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제46호
퇴계와 두향의 애절한 전설이 담긴 구담봉(龜潭峰)
어디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청풍면 소재지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장회나루에 도착하니 저 멀리 멋진 산봉우리들이 미세먼지로 조금은 희미하게 조망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구담봉이다.
구담봉은 정말 아름답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담한 규모의 봉우리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위 능선이 마치 설악산을 닮은 듯하고,
능선 좌우의 기암절벽이 금강산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구담봉의 석벽을 감상하려면 제천 청풍나루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사람은
시티투어 비용에 유람선 승선비가 포함되어 경비도 절약하고, 안내도 받을 수 있으며
이동도 쉽게 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하였다.
청풍문화재단지를 둘러보고 청풍면소재지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점심을 든 후,
혼자서
청풍면소재지를 한바퀴 돌아본다.
남한강 수석은 명성이 자자하다.
멋들어진 괴석을 보며 점심 후 노곤함을 달랜다.
조용한 마을에 벽화가 이채롭다.
영춘화
청풍중학교 앞에서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린 충주호를 조망하다.
12:50
점심을 마친 후 시티투어 버스는 제천 청풍나루의 계단 공사로 인해 단양에 있는 장회나루로 이동하여
유람선 관광을 하게 된다.
유람선 코스
단양 장회나루 승선 - 구담봉 - 옥순봉- 청풍나루 - 되돌아 - 단양 장회나루 하선
장회유람선 매표소
장회나루로 내려가는 도중에 본 멋진 식당
명승 제46호 구담봉(龜潭峰)
우리가 승선할 유람선
충주호에 자리한 산들이 쟁반에 올려 놓은 수석처럼 아름답다.
강물은 이 산과 저 산을 이어주고 또 떠난다.
유람선 위에서 본 장회나루와 뒤로 제비봉 봉우리가 수려하다.
△
장회나루에서 본 주변 풍경
▽
퇴계와 두향의 애절한 전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퇴계 빈 마음에 한 떨기 설중매 같은 두향이가 다가와
이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나면서 9개월 만에 이별을 하게 된다. 두향은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와 자주 찾았던 강선대 아래에 초막을 짓고 퇴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퇴계의 타계 소식을 들은 두향은 남한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두향아, 왜 그리 낯이 어두운 게냐?"
"아닙니다."
"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것이냐?"
두향(枓香)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후로 줄곧 그를 모셔온 두향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겨간다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애써 참으려 해도 솟아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삭이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퇴계는 울고 있는 두향을 외면하려고 애를 썼다. 단양관아에 속해 있는 관기를 아무렇게나 임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퇴계는 어떤 것으로도 두향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두향의 신분을 관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퇴계는 두향을 두고 가는 상심한 마음을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고 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生別常惻測
구담봉 바로 위에 위치한 장회나루 건너편의 말목산 자락에는 이황의 연인 두향의 무덤이 있다.
이황이 빼어난 경치에 그토록 감탄했던 구담봉에서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구담봉을 중심으로 장회나루 부근은 퇴계와 두향의 애틋한 사랑의 향기가 서려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는 퇴계 사후 150년 뒤 두향의 묘를 참배하고
“외로운 무덤이 관도변에 있어 거친 모래에 꽃도 붉게 피었네.
두향의 이름이 사라질 때에 강선대 바윗돌도 없어지리라”는 시를 한 수 헌사했다.
퇴계를 향한 마음을 평생 변치 않았던 두향을 기리고자 퇴계의 후손들은
지금도 두향의 무덤에 참배하며 관리하고 있다.
단양 구담봉은 단양군 단성면과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는 바위로 된 암봉이다.
석벽 위에 바위가 있는데 물속에 비친 모습이 거북의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에서
단양을 향해 가면 거북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산이 보인다.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유람선 위에서 구담봉을 향해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구담봉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쾨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동쪽의 한쪽 면은 중첩하여 가파른 절벽의 꼭대기를 들어 올린 거북의 머리같이 기이한 장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구담은 단양에서 서쪽으로 20리에 있다. 예부터 꼭대기 바위의 형세가 거북과 같다고 하여 구봉이라 일컬었고,
혹은 강물 속의 바위에 모두 거북 문양이 있다는 연유로 구담이라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봉우리 이름은 거북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데서 유래하며,
봉우리 아래 청풍강의 담소(潭沼)는 이 바위에서 구담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회나루에서 구담봉을 돌아나오니 저 멀리 옥순대교가 발을 치고 있다.
날이 맑으면 좋겠는데, 뜬금없이 바람도 거세고 미세먼지까지 찾아와 하늘이 금방 뿌옇고 시계가 좋지 않아
사진을 담기 참 어렵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실로 오랜만에 찾은 구담봉과 충주호 유람선 위에서 본 환상적인 주변 경관을
미세먼지로 인해 또렷이 볼 수 없어 아쉽다.
청풍나루까지 가는 길에 미세먼지가 더욱 짙어져 시계가 매우 나빠지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었다.
두향은 퇴계의 그런 마음을 깊이 헤아렸다.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이 누각을 이요루라고 지은 것은 논어 '옹야편'의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에서 나온 것이옵니까?"
"그렇다네. 눈을 들면 산이고 고개를 숙이면 물이니, 이보다 더 좋은 교실이 어디 있겠는가."
"어찌 하여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는지요?"
"어질다(仁)함은 바른 생각을 굳게 지키며 한뜻으로 세상을 견딜 수 있어야 하니, 산처럼 우뚝 솟아 풍상을 견뎌야 할 것이고,
지혜롭다(知)함은 세상의 흐름과 사물의 이치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니,
물처럼 낮은 데로 흐르면서 막힌 곳을 만나면 피하여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뒤에 나오는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는 어떤 뜻이옵니까?"
"지혜로운 자는 끝없이 움직이며 즐길 줄 아는 사람이요,
어진 자는 고요하며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지."
"인(仁)과 지(知)는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본성이긴 하나,
서로 맞서는 측면이 있는데 그것을 함께 지니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에 나서면 물처럼 지혜로움을 지니면서 마음에 산 같은 고요함을 품어야 하고
은거하여 들어와 앉으면 산처럼 어질고 담담하게 살지만 여전히 흐르는 지혜를 잊어서는 안 되니,
서로 보완을 해주는 덕이 아니겠느냐?"
두향이 말했다.
"나으리. 과연 그러하옵니다.
이 누각에 앉거나 서서 술잔을 들고 풍악을 들으면서 솟은 산도 좋고 흐르는 물도 좋다며 껄껄거리는 소음과 잡답(雜沓)이
왜 유치하고 부박한지 이제 알 듯합니다."
이 말에 퇴계가 빙그레 웃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1570년 퇴계가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두 사람은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의 부음을 전해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에 찾아 가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었다.
안동에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게 된다.
구담봉에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다. 토정 이지함의 형이었던 그는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덩굴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매고 비학(飛鶴)을 타고 왕래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는 등 구담봉에는 얽힌 전설이 많다.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이 특히 아름다운 구담봉의 모습은 많은 시인묵객들의 시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단양의 풍광에 매료되었던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외에도 이이, 김만중, 김정희 등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진경산수로 유명한 정선, 이방운 등이 그린 구담봉의 모습이 산수화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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