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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파주) 두 개의 선(Two Lines), DMZ & 독일 Grunes Band 사진전

두 개의 선(Two Lines)

DMZ & 독일 Grunes Band 사진전

(독일, 철의 장막 붕괴와 통일)

 

 

 

독일, 철의 장막 붕괴와 통일

임진각 평화누리의 경기 평화센터에서 2013. 7.23~2014.3.23 두 개의 선이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그 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장미'라는 작전명으로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2만 명이나 되는 인력이 동원되어 높이 3~3.5m, 길이 155km에 이르는 장벽을 쌓았다.

이후 이산가족의 만남은 중단되었고, 이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희생된 사람은 1,500여 명에 이른다.

통일 후 23년이 지난 지금, 독일의 철의 장막이 있던 곳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28년간 높은 장벽과 감시탑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 탓에 동. 서독을 갈랐던 '철의 장막'은

녹색 생명의 띠인 '그린벨트'로 다시 태어났다.

 

 

한 남자가 소련의 탱크를 향해 주먹을 들고 저항 의지를 보이고 있다( 1953.6.17).

 

 

베를린 장벽 경찰관들이 하르처 거리에서 장벽 공사를 감시하고 있다(1961.8.18)

8월 13일 소련과 동독은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 이 장벽으로 자유롭게 동서를 오가던 이들의 왕래가 완전 차단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성들의 노동려 절대부족으로 독일 국가 재건의 대부분은 여성들의 힘으로 이루어졌다(1946.6.1) 

 

 

서독 피난민 수용 시설의 아이들(1945)

전쟁은 순진무구한 동심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공포와 상처를 남겼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인 사상자는 1300만을 넘었고 수백만의 아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었다. 

  

 

동독 경찰관들이 동베를린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1961.10.31). 

 

 

아직 사용할 만한 건축 자재를 분류하는 폐허 속의 독일 여성들(1946.6.1). 

 

 

1. 베를린 장벽 때문에 헤어진 형제가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다시 만난다. 서베를린(1963) 

 

2. 1972년 부활절, 보른홀머 슈트라세 경계 검문소에서 동베를린으로 가는 통행증을 발급 받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들(1972.3.30).

 

 

서베를린 사람들이 장벽 너머 동독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1961).

3m 50cm인 베를린 장벽은 대개의 경우 건너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낮다.

 

 

1972년 부활절, 보른홀머 슈트라세 경계 검문소에서 동베를린으로 가는 통행증을 발급 받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들(1972.3.30)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이웃 나라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해, 나치 독일 강점기 치하

"게토(유대인 거주 지역)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다.

일명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

 

 

일본은 눈도 없고,귀도 없는가?

무식해서 독일 총리가 왜 무릎을 꿇고 있는지 모르는가? 무식하면 배워라!

그래서 우리는 너희를 ㅉㅂㄹ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1982년 4월 10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아르스벡 지역에서의 핵병기 철폐를 위한 평화 행군.

핵무기 저장고를 향해 서 있는 남자 앞쪽으로 미사일 3기가 보인다.

남자의 등 뒤에 "행진에 동참하지 않는자, 아직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는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동.서독 정상 회담을 마친 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사진 중앙)가 기차에 오른 동독 총리 빌리 슈토프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1970.5.21). 

 

 

 

 

 

1990년 9월 22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독일 기독교 민주 연합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헬무트 콜 총리.

이로부터 약 열흘 뒤인 10월 3일 콜은 역사적인 독일 통일을 이루어 냈다.

 

 

 1.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수많은 사람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가고 있다(1989.11.11).

 

2. 1989년 12월 31일 일요일, 동베를린 장벽을 망치로 부수고 있다.

 

 

1. 장벽 붕괴 이듬해인 1990년 3월 14일 총리 선거에 출마한 헬무트 콜의 선거 유세장인 베를린 오페라 극장 앞 광장에

모인 군중. "베를린 장벽 1주년에는 하나의 독일로!"라는 깃발을 들고 콜을 지지하고 있다. 

 

2. 1991년 7월 27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년째 맞은 즈음. 중앙 포츠담 광장의 베를린 장벽 박물관 전경

 

 

1. 한 젊은이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사이에 놓인 기둥에 올라가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1989).

 

2. 베를린 장벽을 통과해 서독으로 진입한 동독 차량들을 향해 서독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1989.11.11).

  

 

1. 하늘에서 내려다 본 튀링겐 주 프랑켄하임과 뢴의 그린벨트 지역(2008.7.28).

사진 중앙에 구 동독 시절의 감시탑이 보인다.

 

2. 헤센 주 람바흐와 튀링겐 주 볼프만스게하우 사이의 그린벨트(2008.7.28)

 

 

베를린 장벽이 있던 시절, 동. 서독 국경이던 엘베 강은 이제 유럽 그린벨트의 젖줄이다(2008.7.29).

 

 

발트 해 연안까지 닿은 그린벨트(2008.7.29).

메클렌부르크포어포먼 주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경계이며 독일 그린벨트 최북단이다.

 

오늘날 통일과 평화의 상징이 된 독일의 그린벨트는 DMZ 60년을 맞는 한국의 희망이다.

40년간의 분단으로  1,393km의 철의 장막이 국토를 두 동강 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대화를 멈추지 않고 마침내 통일을 이뤄낸 독일,

 그 역사의 현장인 그린벨트에 서면 한반도 통일의 길이 보이는 듯 하다.

허지만

다민족인 독일도 통일일 하는데 한민족인 우리가 아직도 총칼을 갖고 대치하는 상황은

진정 위정자들이 민족의 미래를 위하는지, 아니면 자기 혹은 자기 편의 사리사욕을 위함인지 묻고 싶다.

 

 

 

 

 

경기도 연천에서 항공 촬영한 북한 GP(2009.11.2)

겉으로 보기에 작은 초소 하나만 솟아 있다. 막사와 벙커는 초소 뒤와 땅 밑에 숨겨져 있다.

 

 

 

남보다 북이 더 가까운 서해상 최북단 섬 백령도(2010.2.17).

해병대를 비롯한 우리 군 최고 정예 부대가 배치된 중요 방어 거점이다.

 

 

남방 한계선의 눈 덮인 순찰로(2010.2.12).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60년 세월 동안 철책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다.

 

 

여치 한 마리가 60년 세월의 녹이 붉은빛을 더해 가는 철조망 위에 앉아 있다(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