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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란(Iran)

 

이란(Iran)
 
 
 
개요 : 중동의 이슬람공화국. 정식명칭은 이란이슬람공화국이다.
 
면적 164만 8000㎢. 인구 6827만 8000. 인구밀도 41명/㎢...
 
수도-테헤란
  
주요언어-페르시아어
  
종교-이슬람교
 
통화-이란리얄(RIs),
 

  
이란 최남단 호르무즈 해협 반달 압바스 항 근처에 항만공사 건설 현장이 두 곳이 있었기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1978년 5월 19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공항에 발을 내렸다.
 
테헤란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 떠날 때 우리나라도 아카시아가 꽃이 피고 있었는데
테헤란의 아카시아도 피고 있어 낮설움은 덜 하였다.
도로변 화단엔 칸나가 붉게 피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하얀 얼굴에 잘 생긴 페르샤 왕자들과 공주들이었고,  어쩌다 이슬람 전통 옷을 입고 다닌 여인들도 보였다.
한마디로 19세기에서 20세기의 의상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테헤란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른 후, 우리는 반달 압바스에 도착하였다.
반달 압바스항은 호르무즈 해협의 요충지로써 페르시아만의 사우디, 바레인, 아랍토후국,
쿠웨이트, 이라크,카타르의 모든 교역선이 이곳을 통과해야 하기에 중동의 맹주라고 하는
이란으로써 너무나 중요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멀리 아라비아 반도인 오만의 산이 맑은 날은 눈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항만 공사 현장의 선발대로써 본 공사가 진행되기 까지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히
반달 압바스에는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교포가 있어 회식도 멋지게 할 수 있었고
다행히 이슬람 국가 이면서도 Pop house도 있고 술집들도 많아 지내기엔
별 어려움은 없었다. 가까운 곳에 노천 유황온천이 있어 쉬는 날이면 그곳에 가서 온천욕을 하곤 했다.
그러나
기온이 문제였다. 차츰 하절기에 접어드니 뜨거운 지열과 태양에 우리는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다행히
기능공들도 속속 도착하여 숙소도 짓고 사무실도 지었고 본 공사도 착착 진행될 즈음
나는 1979년 2월에 몰래 터그 보트를 타고 이란을 탈출해야 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영향을 받던 팔래비 왕조가 종교지도자 호메니에게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는 재빨리 기능공들을 준설선에 태워 바레인으로 탈출시키고
최정예 요원들만 남아 나머지 정리를 하고 1979.2.15.이란을 탈출
생사의 고비를 넘긴 36시간의 폭풍우의 사투끝에 페르샤만을 횡단하여 바렌인에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사막, 낙타 때 그리고 오아시스의 나라 이란

 
‘히잡’ 이라는 검은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여인들, 검은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 이국적인 용모를 가진 남자들, 그리고 사막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낙타 떼와 오아시스.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이며 이슬람 세력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시아파의 본고장 이란으로 떠난 길.

- 사막의 밤하늘에 본 별무더기 -

“아이고 허리야.”

엄살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퀘타에서 이란과의 국경지대인 타프탄까지 딱딱한 버스의자에 통조림처럼 끼어 가자니 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 중간에 내려 허리 한번 펼 간이역도, 하다못해 그 흔한 그 휴게소도 보이지 않는다. 황량한 사막과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가도가도 끝이 없다. 그 와중에도 버스 안의 남자들은 멀리 동양에서 온 여행자를 구경하느라 눈을 반짝인다. 외국 여성에 대한중동 남자들의 호기심에 대단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버스 안의 수많은 눈동자가 줄곧 나에게서 떠나지 않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사막을 계속 달리던 버스는 오후 8시가 되자 갑자기 멈춰 섰다.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더 황당한 건 운전기사까지 내렸다는 사실이다. 영문도 모르고 멀뚱하니 버스에 앉아 있는데, 버스 밖의 사람들이 사막 한가운데 보자기를 깔더니 해가 지는 쪽을 향해 절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슬람교 교리에 따라 석양을 향해(정확히 말하면 메카를 향해) 절하는 모습은 이방인의 눈에 낯설기만 했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다시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버스 안으로 확 올라왔다. 사막 한가운데서 타이어가 펑크 난 것이다. 버스에 내려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한쪽에선 소변을 보거나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등 여유로운 모습이다. 화장실은 가야겠는데 허허벌판에 몸을 가릴 나무 한 그루도 없던 터라 결국 우산을 펴서 가리고 소변을 보았다. 우산이 뚫어질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느껴진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얼마쯤 달렸을까, 드디어 버스는 사막에 하나뿐인 휴게소에 정차했다.

