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일본 히메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히메지 성(姬路 城)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히메지 성(姬路城)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언제 :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어제 비를 맞고 교토지역을 여행한 후

밤에 오사카로 돌아와 스시에 정종을 조금 과하게 마셨더니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거북스러웠다.

 

 간사이 여행 4일째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로성이란 별명을 가진 히메지성을 여행하는 날이라

 벌써 마음이 울렁거린다.

 

 닛폰바시에서 산요히메지까지 80km,

편도 소요시간은 1시간 50분이라 왕복하면 만만치 않은 거리이지만, 꼭 보고 싶었던 곳이라

오가는 길도 즐겁다. 

 

 

07:00

닛폰바시 역 출근길 전철 안의 풍경

 

 

히메지로 가는 전철 안 풍경

아침 출근 길 오사카 시내에서 전철 안은 북적거렸는데, 고베를 벗어나니 전철 안은 한산하다.

 

히메지 가는 길에 본 세계 최장 현수교 아카시해협 대교도 지나고

전형적인 일본 전원주택도 보면서

 

07:15

닛폰바시 지하역 -2번플렛폼에서 킨데츠 한신 난바선(近鐵阪神)을 타고 아마가사카(尼綺)역 하차,  6번 플렛폼에서

 우메다에서 출발한 히메지행 직통 특급열차 환승하여 고베를 거쳐

09:00

 산요히메이지역 하차

 

 

산요히메지 역에서 도로로 나오면

멀리 언덕 위에 백로처럼 하얀 히메지 성 텐슈카쿠(天守閣)가 보인다.

걸어가면 약 18분 정도 소요된다는데 오후 일정을 감안하여 버스를 탔다. 버스요금 100¥

 

 

히메지 성의 해자(垓字)

원래 히메지 성의 해자(垓字)는 히메지 역 부근까지 뻗어있었는데, 1618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단다.

해자는 오사카 성의 해자보다는 성벽의 높이나 규모가 작았으나,

성의 크기는 오사카 성보다 크고 웅장하다.

 

 

해자(垓字)를 건너는 사쿠라몬 다리 너머

백로가 햐안 날갯짓을 하는듯 길게 드리운 하얀 성벽의 히메지 성과 텐슈카쿠를 가까이 보니

무관의 피가 흐르는지 가슴이 울렁거린다.

 

 

 

 

 

 

전통복을 입은 젊은 인력거꾼과 아름다운 연인이 히메지 성을 배경으로 멋지게 어울리고,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어주는

연인의 미소가 아름답고 푸른 하늘처럼 상큼하다.

 

 

히메지 성의 전경

히메지역에서 북쪽에 약 1km. 효고현 히메지시의 중심부의 작은 언덕(표고 45.6 m)에 있다.

해자를 건너 성문에 들어서면 너른 잔디밭 너머 붉게 물든 벚나무 단풍 위로 하얗게 나래를 편 히메지 성의 전경을 보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히메지 성은

에도시대의 초기에는 전국에 대소 180개 정도의 성이 있었지만, 대부분 메이지 유신 시에 해체되었고 태평양전쟁등에 멸실되었다.

그중에서도 일본 3대 유명한 성으로 꼽힌 나고야성이나, 구마모토성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

그 중에 히메지성은 무수한 위기를 넘기고 지난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일본의 3대 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은 히메지 성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일본의 대부분의 성이 뒤에 다시 지은 것들이지만 히메지성은 처음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어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건축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160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1945년 7월 3일 히메지 대공습 때 니시노마루와 텐슈카쿠에 폭탄이 떨어졌으나 불발탄이어서 무사하였단다.

히메지성은 철저하게 전투용 성으로 지어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번도 전투를 치른 적이 없다.

 

 

히메지 성은

화공(火攻)과 화재로부터 성내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수년마다 돌아가며 기와와 벽면에 회반죽 덧칠하는데,

이를 멀리서 보면

날아오르는 해오라기에 비유해서 시라사기성(白鷺城), 혹은 이슬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쿠로성(白露城)이라고 불린다.

현재 텐슈카쿠의 수리,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5년 3월까지 마무리 예정이란다.

  

 

히메지 성 전경을 바라 본 뒤 성안으로 가는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의 빨간 단풍이

눈시리게 곱고 아름다워 혼자 걷 것이 아쉬웠다.

 

 

 

 

히메지 성(400¥)과 호고원(150¥) 입장권 550

 

 

 

히시노몬

입장권을 받고 들어가는 첫 문,

히메지 성의 정문인 오테구치를 방어할 목적으로 만든 누문(樓門)으로 성안의 21개 문 중에서 가장 큰 문이다.

