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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4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4

 

2009년 8월 18일 서거

 

 

▲ 김대중 대통령 서거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서거했다. 입관식에서 비서진들이 마지막 보고를 하고 있다.

 

 

 

 

 

 

 

 

 

 

 

 

 

 

 

 

 

 

 

그 꽃

 

그 꽃

피었을 적 몰랐는데

 

그 꽃

지고 나니

 

향기

더욱

그립습니다.

 

雨村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고 그분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서도 아니다.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져 불의에 저항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어떤 사람처럼 민주 투사란 양의 탈을 쓰고 국민을 속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국민을 팔아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하여

불의에 복종한 사람도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겨레를 위해 목숨을 건 지도자였고 퇴임 후에도 불의에 대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일갈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특별한 체험)

 

그 분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르겠지만,

국민의 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개혁을 단행해 예상보다 3년을 앞당겨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냈다.

민주화운동보상법, 의문사진상규명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각종 민주화 입법을 추진한 것도 업적으로 꼽힌다.

또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포용해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 공로로 헌정 사상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분단의 벽을 허물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체제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원칙이 결여된 대북 유화정책과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에 따른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심화로 사회갈등이 확산됐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민주화를 제대로 실현됐던 때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라며 "인권, 여성정치, 대북관계, 정치적인 민주화 같은 부분에서

 과거 권위적인 정부에서 진일보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국내사정을 돌아보면 경제 민주화나 사회 양극화 문제에서 김대중 정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당시 국가부도의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펼쳐간 것이 이후

 시장위기나 양극화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