“콜라 한 병, 아니 두 병 주세요!”

양손에 환타와 콜라를 흐뭇하게 쥐고 휴게소 마당에 깔린 카펫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주위가 캄캄해지자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갑자기 내게 확 달려들었다. 불빛 때문에 보이지 않던 작은 별들마저 또렷이 빛을 발하며 밤하늘은 별천지가 되는데, 이 또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장관이다. 지금까지 일생에 본 별을 다 합해도 그날 밤 사막에서 본 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결국 버스에 사막을 20시간가량 달려 이란의 국경인 타프탄에 도착했다. 출국 신고를 위해 이란 출입국 사무소로 가니 여자들은 모두 스카프를 쓰라고 했다. 인도에서 구입해 들고 오긴 했지만, 어떻게 하는 줄 몰라 난감했다. 우두커니 스카프를 들고 있자, 사무소의 여직원이 대신 둘러주었다.

간단히 입국 신고 후에 이란 땅을 밟으니 공기도 후텁지근한 것 같고, 사람들도 다 사담 후세인 같이 생긴 것 같아서, 또 새로운 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약간 찝찌름한 이란 물로 목을 축이고 픽업 트럭에 올라 밤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하염없이 사막을 뚫고 가는데 사막 한가운데 웬 서양 여인이 구조를 청하고 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둘렀지만 반바지 차림인 걸 보고 이란인 운전기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이 독일 여인의 캠핑카가 사막 한가운데에 모래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이가 마흔은 되어 보이는 캐더린은 독일산 셰퍼드 한 마리를 동무 삼아 거대한 캠핑카를 몰고 홀로 여행 중이란다. 버스에 밧줄을 걸어 캠핑카를 당겨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운전기사는 왜 이런 무거운 차를 몰고 사막으로 들어온 거냐고 툴툴거리면서도 앞에서 끌어보고 뒤에서 밀어보며 열심이다. 마침 도로에 지나가는 거대한 트레일러가 보여 얼른 도움을 청했다. 옆자리에 아들과 부인까지 태운 트레일러 주인은 친절하게도 트레일러를 몰고 도와주러 왔다. 트레일러의 강력한 힘을 빌려 가까스로 모래에서 빼냈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트레일러가 모래에 빠져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시동을 거니 헛바퀴 돌며 소리만 요란할 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트럭의 물도 거의 다 마셔버리고 목이 타들어갔다. 결국 모래에 빠진 트레일러와 캠핑카를 위해 구조 차량을 보내주기로 약속하고 다시 트럭 짐캄에 올랐다. 사막 한가운데 빠진 두 대의 차량을 뒤로하고 도로로 나오니 운전기사가 다시 투덜거린다. 트럭의 물 한 통을 아까 다 마셔버린 것이다. 픽업 트럭 짐칸에 앉아 있으려니 날은 덥고 목은 마르고 정말 죽을 지경이다.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움켜잡고 달리는 트럭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목에서 모래가 느껴진다. 목이 타들어가고 따가운 햇살에 노출된 피부는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참 사막을 달리다 보니 길가에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인다. 세상에 이보다 반가운 광경이 있을까. 그날 그 가게는 목마른 우리에게 오아시스였다.

- 8천 년 전의 고대 도시 아게 밤 캐슬 -

밤의 조그만 도시지만 ‘아게 밤 캐슬‘ 이라는 12세기의 고성과 성 안의 유적을 진주처럼 품고 있다. 간밤의 여독 때문에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점심을 벅고 한낮의 햇볕을 피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무렵 아게 밤 캐슬로 향했다. 택시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고하고 예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성벽이 보인다. 담장이 높게 빙 둘러 있어 성 안의 모습은 짐작되지 않았으나, 성벽 밖에서 얼핏 보아도 성의 규모를 기대하게 만든다.



