(先例)대로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반드시 법률의 범위 안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법률이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라면 반드시 고쳐서 바로잡는 일에도 생각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하의 일이란 한 사람의 능력으로 다 처리할 일이 없다(天下之事 非一人所爲也)”는 말처럼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도 독단적으로 진행한다면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무리 지위가 낮은 아랫사람들이라도 그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참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설명하면서 다산은 중국의 한지(韓祉)라는 사람의 고사를 인용했다.

한지는 아침에 막료들이 인사차 방문할 때마다

 “내가 어제 했던 일에 무슨 허물이 없었던가”라고 묻는다. 막료들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도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하였거늘 10여명 의견이 어떻게 내 의견과 똑같을 것인가.

그대들은 어서 말해보라. 말해서 옳다면 좋을 것이요,

그르다면 서로 의논해 다시 생각하면 깨우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했던 일에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새롭게 바꿔 옳은 방향으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아랫사람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뤄진 뒤라면 이후에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목민관이 되면 몸이 곧 화살의 표적이 되므로 한마디 말이나 사소한 행동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말 한마디로 하늘과 땅의 화평을 상하게 하는 수가 있고,

한 가지 일로 평생의 복을 끊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모름지기 절실하게 점검하라”고 했다.

다산은 말을 많이 하거나 갑자기 화내는 일을 하지 말라(母多言 母暴怒)고 경고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고 참을성 없이 갑자기 화내고 성내는 일을 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논어’에 따르면

너그러우면 사람들이 따르지만 너그럽지 못하면 곁에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고 했다.

목민관 또한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다산은 아랫사람에게 너그럽기를 바라면서 그에 대한 원칙을 말했다.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면 백성들로서 순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윗사람이 돼 너그럽지 못하고 예(禮)를 행하는 데 공경스럽지 않다면 뭐가 볼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 너그러움만이 남을 포용해서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준다 해서 용모나 모습에서 위엄이 없어서는 안 된다.

“군자가 후중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돼서 무게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에게 명령하는 지도자로서 위엄이 없다면 누가 따르겠는가.

너그러움과 위엄을 구별하지 못하고 풀어진 자세로서는 남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위엄이 무너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목민관이 창기(娼妓)들과 놀아나는 일이나 기생들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라고 했다.

목민관이야말로 색(色)에 청렴해야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부분이다.

‘칙궁’ 조항에서 다산이 거론한 마지막 이야기는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 몸과 마음가짐을 제대로 행하여 그 고을에 정사(政事)가 제대로 이뤄지면 백성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며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있어도 좋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군민 체육대회, 군민 노래자랑 등을 열고 모든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며,

즐거움을 함께하는 일을 해도 좋다는 뜻이다.

맹자(孟子)는 “먼저 나라를 걱정하고 그 뒤에 나라가 잘돼가면 즐거워하라(先憂而後樂)”고 했으니 그런 뜻과 같다.

마지막으로 다산은

 “목민관의 집무실에서 책 읽는 소리가 난다면 이것이야말로

맑은 선비가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政堂有讀書聲 斯可謂之淸士也)”고 했다.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잠깐의 여가가 있다면 독서를 권장했다.

목민관의 몸과 마음가짐을 다룬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독서를 언급했다는 점은 깊이 새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