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고대산(高臺山) 산행기 2007.12.15.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2m의 산.
2007년 마지막 산행을 고대산으로 택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경원선의 중단점이 신탄리이기에 경의선처럼 경원선도 빨리 이어지기를 바램과
고대산에 올라 북한땅을 바라보며 평화통일의 기원하고저 하는 마음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전날 일기예보를 듣지 못했는데 중부이북과 강원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었단다.
아침 09:00 인천 동암역에서 전철 이용하여 동두천에 도착하니 벌써 11시 20분
동두천에서 신탄리는 매시 50분 기차가 있어
11:50 동두천 출발 신탄리에 12:35 도착
동두천 역에서는 매시 50분에 신탄리 行 기차가 출발한다.
약 45분 소요. 차비 1,000원
동두천에서 신탄리 가는 길
추수 끝난 들판에 아직 볏짚단이 군데군데 서서 황량한 들판을 지키는 보초가 되었다.
들판에서 먹이를 찾던 철새들이 철마가 씩씩거리며 지나니
행여 자기들에게 해를 줄까봐 놀라 하늘로 오른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내렸다. 걱정이다. 혼자 오를 수 있을런지......
드디어 신탄리 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런데 모두가 산행을 하는 줄 알았는데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다시 버스로 철원쪽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신탄리역
1913년 07월 10일 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1945년 8월 15일 8.15해방과 동시에 이북에 배속되었다가
1951년 9월 28일 서울 수복으로 탈환, 1954년 7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지금의 역사는 1961년 12월 30일 완공되었으며
1971년 11월 3일 철도 중단점 표지판을 설치하여 경원선 최북단역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휴전선으로부터 약 4km 위치해 있어 실향민과 안보 관광객, 고대산 등산객이 주로 찾고 있는
애환 깊은 역이다.
눈에 덮힌 신탄리 역의 기차
고대산은 3개 봉우리(정상 고대봉832m. 삼각봉830m. 대광봉827m.)
어쩔 수 없다. 나도 동물이기에...... 짐승들은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는데
나는 나의 발자욱을 찍었다.
고대산 등산로 입구 (12:55) 입장료 1,000원
매표소에서 고대산 오르는 길은 3 코스가 있습니다.
1코스는 큰골 따라 오르는 7.4km(왕복 약 4시간 30분).
2코스는 칼바위 넘어 가는 길(왕복 6.6km 약 4시간)이고,
3코스는 표범폭포로 쪽으로 해서 760m의 군부대 쪽 7.0km(왕복 약 4시간 20분)로 오르는 그것입니다.
개 요 : 금강산 가는 길목, 경원선 철도가 끊겨 있는 철도중 단점인 연천군 신탄리역에 인접한 고
대산(832.1m)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고 등산으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으로 등산여행에는 안성맞춤이다.
고대산(高臺山)의 유래는 "큰고래" 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薪炭)지명에서 연루
된 것으로 보이며 "방고래"(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
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하고 함)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高臺山)
이라고 한다.
지형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 는 뜻과 의미가 담긴 곳이라 하여 고태(高台)라고도 표
기하였다. 고대산은 옛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말미암아 임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목재와 숯을 만드는데도 적합한 곳으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
여 신탄막(薪炭幕)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실질적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이 유
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1907년 11월 4일 의병진 150명과 임진강에서 의병들을 토벌하러 파견된 일본군 보
병 제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 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 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서,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등산로 오르는 길
나는 초행에다 눈이 많이 내려 오르기 쉬운 제 1등산로로 올라 2등산로로 하산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라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내가 늦었기에 아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거란 믿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다른 등산로는 단거리이지만 난 코스이라 나는 제 1등산로( 2시간 43분) 선택했다.
제 1등산로
출발하면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두개 사용하였다.
두려움도 있었다. 처음 길인데 눈속을 걷는다는 것이......
그러나
내가 누군가! 어딘들 혼자 가지 않았던가!
마침 한 사람 오르는 분을 만났다.
1등산로 문바위에서 동행한 사람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나만 혼자 정상을 향해 올랐다.