1만5천 리알(한화 약 2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성문을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날 만큼 멋진 광경이 쫘악 펼쳐진다. 돌산 위에는 거대한 성이 있고, 성 밑으로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다. 벽돌로 지은 건축물에 황토를 발라 대단히 품위 있는 옛 시대의 정취가 느껴진다.

이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질리지 않는다. 마구간이었다는 곳, 시장 터, 공중 화장실…. 지금은 황토벽과 기둥 같은 흔적만 남아 있다. 8천년 전 생활상을 상상하며 걷자니 마치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지금이라도 수레가 지나가며 길 비키라고 소리 지를 것 같다.

어느 지방이나 그곳에서 가장 많이 나는 재료로 집을 지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황토로 벽돌을 만들고, 황토를 이겨 발라 이렇게 멋진 사막의 집을 만들었다. 이러한 황토집들은 비가 오지 않는 이곳 기후에서나 가능한 가옥 형태일 것이다.

이란의 소도시에 이 정도의 유적이 숨어 있다면 다른 곳은 어느 정도일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Do you speak English?"

대학생 알리는 처음 만난 건 페르시아 카펫의 본고장 카산의 핀 정원에서였다. 영문학을 전공한다는 알리는 마침 그곳에서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있었다. 영어 책을 읽는 그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이란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 그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몽땅 물어보았다.

“정말 코미테(풍속 단속 경찰)가 있어요?”
이란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일 궁금했던 것이다.
“코미테는 몇 년 전에 없어졌어요.”

하긴 코미테는 필요치 않다. 사실 거리를 다니는 사람 모두가 다 코미테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관광객인 내 복장이 조금만 단정치 못해도 길 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안에서조차 차도르로 친친 감고 있어야 할 형편이었다. 너무 더워 한번은 맨머리로 게스트하우스 안을 돌아다니다가 그 집 딸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야 했다.



알리는 정색을 하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미테는 시민들은 잡아 가두는 일로 악명을 떨쳤다고 설명한다. 몇 년 전 그 역시 여자친구와 손잡고 거리를 걷다가 코미테한테 걸려 잡혀갈 뻔했단다.

대학생 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카산 시내 구경을 나섰다. 카산은 페르시아 카펫의 본고장으로, 정말 질 좋은 카펫을 지천에서 만날 수 있다. 5백년이 되었다는 골동품 카펫의 가격이 우리 돈 5백만원, 이란인들에게는 까무라칠 만큼 비싼 가격이지만, 우리에겐 그 가치를 놓고 보면 정말 헐값이다.

이곳의 카펫은 일명 ‘매직 카펫’ 이라 불린다. 알리바바의 나는 양탄자가 아니라, 카펫의 방향을 바꾸면 카펫의 색깔이 달라 보이는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숙련된 직공 두 사람이 꼬박 1년 동안 1장을 짠다는 카펫이 여기서는 아주 흔했다. 어느 집을 가나 카펫 서너 장은 겹쳐서 바닥에 깔아놓았고 벽에도 흔하게 걸려 있다.

‘아, 이 귀한 것들이 이렇게 널려 있다니…. 아까워라.’

- 시라즈의 페르세 폴리스 -

시라즈는 이란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로 볼거리가 많다. 깨끗한 거리와 거리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엔 맑은 물이 시냇물처럼 흐르고 가로수도 잘 정비되어 있다.

시라즈에서 유명한 것은 ‘페르세 폴리스’ 와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들이다. 페르세 폴리스는 ‘페르시아 도시’ 라는 그리스어로 고대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1세의 여름 궁전으로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란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다리우스 1세가 기원전 518년부터 3년에 걸쳐 지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로, 시라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



