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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5) 목민심서 ‘율기’편 ‘청심(淸心)’ 공직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 ‘청렴함’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5) 목민심서 ‘율기’편 ‘청심(淸心)’ 공직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 ‘청렴함’

 

 

  

 

 

지난 3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고위직 공무원과 국회의원 재산이 공개됐다.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보를 통해 공개한 2018년 정기 재산 변동 사항을 보면

고위 공직자 1711명이 신고한 평균 재산은 약 13억5000만원이다.

 

종전 신고액(12억6400만원)보다 약 6.6% 증가한 금액이다.

다산의 기준에서 보면 국내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은 다소 많아 보인다.

다산은 무엇보다 공직자의 청렴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목민관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일이 ‘율기’다. 그 두 번째 조항은 청심이다.

청심이란 맑은 마음이니 바로 청렴한 마음을 뜻한다.

‘목민심서’ 72조항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항이자, 목민관의 덕목(德目)으로 그 비중이 가장 큰 항목이다.

다산은 공직자에게 기본적으로 청렴한 자세를 요구했다.

목민심서 48권 전체 내용 중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첫 번째 항목이 바로 청심이다.

“청렴이란 목민관의 본질적인 임무다.

만 가지 착함의 근원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다. 때문에 청렴하지 아니하고는 목민관 노릇할 사람은 없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다산은 목민관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청렴해야만 한다는 대원칙을 천명했다.

조선시대 청렴한 목민관이나 벼슬하는 사람을 청백리라 불렀다.

조선 중기만 해도 청백리를 선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공직자에게 청렴을 강조했다.

세상이 타락하고 부패해지는 조선 후기에 오면 청백리를 선정하는 제도까지 무너졌다는 점을 다산은 탄식했다.

그러면서 조선왕조 중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청백리 선발 제도를 통해 선정된 청백리의 숫자를

기록을 통해 공개했다.

“조선왕조 시절에 청백리로 선정된 사람은 도합 110명이다.

태조대왕에서 연산군 때까지 45인, 그 이후 광해군까지 37인, 숙종 때까지 28인이고,

경종 이후로는 청백리의 선발 제도가 없어져버렸다. 청백리 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은 더욱 곤궁하게 됐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다산은 이같이 탄식하면서

 “400여년 동안에 관복을 입고 조정에서 벼슬하던 사람이 수천 명이나 만 명이었는데

그중에서 청백리로 선발된 사람이 겨우 그 정도의 숫자에 그쳤으니 사대부(士大夫)로서의 수치”라고

개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내려와서는 탐관오리들이 판치던 세상이었음에도

청백리 선출 제도조차 사라져버린 점에는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다산의 입장이었다.

이 같은 시대적 어려움이야말로 바로 다산의 목민심서가 탄생할 수밖에 없던 배경이었으리라.

그런 이유로 청렴과 청백리를 희구하는 ‘청심’ 조항은 목민심서를 상징하는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됐다.

다산은 청백리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청백리에는 세 등급이 있다.

최상의 등급은 봉급 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사람이고,

 설혹 봉급을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집으로 가져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는 날에는 말 한 필만 이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고대부터 말해지는 ‘염리(廉吏)’ 즉 청백한 벼슬아치다.

두 번째 등급은 봉급 이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받고, 바르지 않은 것은 받지 않으며,

사용하고 남은 것이 있다면 집으로 보내는 사람이니, 중세의 ‘염리’를 말한다.

 

최하 등급은 이미 규례(規例)로 돼 있는 것이라면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받아 쓰지만

규례로 돼 있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받아 쓰고, 고을의 벼슬을 팔지 않으며,

재해를 당한 사람에게 세금을 감해주는 제도를 악용해 훔쳐 먹지 않으며,

 송사(訟事)·옥사(獄事)에서 뇌물 받지 않으며, 조세를 과부해 나머지를 착복하지 않는 사람이니,

이들은 현대의 ‘염리’라고 말해지는 사람이다. 최상의 청백리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금처럼) 부패한 시대에는

두 번째 등급만 제대로 이행해도 청백리라고 말할 수 있다.”