고대산 8부 능선의 곳곳에 토치카가 북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수많은 젊음이 긴 세월 청춘을 바쳐가며 쌓고 다듬고 보살피던 진지는 이제 버려진 채 폐허가 됐다.
나 역시
강원도 화천 사방거리에서 8"포병 기준포 포반장 그리고 내무반장으로 청춘을 불살랐다.
누가 이런 설경을 볼 수 있으랴! 오직 오른자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고대산의 雪花!
일반적으로 '눈꽃'은 설화(雪花), 상고대, 빙화(氷花) 등 세 종류로 나뉜다.
가장 흔한 게 설화다. 말 그대로 눈이 나무 가지에 쌓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날리고, 햇살 아래 쉽게 녹는다.
상고대는 눈꽃과는 다르다. 일종의 서리다. 나뭇가지가 머금은 습기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거나, 구름이 스쳐가다가 얼어붙은 것이다. 결이 있고 단단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추운 날이 지속되면 키가 더 자란다.
'빙화(氷花)'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이른 아침에 흔히 볼 수 있다. 설화나 상고대가 녹아 흐르다가 기온이 급강하할 때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햇살을 받으면 수정처럼 영롱하다.
남쪽으로 멀리 소요산이 다가온다.
멀리 고대산 정상이 보인다.
눈덮힌 겨울 산하
저 정맥 핏줄기 같은 우리의 겨울 산하 그곳에 우리의 영혼은 흐르고 있다.
제 1등산로에서 혼자 올라 드디어 대광봉에 서다.
전방이라 산 몰랑에는 대부분 벙커로 되어있고 이렇게 공기구멍이 설치되었다.
페허가 된 벙커
멀리 보이는 철원 금학산(947m)
철원평야
뭔지 모르겠지만 시설물이 있다. 아마 악조건 때 군수품 운반 레일인 것 같다.
드디어 정상에 서서 제 1탄으로 북을 향해 셧터를 눌렀다.
저 앞 푸른 지붕은 국군 막사 그 아래 백마고지 그 뒤로 철원평야 그 너머가 북한이라는데......
15:00 고대산 정상에 올랐다. 다행히 두 젊은이가 있어 사진을 부탁했다.
정상에서
저 아래 산 봉우리에 우리 군인 파란 지붕의 막사가 보인다.
당겨서 찍으니 선명하게 태극기가 보이고 저 멀리 철원평야의 농지정리 된 논이 인상적이다.
15:20 하산을 시작했다.
고대산에서 소요산 그리고 서울을 향한 우리의 영혼이 이어진 것 같은 산 줄기 줄기.
아! 소리쳐 불러보고 싶은 눈 덮힌 우리의 겨울 산하!
군수물 운반 레일은 구불 구불 삼각봉을 넘어 이어졌다.
제 2등산로로 하산하다 뒤 돌아 본 정상 고대봉
2등산로는 험하고 가파랐다. 칼바위 능선은 가장 난 코스였다.
바람에 눈이 날리고 바람도 드세고 좌우가 절벽이라 여차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칼바위 능선
저 아래 신탄리.
칼 바위 능선 아래 말 바위 능선도 만만치 않다.
아무도 없다 흔적을 따라 혼자서 눈길을 내려오는데 두 다리가 무척 피곤했다.
16:40 하산 완료
경원선 철로 중단점의 노란 표지판.
경원선의 중단점
청국장에 소주 한 잔 곁들인 식당에서 신탄리 역과 고대산.
어두워지니 신탄리역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이 아름답게 점등 되었다.
신탄리 역에서
저 고개 넘으면
철원평야가 보인다는데 걸어가는 이 없고
저 모퉁이 돌아가면
북녘땅이 보인다는데 삭풍에 솔(松)이 울어
가지 못하고
경원선 중단점 노란 탑 아래
나는 섰다.
의식있는 생물은
해 지면
제 집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있는데
경원선,
숨을 멈췄는가?
녹쓴 철로 녹쓴 기차는 더 가지 못하고 망부석이 된지
어언 60년.