 

 

히시노몬 위에 설치된 종 모양의 카토마도(華燈窓)원래 사찰이나 궁전에만 사용이 허락된 특별한 창인데,

히메지 성으로 손녀를 시집보낸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었겠지.

 

 

히메지 성 전도

 

 

 

간사이 4박 5일 여행에서 나의 보따리는

카메라 2개와 배낭에 여벌 바지 한개와 속옷 그리고 양말이 전부였다. 그래서 지금 모습이 여행 내내 입었던 옷이며

호주머니엔 작은 카메라와 안경 그리고 전화기가 들어있어 빵빵하다.

 

 

히메지 성 풍경

 

 

히메지성의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덴슈카쿠를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은 게이쵸(慶長) 연간인 1596년에서 1615년 사이에 축조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위인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가 대규모 개축 공사를 벌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했다.

덴슈카쿠를 조형적 측면에서 보면 날렵한 수직의 미가 돋보이며, 성벽의 기울기가 위로 향할수록 급경사를 이룬다.

평지나 다름없는 자리에 성을 짓다 보니 적이 쉽게 범접하지 못하도록 탑처럼 높게 올릴 수밖에 없었단다.

 

니시노마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千姬)가 혼다 타다토키와 재혼할 당시 결혼 지참금을 대신해 지은 건물로

센히메와 시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300m의 긴 회랑 곳곳에는 나가츠보네라는 조그만 방들이 있고

히메지 성에서 가장 취약한 건물이라 여러개의 망루를 세웠단다.

 

 

 

 

300m의 긴 회랑과 많은 방

 

히메지성 관련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센히메(千姬)이다.

에도막부의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의 장녀로 1616년 히메지 성주인 혼다 가문에 재가(再家)했다.

다이텐슈카쿠 서쪽의 니시노마루에서 센히메의 일상을 묘사한 모형을 볼 수 있다.

히메지 성을 보면 무언가 알 수없는 비화가 숨어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그 주인공이 센히메(千姬)

정치적 격변기에 태어난 센히메(1597~1666)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7살 어린 나이에 정치적 희생양으로 도쿠가와 가문의 이종사촌 오빠인 요토미 히데요리와 정략 결혼한 그녀는

오사카 성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그러나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이에야스가 오사카 성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센히메는 19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게 된다.

 

당시 손녀를 걱정한 이에야스는 심복들에게 센히메를 구출해오면 그녀와 결혼시켜주겠다고 하자,

무사 사카자키 나오모리는 위험을 무릎쓰고 오사카 성에서 센히메를 구출해 오다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센히메는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고 완강히 결혼을 거부하고 잘 생긴 히메지성의 성주 혼다 타다토키에게 반해 재혼을 선언한다.

이에 격분한 나오모리는 센히메가 시집가는 날, 센히메를 강탈할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히메지 성에서 센히메의 행복은 잠시, 그녀가 30세 된던 해인 1626년 남편과 친인척이 사고로 줄줄이 사망하자

주변에서는 먼저 죽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저주가 내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낙담한 센히메는

 히메지 성을 떠나 에도(도쿄)에서 여생을 보내다 70세에 생을 마감했다.

 

 

처음 계획을 수립할 때 히메지 성은 공사 중이라 관람하는데 문제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텐슈카쿠(天守閣) 내부에 올라가 히메지를 볼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히메지의 풍경

 

 

텐슈카쿠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오키쿠 우물과 전시장으로 올라 가는 길에 돌아 본

니시노마루

 

 

전시물

 

 

전시물

 

 

오키쿠 우물

1505년 히메지 성의 성주 코테라 노리모토는 자신의 심복인 야오야마 탯산의 반란으로 성을 빼앗겼다가

아오야마 가문의 하녀 키쿠(菊)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아오야마 탯산은 가보로 내려오는 열 장의 접시 중 한 장을 감추고 접시가 사라진 책임을 물어

키쿠를 이 우물에 빠트려 죽였다.

그 후 밤이면 우물에서 접시 수 세는 키쿠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는데, 코테라 노리모트의 충복이

키쿠의 약혼자인 키누가사 모토노부가 원수를 갚고 키쿠를 신으로 모시면서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전설의 우물이다.

 

오카쿠 우물

 

 

오카쿠 우물에서 바라본

우측 하단 하시노몬과 뒤로 하얀 성벽의 니시노마루

 

 

안내원이 하트모양의 돌이 성벽에 있다며 일부러 알려준다.

 

 

텐슈카쿠(天守閣)의 반영

 

 

 

보수공사로 텐슈카쿠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하루 정도는 머물고 싶은 히메지 성을 일정상 더 머물지 못하고

 히메지 성 서쪽 정원인 고코엔(好古園)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