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남한산성(南漢山城)-2

 

남한산성(南漢山城)-2

 

 

언제: 2012년 8월 31일 금요일(12:30~17:30)

어디: 남한산성

 

남한산성(南漢山城)

 

사적 제57호. 둘레는 약 8,000m.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성을 쌓고 이름을 주장성(晝長城)이라 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하고 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溫祚)의 성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1624년(인조 2)에 왕이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로 하여금 성을 개축하게 하여 1626년 공사를 끝마쳤는데,

4문(門)과 16암문(暗門), 성가퀴[女墻: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 1,897개, 옹성(甕城), 성랑(城廊), 우물, 샘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공사는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으로서 8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진행했고, 이들을 위해 7개 절을 지었으나

지금은 장경사(長慶寺)만 남아 있다.

그뒤 순조 때까지 여러 시설을 확장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칸 반, 하궐(下闕) 154칸이었으며, 1688년(숙종 14) 좌덕당(左德堂)을 세웠고,

1711년(숙종 37)에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우고, 남문 안에는 사직을 모실 우실(右室)을 두었다.

1624년에 세운 인화관(人和館:客館)을 1829년(순조 29)에 수리했다.

관청으로 좌승당(坐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 등과 군사기관으로 비장청(裨將廳)·교련관청(敎鍊官廳)·

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을 두었다. 또한 종각·마구(馬廏)·뇌옥(牢獄)·온조왕묘·성황당·여단(塾壇) 등을 두고,

승군을 총괄하는 승도청(僧徒廳)을 두었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총융청이 맡아 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어 여기에는 전·좌·중·우·후의 5관(五管)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서장대(일명 守禦將臺)만 남아 있다.

 

이밖에 현절사(顯節祠)·연무관(演武館)·지수당(池水堂)·영월정(迎月亭)·침과정(枕戈亭) 등이 있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했으나,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에 항복하는 굴욕을 당했다.

오늘날까지 여러 차례 보수를 하고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북문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잇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으로

싸음에 패하지 않옥 모두 승리한다는 뜻으로 전승문이라도 하였습니다.

 

 

 

 

 

 

 

 

 

 

 

 

 

 

 

 

 

 

 

 

 

연무관

 

 

연무관 앞의 느티나무

 

 

해공(海公) 신익희선생 동상

 

 

지수당(池水堂 경기 문화재자료 제14호)

 

 

 

 

 

동문=좌익문

 

언덕 위에 세워져 통행은 다른 곳을 이용했답니다.

 

 

 

 

 

 

 

 

암문

 

 

 

 

 

 

 

 

 

 

 

 

남문= 남한산성의 중심문= 지화문(至和門)이라도 하며 정조의 글씨체

 

  

 

 

 

 

 

 

 

 

 

 

 

인천에서

중교통으로 남한산성 가는 길

 

인천에서 1호선 지하철 타고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잠실역 8호선 다시 환승하여

산성역 하차 2번 출구

약 100m 전방 버스 정류소 52번 버스 타고 남한산성 종로 종점 하차

산성 시내 구경- 수어장대- 서문- 북문- 동문- 남문   

쉬엄쉬엄 남한산성 한 바퀴 걸으면

대략 4~5시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