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北漢山)
언제: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어디: 북한산(우이동-도선사-위문-백운대-위문-보리사-북한산성 통제소)
참 오랜만이다.
학창시절엔 우이동으로 소풍도 갔고 우이동에 친구가 있어 퍽이나 어울려 인수봉 밑까지 갔었는데
정작
북한산 백운대를 오른 건 서른 중반이었다.
지금은 연락조차 끊긴 친구 둘과
정릉에서 시작하여 대성문을 거쳐 백운대에 올라 도선사로 하산했는데
환갑이 지난 오늘은
도선사를 둘러보고 백운대에 오르니 조금은 늦은 산행이다.
하루재에서 점심을 마치고
인수봉을 올려다보니 암벽등반을 하느라 인수봉에 개미처럼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부러웠다.
토요일
백운대에 오른 사람이 많다.
길은 외길.
양보하고 배려하며 질서를 지키면 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정말이지 산에 오르는 분은 먼저 산행에 대한 예의부터 배우고 산에 오르면 어떨까?
백운대에 서니
백운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에 조금은 언짢았던 마음은 사라지고 가슴이 팍 터진다.
북으로는 인수봉 위용과 공룡 등처럼 도봉산 봉우리가 솟아있고
동으로는 수락과 불암 남으로는 만경대 노적봉 멀리 문수봉 너머 남산과 관악이 조망되며
서으로는 발아래 원효봉과 멀리 한강이 빛을 내며 서해로 달리고 인천 계양산이 우뚝 솟아있다.
하산은
위문에서 북한산성 계곡 보리사를 거쳐 북한산성통제소로 하산했다.
위문
노적봉과 멀리 보현봉 그리고 문수봉
만경대
백운대 정상
백운대-뒤로 인수봉-도봉산-수락산
만경대
노적봉과 멀리 문수봉 너머 관악산
(좌 의상봉)-(우 원효봉)과 멀리 한강
노적봉
보리사
북한산은 높이 837m.
예로부터 부아악(負兒嶽)·화산(華山)·한산(漢山)이라고도 했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811m), 남쪽에 만경대(800m)의 3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급경사를 이루어 산세가 험하다.
만경대는 무학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올랐다하여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다.
인수봉은 암벽등반의 최적지이며, 그밖에 노적봉·보현봉·문수봉·원효봉 등이 있다. 북서쪽의 원효봉과 나한봉에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 있다.
남서쪽 비봉 기슭에는 유서 깊은 사찰인 승가사와 조선시대 궁중사찰이며 경치가 뛰어난 화계사를 비롯해 태고사·도선사·원효암 등의 사찰이 있다.
승가사 경내의 북한산구기리마애불좌상(北漢山舊基里磨崖佛坐像 : 보물 제215호)을 비롯하여 태고사원증국사탑비(太古寺圓證國師塔碑 : 보물 제611호)·
동장대지(東將臺址)·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新羅眞興王巡狩碑遺址 : 사적 제228호) 등 많은 유물·유적이 있다.
복잡하리만큼 많은 것들이 공존하는 그곳에 도심의 허파 국립공원 북한산이 있다.
도심 속의 산은 신의 축복이다. 빌딩 숲속에 묻힌 혼탁한 도심.
그 한복판에 조용히 도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국립공원 북한산. 이산은 복잡한 도심 속에 평화스럽고 푸른 생명의 산이다.
북한산.
이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고 친근한 이름이다.
