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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충남 당진) 솔뫼성지(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의 생가)-1

솔뫼성지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의 생가

 

 

언제 : 2014년 4월6일 일요일

어디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124 (솔뫼로 132)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인가!

얼마나 찾아가고 싶었던 곳인가!

솔뫼성지,

살아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나라 첫 신부님인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인 솔뫼성지였습니다.

 

저는 아직 종교도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죽기 전에 꼭 방문하고 싶은 첫 번째가 바로 솔뫼성지였습니다.

 

드디어

제가 세상에 와서 63년 만에   

버스 타고, 택시 타며 물어물어 솔뫼성지를 다녀와 기쁜 마음으로 사진과 글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긴 날을 기다리셨다는 듯,

어서 오라며 두 팔을 벌리시어 나를 영접하시는 예수상이 따스합니다.

 

 

 

 

 

 

 

 

 

 

 

 

 

 

 

 

 

 

 

 

 

솔뫼 아레나(원형 공연장 겸 야외성당) 

‘아레나’라는 말은 모래 혹은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뜻이고, 현대적 의미로는 원형 경기장이나 원형공연장을 뜻하는 말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동료 밀사들이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또한 12사도상(최영철 바오로, 2011년 작품)을 세움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12사도로부터 이어져왔다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회유문의 정신을 본받아 이 시대에 우리가 바로 사도가 되어야 함을 전하고자 하였다.
솔뫼 아레나에서는 음악회와 연극, 야외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좌석수만 1,200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로

2011년 5월 14일에 봉헌되었다. 대형 행사때에는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12사도의 상이 있으나 다 올릴 수 없어 베드로와 요한, 두 분만 올립니다.

 

 

 

   

 

무엇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까요?

 

 

 

 

 

봄꽃들이 활짝 핀 날, 김대건 신부의 생가

 

 

생가 마루에는 김대건 신부의 사진이 걸려 있네요.

 

 

 

 

 

 

 

 

 

 

 

 

10,000평에 이르는 소나무 군락지에는

오랜 노송들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집안 순교자들의 신앙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며,
70~80그루의 소나무들은 200년을 넘어섰으며, 300년 이상 된 소나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김대건 신부 생가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 옆에는 순교복자비와 성인비가 모셔져 있는데,

1946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세워진 순교복자비와 함께, 성지가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성,

성역화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석고로 제작된 예전의 성상은 파손되었으며, 현재의 성상은 1977년 전뢰진 교수님에 의해 제작되었답니다.

 

 

 

천주교 103인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그의 생가 뒷동산을 거닐자니 예의 소나무 숲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 김대건 신부의 동상 뒤의 하얀 탑은 성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탑으로 신자를 돌보고 있음을 상징한다.

믿기에 의지하고 사랑하기에 믿음을 준 성자와 성모의 상을 함께 바라보자니

사람은 믿음으로 살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솔뫼 성지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관해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신 장소이다.

증조 할아버지 김진후(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 순교), 김대건 신부님(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이곳(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라 가세가 기울었고, 또 어느 때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할아버지 김택현은 대건이 7살 되던 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 산골로 이사하였다.

 

김대건은 그곳에서 15세 때 1836년 모방 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 진쟈상(金家港:김가항) 성당에서 고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김 신부님은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선교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순위도 앞바다에서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언도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1925년 7월 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올려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조선 최초의 방인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학 유학자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고 연평도에서 상해까지 항해한 최초의 항로 개척자이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전도를 만들었으며, 저서로는 21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다.

 

1906년, 당시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김 신부님의 생가터를 고증하였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는 조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된 솔뫼성지는, 1만여 평의 소나무 군락지와 생가가 복원되었고,

기념관과 성당, 솔뫼 아레나(야외공연장 겸 야외성당), 순례자 식당, 넓은 주차장을 갖춘 가운데,

광활한 내포 평야의 한 복판에 자리하면서 한국천주교회 안에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