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경
심술궂은
가을
바람
연분홍
꽃
가슴
풀어놓고 가니,
마실
가던
지렁이
넋 잃고 바라보네.
담장
위
하얀 박꽃
놀라,
가지에 둥근 박 매달고
박꽃은
가로등이라.
재
너머
반백 중년
속
울음
왜 우는지.
- 시작 노트 -
가을 한낮
바람 불어
어여쁜 꽃 앞가슴을 열어 버리니,
지나던 지렁이가 햇볕에 말라 죽어 가는 줄도 모르고 넋 잃고 바라봅니다.
놀란 박꽃이
서둘러 둥근 박을 담장 위에 올려놓고 보름달이라고, 박꽃은 가로등이라 합니다.
초가집 지붕 위에 둥근 박이 열렸습니다.
박은 조금씩 커지면서 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만큼 커지면 자신의 몸에서도 달처럼
환한 빛이 나리라고 잔뜩 기대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달은 보름달만큼 커졌지만, 둥근 박에서는 아무런 빛도 나지 않았습니다.
박은 박일 뿐 빛나는 보름달이 될 수 없지요.
삶에서
우리는 각자의 소임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