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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꽃의 소묘/김춘수

꽃의 소묘(素描)

□ 1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
대낮에 불을 밝히면
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
빛깔이며 향기(香氣)며
화분(花粉)이며......나비며 나비며
축제(祝祭)의 날은 그러나
먼 추억(追憶)으로서만 온다.

나의 추억(追憶) 위에는 꽃이여,
네가 머금은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 2

사랑의 불 속에서도
나는 외롭고 슬펐다.

사랑도 없이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죽지 않는 알몸으로 미소(微笑)하는
꽃이여,
눈부신 순금(純金)의 천(阡)의 눈이여,
나는 싸늘하게 굳어서
돌이 되는데,

□ 3

네 미소(微笑)의 가장자리를
어떤 사랑스런 꿈도
침범(侵犯)할 수는 없다.

금술 은술을 늘이운
머리에 칠보화관(七寶花冠)을 쓰고
그 아가씨도
신부(新婦)가 되어 울며 떠났다.

꽃이여, 너는
아가씨들의 간(肝)을
쪼아 먹는다.

□ 4

너의 미소(微笑)는 마침내
갈 수 없는 하늘에
별이 되어 박힌다.
멀고 먼 곳에서
너는 빛깔이 되고 향기(香氣)가 된다.
나의 추억(追憶) 위에는 꽃이여,
네가 머금은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너를 향하여 나는
외로움과 슬픔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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