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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6) 목민심서 ‘율기’편 제가와 병객-가족을 엄격히 관리하고 청탁을 경계하라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6) 목민심서 ‘율기’편 제가와 병객-가족을 엄격히 관리하고 청탁을 경계하라

    

         

  

 

 

               전직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을 보면 대체로 본인이 직접 부정을 저지르거나 뇌물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주변인의 부정과 비리로 인해 국민 신임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렴한 공직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 한 몸 다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의 그릇된 처신이나 지인의 청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이를 미리 해결할 필요가 있다.

목민심서 ‘율기’편의 ‘제가’와 ‘병객’ 조항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가족을 다스리는 ‘제가(齊家)’

▷집이 불안하면 공무 수행 어려워

 

율기편의 두 번째 조항인 ‘청심’에 나온 내용을 복기해보자.

청렴한 목민관이라면 근무했던 고을의 토산품이나 특산품은 절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예컨대 강계의 인삼이나 초피, 경북의 다리와 삼베, 남평의 부채, 순창의 종이, 담양의 채색상자,

동래의 담배기구, 경주의 수정, 해주의 먹, 남포의 벼루 같은 것은 임기 마치고 돌아갈 때

단 하나라도 갖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다.

 

다산은 다른 논문 ‘감사론’에서 목민관을 소도(小盜)·대도(大盜)로 나눠 비판한다.

작은 도둑은 목민관들이고, 큰 도둑은 고관인 감사(監司)라고 말한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큰 감사야말로 왕도둑이라고 비난하면서 청렴하지 못한 목민관의 비행에 대해 꾸짖었다.

 

율기 세 번째 조항은 제가(齊家)다. 다산은 제가에 대한 하나의 원칙을 만들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동양정치학의 대원칙을 다시 천명한 내용이다.

 

“수신한 뒤에 가정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제가한 뒤에 나라를 다스림은 온 세상의 공통된 원칙이다.

 

때문에 한 고을을 제대로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자신의 가정부터 올바르게 정리하라(欲治其邑者 先齊其家).”

제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목민관이 어떻게 하면 가정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한 고을을 다스림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治縣如治國)”고 전제하면서

자기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와 함께 집안을 다스리는 몇 가지 요령을 제시했다.

첫째, 임지로 데리고 가는 집안 사람의 숫자는 법대로 한다.

둘째, 입는 옷이나 가마·수레나 말의 치장은 검소하게 한다.

셋째, 음식은 반드시 절약해 준비한다.

넷째, 여색에 대해서는 근엄한 태도를 유지한다.

다섯째, 어떤 청탁도 철저히 끊어야 한다.

여섯째, 물건 사들이는 데는 청렴함을 기본으로 한다.

이 여섯 가지 조목에 법도를 세우면 무리 없이 목민관 생활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올바른 목민관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다산은 생각했다.

 

여섯 조항을 꼼꼼히 살펴보면 다산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임지로 가면서 가족을 데리고 가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모시고 사는 부모야 당연하지만 아내 이외 자녀는 절대로 여러 명을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는 관에서 생활비를 제공해도 되지만,

 아버지에게는 생활비를 제공하지 말라는 점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당시 아버지는 생활비를 조달할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옛날 목민관 중 제가의 모범적인 인물로 효헌공 송흠(宋欽, 1459∼1547년)을 거론했다.

송흠은 조선왕조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라도 영광(현재 장성)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해 관찰사·판서·우참찬의 고관을 지냈다.

 

“송흠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할 때마다 타고 가는 말이 겨우 세 필이었다.

공이 타는 말이 한 필, 어머니와 아내가 타는 말이 각각 한 필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삼마태수(三馬太守)라고 불렀다.”

새로 부임하는 사또의 행렬이 고작 조랑말 세 필이었으니 얼마나 검약하고 간소한 행차였겠는가.

‘삼마태수’라는 명칭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호칭이라 할 수 있겠다.

 

가정에서 주의할 두 가지는 의복과 음식이었다.

다산은 “의복을 사치하면 귀신이 미워하고, 음식을 사치하면 재앙을 부르는 것”이라 했다.

가정을 바르게 하려면 검소한 의복에 소박한 음식을 먹도록 가정을 단속하라는 뜻이다.