다산은 최하 등급의 청백리들은 고대에 반드시 팽형(烹刑)을 당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악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런 등급의 청백리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봉급 이외 어떤 것도 절대로 받지 않아야 하고,

봉급에서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국가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청백리,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두 번째 등급이 가장 현실적이다.

사용하고 남은 봉급은 집으로 보내거나 봉급 이외 명분이 뚜렷한 일, 가령 부모의 상을 당해 부조금을 받는 일,

자녀의 혼사에 축하금을 받는 행위는 어느 정도 인정해줬다.

다산은 ‘청렴’이라는 도덕성이 갖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청렴은 세상에서 가장 이익이 많은 장사”라며 “참으로 욕심이 큰 사람이라면 청렴해야 한다.

청렴하지 못한 사람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급 관료로서 조그마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보잘것없는 뇌물을 받다가 탄로 나면 영원히 끝이지만,

조그마한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청렴한 벼슬살이를 하다 가장 큰 이익이 되는 정승·판서의 지위에 오른다면

청렴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다산은 ‘논어’를 통해 청렴의 높은 가치를 설명했다.

“공자는 인한 사람은 인을 편안히 여기고(仁者安仁),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知者利仁)”고 말했다.

 다산은 인(仁)의 가치와 염(廉)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겨

“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안히 여기고(廉者安廉),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知者利廉)”고 바꿔

유교의 최상 덕목인 인(仁)과 같은 덕목이 염(廉)이라는 결론을 냈다.

 ‘가장 큰 욕심쟁이는 반드시 청렴하다(大貪必廉)’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다산이 만들어냈다. 높

은 벼슬은 청렴에서 온다는 의미였다.

티끌 하나라도 오염되면 청렴의 가치는 손상되기 때문에

선비의 청렴이 얼마나 어렵고 귀중한 것인가를 다산은 여러 예를 들며 설명했다.

“선비의 청렴만은 여자의 순결과 같다. 진실로 한 오라기의 오점도 평생의 흠이 된다.

목민관이 청렴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도둑놈으로 지목해 마을을 지날 때에는 더럽다고 욕하는 소리가 비등할 것이니,

이 또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독재 시대에 고관대작들을 다섯 종류의 도둑으로 지목한 ‘오적(五賊, 김지하)’이라는 시가

온 세상에 유행으로 낭송되던 때를 기억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청백하지 못한 관리, 청렴의 가치를 잊고 지내는 목민관은 언제든지 도둑으로 매도당할 수 있다.

탐욕스러운 목민관이 당하는 불행에 대해 다산은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한 목민관이 좀도둑인 유생(儒生)을 잡아다 심문했다.

그 유생은 계획적으로 탐학한 관리들의 비행을 자세히 기록해 갖고 와서 낭독했다.

그러자 목민관은 유생을 차마 벌을 주지 못하고 석방했다.

자신의 죄악이 폭로되자 좀도둑도 처벌하지 못하는 탐관오리의 부패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뇌물 주고받기를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겠느냐만,

한밤중에 했던 일도 아침이면 소문으로 퍼진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으니, 뇌물을 주고받으면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다.

하지만 수뢰행위가 없는 청렴한 목민관은 온 세상의 칭송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청심’ 조항을 끝냈다.

다산은 목민관이 청렴하면 산천초목도 맑은 빛을 발한다고 했다.

또 “청렴하다는 소리가 사방에 퍼져 좋은 소문이 나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영광”이라며

“맑은 기운이 남들에게 스며든다(淸氣襲人)”고 했다.

청렴한 목민관은 다른 사람에게 맑은 기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목민관, 그리고 오늘날 고위 공직자들이 보다 청렴함을 깊이 새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