수십 개의 계곡과 능선들이 흘러내려 우리들의 주거지 바로 앞까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도심 어디에서든 우리는 북한산의 하얀 화강암암봉들과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초록빛 생명의 숲을 볼 수 있다. 그 숲은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산수를 만들고. 물을 저장하고,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준다. 그래서 북한산의 공기는 항상 상큼한 내음을 풍긴다. 북한산의 맑은 공기와 유서 깊은 북한산성, 그 역사의 품에 안기는 가장 빠른 길은 대서문을 지나는 길이다. 대서문을 지나 낮은 지형에 만들어진 대서문의 전략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축조한 중성문을 들어서면 어디서나 지나온 역사의 흔적과 옛 왕조의 입김을 느낄 수 있다. 옛 관리들의 선정을 기리는 수많은 선정비들. 수려한 계곡에는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고, 산성을 지키는 승군이 주둔했던 136칸의 대 사찰이었던 중흥사지. 원증국사탑과 원증국사탑비 등 두 종의 보물을 보존하고 있는 고찰 태고사를 지나면 유사시 왕의 거처가 되었던 행궁지의 흔적과 금위영, 어영청이 주둔했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대남문에 오르면 북한산성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사적 162호로 지정된 북한산성은
삼국사기의 백제 개로왕 5년에 토성으로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요충지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 후, 300여 년 전인 숙종 37년 당시 길이 7620보의 장대한 석성으로 축조되었고,
6개의 성문 7개의 암문과 장수의 지휘소인 3개의 장괘 등을 조성하였다. 그 중 제일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대남문는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등산기점이 되고 있으며, 그 옆에 문수봉은 거대한 암벽사이에 천연의 고찰 문수사를 잉태하고 있다. 문수봉의 산새는 그대로 능선을 타고 서남쪽 국립공원의 끝에 자리 잡은 향로봉과 족두리봉에 이를 때까지 그림과 역사를 같이 볼 수 있다. 의상능선의 그 절묘한 바위들과 조화로 꼭 사물을 얹어놓은 듯한 기암 사모바위, 그리고 사모바위아래 승가사의 보물 두 점. 고려 초기 작품인 마애석가여래좌상과 석조승괘대사상은 천여 년의 풍상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있다.
비봉. 비석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비봉이라 불리는 험난한 바위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있다.
일찍이 국보3호로 지정된 이 순수비는 1970년대 초 불식을 막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보존된 원비를 그대로 재현하였다.
대남문에서 대동문으로 가는 능선길은 계속 북한산성과 같이 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저 멀리 서울 시내를 조망하면서 대성문을 지나고, 보국문에서 칼바위의 빼어난 자태를 감상하다보면 대동문을 만난다. 대동문에서 백운대를 향하는 길은 연인과 함께 걷고픈 낭만의 길이다. 성곽을 옆에 두고 걷거나 울창한 수목사이로 잘 정돈된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이층누각 동장대. 문루에 오르지 않아도 산성 내에 모든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초소이자 장수의 지휘소다운 탁월한 장소. 북장대와 남장대의 삼각지점에 설치되었지만 동장대 하나만이 예전의 모습을 재현해주고 있다. 지척에는 북한산 대피소가 있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등산객들이 약수 한 모금으로 갈증 풀 수 있는 능선대의 유일한 곳이다.
노적봉과 만경대가 만나는 안부를 지나 위문에 올라서면 인수봉과 만경대 그리고 백운대의 삼각점 중심에 서게 된다.
정면에 보이는 인수봉과 백운대의 거대한 화강암덩어리가 내뿜는 위압감은 인간을 더욱 작고 겸손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산악인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왔던 인수봉. 그 거대한 암벽에 붙어있는 암벽등반가의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도시문명 속에서 도시민들은 이런 스릴과 무음 속에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수봉 옆 백운대 사이에 북한산 최고의 절경이 숨겨져 있다. 비경을 간직한 비경을 숨긴 숨은벽. 두 거봉사이에 숨어서 하늘만 보고 자란 날카로운 암능은 위엄에 놀라 오랫동안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간직해왔다. 완벽한 암벽장비를 착용해야만 허용되는 이젠 소중히 간직할 대대손손 그 숭고함을 전해줘야 할 또 하나의 자원이다.
백운대 정상에 서면 태극기가 감동을 안기고 바로 이곳이 북한산 국립공원내의 최고봉임을 알게 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발밑에 있기 때문이다. 836.5m 이곳에서 사람들은 정복의 기쁨을 맛본다. 정상에 발을 딛는 순간 사람들은 도심에서 묻혀온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버린다.
그래서 현대 도심을 사는 사람들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북한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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