이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령의 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의 하나는 여성이 거처하는 규방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녀 종들에 대한 단속, 관속의 남녀 종들의 행실에도 마음을 기울이고,

기생이나 관비에 대해서도 반듯한 행실을 주문했다.

 

“집안에 애첩을 두게 되면 부인이 질투하기 마련이고, 행동이 한 번 잘못되면 소문이 사방으로 퍼진다.

애초에 사욕을 끊어 후회함이 없도록 하라(房之有嬖 閨則嫉之 擧措一誤 聲聞四達 早絶邪慾 毋裨有悔).”

처첩제도가 있어 애첩을 허용하는 시대였지만,

의 모범이 돼야 할 목민관은 그런 일에도 마음을 기울여 하나라도 잘못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다산은 세밀하게 많은 설명을 했다.

질투하지 않는 부인은 극히 적다고 전제하고,

첩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작게는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크게는 관청의 바깥까지 떠들썩해져서 불행하게 감사에게 소문이 들리면 고적(考績)에서

아주 불리한 점수를 얻는다”고 했다.

집안 다스리는 일에 있어 첩의 문제를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시대에 더욱 와 닿는 대목이다.

 

 

▶청탁을 물리치는 ‘병객(屛客)’

▷보좌관은 가급적 두지 마라

 

율기편 네 번째 조항은 병객이다.

병객이란 청탁하러 오는 어떤 손님도 받아주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법에도 없는 책객(冊客·지방 수령이 문서나 회계 따위를 맡기기 위해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곁에 두고

관청 일에 관여하는 일을 일절 금하라고 했다.

회계를 처리하고 집안일까지 처리하는 서기(書記) 한 사람이 있으면 충분하니,

돌봐준다는 구실로 협잡이나 청탁을 일삼는 보좌관을 곁에 두지 말라는 뜻이다.

보좌진의 잘못된 활용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청탁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불법 객인(客人)을 곁에 두지 않는 것이다.

 

존문(存問)을 통한 청탁 또한 문제가 많다.

‘존문’이란 목민관이 관내에 거주하는 유력한 인사에게 찾아가 경의를 표하고 안부를 묻는 일이다.

 

목민관이 발령을 받고 임지로 출발할 때

중앙 고관들은 목민관에게 그 지방에 누구누구는 내가 아는 사람이니 그곳에 가면 찾아가

 경의를 표하고 안부를 물으라고 주문하기 마련이다.

또 간혹 중앙 고관들이 편지를 보내 누구누구에게 존문하라는 말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게 고관들 주문을 이행하다 보면 그들의 지인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청탁을 받게 된다.

애초에 존문을 거절해야 부당한 청탁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병객을 제대로 했던 대표적인 목민관으로 다산은 유의(柳誼, 1734년∼?)라는 목민관을 예로 들었다.

홍주목사를 지냈고 뒤에 대사헌까지 오른 인물이다.

다산이 금정도 찰방으로 좌천됐을 때 직속상관이던 홍주목사로 근무했다.

 

부임차 조정에서 인사를 할 때 많은 고관으로부터 홍주에 부임하면 누구누구를 존문하고

그들을 돌봐주라는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의는 일절 거절하고 존문도 전혀 하지 않았다.

 

“임금께서 이미 홍주의 백성을 나 같은 목민관에게 맡겨 그들을 구휼하고 보호해주도록 했으니,

조정의 고관 부탁이 비록 무겁기는 하지만 임금의 주문보다 높을 수는 없지 않소.

편벽되게 부탁받은 사람만 돌봐주면 임금보다 사사로운 명령을 받드는 것이니

나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유의는 홍주목사로 재임할 때 많은 중앙 고관들로부터 여러 가지 청탁이 담긴 편지를 수없이 받았지만

아예 한 장의 편지도 개봉하지 않고 그대로 서랍 속에 방치해뒀다고 한다.

다산이 금정찰방으로 있으면서 상관인 목사에게 공문의 편지를 보냈는데도 개봉하지를 않아 답장이 없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유의는 목민관 근무 중에 오는 편지는 모두 청탁서여서 일절 개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얼마나 깔끔한 방법인가.

유의가 ‘병객’하는 모습은 오늘날 공직자에게도 분명 귀감이 될 행동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