객지에서 어둠은
고향생각이 나서 슬프고
등 굽으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먼 곳에서 어머님을 기다리실 아버님도 그리웁고
우리 아홉남매의 징징거리던 추억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누님들은 할머니가 된지 오래고
여동생도 지 손녀를 핥고 빨며
오빠 어려운지도 모르는
뻔뻔한 중년여인이 되었다.
어둠 그리고 객지 덩달아 배도 고프다.
중국집도
막국수 집도 이제 5시 30분인데 영업이 끝났단다.
전방의 일상일까?
청국장집에서 소주 한 병을 까니
덜덜하다.
술김에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동짓달 초 엿새 초승달이
나를 부른다.
아, 갈곳이 있구나!
돌아갈 곳 있구나!
말도 못하고 코만 씩씩거리는 기차를 타고
아내와 내 새끼들이 기다릴
집으로 가야지
어둠에서 갈 곳 있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신탄리여!
외롭거든 나를 불러 동무해라
고대산아!
슬프거든
날 붙잡고 울거라
너희를 두고 간다만 내 마음과 정은 여기 내려두마.
이왕 울려거든
삭풍에 우는 솔처럼
그렇게 설웁게 울어라.
18:00 출발하는 동두천行 기차
하늘에는 동짓달 초엿새 초승달이 떠 있다.
학창시절에 서울에서 순천까지 15시간씩 걸려서 방학이면 집에 갔다.
그 시절 애환을 싣고 떠나던 3등열차!
그 이름은 정겨운 완행열차!
그러나
지금의 이 기차 내부는 얼마나 밝고 향그러운가!
선진국 어느 나라 기차보다 못 할 것 없는 상쾌한 기차 내부다.
다만
이따금 못난 사람들의 추태만 없다며.....
-여행후기-
지구상의 유일한 단일민족 분단국!
그 아픔을 느끼며 평화통일이 빨리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07년 마지막 산행을 고대산으로 정했다.
하얗게 눈은 내려 발목까지 찬 2007년 마지막 산행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되지않은 친구 셋이서 약 15년 전 북한산 겨울 등반때 사용했던
아이젠이 이렇게 기특하고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그 친구들을 생각했다.
약간 무리했던 산행이었다.
거리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이기에 최소한 아침 07:00 출발을 했다면
10:00 부터 산행을 할 수 있어 좋았을 터인데
점심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행을 하니 몸은 쉬 피곤하고
관절이 좋아할 이유가 없지.
늘
느끼는 일이지만 혼자 여행을 하거나 산행을 하는 것은 이제 자제해야 할 나이이다.
지난 가을 설악산 대청봉에 오를 때 부터 외로움을 느꼈었다.
이젠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여행을 해야 할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산행을 무사히 마치며 혼자라도 여행할 수 있게
배려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어떤 악조건에도 굽히지 않은 두 다리에 감사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머리에 감사하고
대담한 용기로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한 가슴에 감사한다.
고대산!
구비구비 정맥핏줄처럼 이어진 우리의 겨울 산 그리고 강과 들을 바라보며
그 정겨움과 웅장함에 가슴 숙연해 진다.
너는 태초부터 이곳에 서서
드넓은 철원평야 그너머 아스름한 북녘하늘과 땅의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지 않고
비와 바람과 눈을 맞으면서도
담담히 서 있구나.
신탄리 역!
머잖아 녹쓴 너의 철로위에도 반질거리게 경원선 기차가 금강산을 지나 원산까지
신나게 달리게 될것이야.
아직까지의
분단의 아픔을 어찌할 수 없어 한잔의 술로 대신하여 마시며 나는 떠나네.
잘 있게!
머잖아 남풍이 불면 다시 찾아 오려네.
'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동구릉(東九陵) (0) | 2009.10.19 |
---|---|
(여주) 세종대왕릉과 신륵사를 다녀와서 (0) | 2009.07.08 |
(경기 포천) 산정호수 (0) | 2007.10.16 |
(경기 동두천) 소요산과 자재암 (0) | 2007.09.09 |
(경기 파주) 비 내린 날 임진각 (0) | 2007.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