높이 15m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면 가로 300m, 세로 450m의 거대한 단구 위에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제국의 문’ 이라고 불리는 크세르크세스 문. 몸은 황소, 얼굴은 사람, 독수리 날개를 한 부조의 큰 기둥을 하고 있는 크세르크세스 문이 동, 서쪽을 바라보며 제국을 지키고 있다.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로 왕에게 경배를 하며 이 길을 지나가야 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외국 사신 등을 맞이하는 접견실이었던 아파다나 왕궁이 보인다. 왕궁은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가야 되는데, 이곳은 왕궁 자체보다 계단의 아름다움이 더하다. 창을 들고 활을 옆에 찬 이들의 곱슬머리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들, 그리고 멀리 에티오피아, 이집트, 인도 등에서 온 큰 눈과 오뚝한 코의 사신들이 고유 의상을 입고 나란히 서서 충성심을 표하며 조공물을 들고 왕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들의 모습은 그 당시 아케메네스의 힘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아파다나 왕궁 뒤로 사자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다리우스 대왕의 궁전 티차라의 기둥이 보인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때 모두 불타버리고, 곳곳에는 다 부서진 높이 7m의 기둥과 궁전 터의 흔적, 36개의 석주만 남아 있는 이곳 유적지들은 과거 화려했던 역사를 쓸쓸히 되살려주었다.

페르세 폴리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리우스 1세의 무덤이 있는데, 돌산을 깎아 만들어 매우 위엄있고 장엄하다. 다리우스 1세는 아테네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여 전세계의 판도가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페르세 폴리스는 과거 페르시아의 영광 그 자체였다.

- 제국의 수도 에스파한 -

에스파한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로, 한때 세계의 절반이라 불렸을 만큼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이말 광장을 중심으로 몇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자르(시장)가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에는 거대한 모스크가 2개나 자리하고 있다. 사진 촬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슬람사원의 내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다. 그들이 상상하는 천국의 모습을 사원 내부에 그린 것 같다. 모스크 안의 기도실에서 온통 검은 천을 두른 여인들 속에 둘러싸여 있자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넓게 펼쳐진 알리콰푸 궁 광장 안에는 분수가 있고, 그 분수를 둘러싸고 잔디가 펼쳐져 있다. 밤이 되자 화려한 조명에 광장의 분위기는 로맨틱하게 변하고,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하나 둘씩 광장 잔디밭에 자리를 잡는다. 가족들은 음식을 챙겨 나오기도 하고, 연인들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긴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잔뜩 광장에 자리를 깔고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앉을 자리가 없다. 겨우 자리를 발견하고 잔디밭에 앉아 있으니, 옆에 있던 한 가족이 손짓을 한다. 자기들과 같이 식사하자는 것이다. 가장인 핫산과 젊은 부인 헤세드, 그리고 귀여운 세 살배기 아들 모하메드, 장인 장모까지 어울려 여름밤을 보내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 가족이 얇게 밀어 만든 빵의 일종인 차파티, 해바라기 씨 말린 것, 수박 등을 내놓으며 대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모두와 함께 포즈를 취하려는데 갑자기 엉덩이에 뭔가 느껴졌다. 그 와중에 핫산이 슬그머니 뒤로 손을 뻗어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다. 순간 너무나 당황했다. 자기 바로 옆에 부인과 가족들이 있는데….



‘이게 바로 친절한 중동 남자들의 속 마음이구나.’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랍 국가를여행할 때는 주의하라는 조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여행중에 너무 경계만 하는 것도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해 잠깐 방심했더니…. 사실 어디 가나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에스파한은 화려한 모스크가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란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물론 남자 여행자 없이 여자 혼자 광장에 갔을 땐 상황이 또 다르다. 일행 없이 여자 혼자인 걸 알면 여기저기 광장을 거닐던 남자들이 와서 추근대기 시작하고 어떤 땐 짜증을 넘어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좁은 골목길을 몰래 따라오거나,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건드리고 팔을 툭툭치는 등 무슬림 여자들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외국인에게는 스스럼없이 한다. 이들은 혼자 여행하는 여자 외국인의 자유를 과대평가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여성 여행자들이여, 중동을 여행할 땐 꼭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가자. 곳곳에서 치근대는 남자들에게 결혼반지라고 보여주면 꽤 효과가 있다.

이슬람 규율은 여자들에게 더 엄격하다. 시내의 공중 화장실에서 만난 스무 살쯤 되는 이란 아가씨. 히잡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가린 검은 망토 속을 살짝 젖혀 보여주는데, 속에는 화려한 반짝이로 가득한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겉으로는 절대 신의 맹세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검은 망토 안에 화려한 옷을 감추고 있는, 겉만 무슬림인 아가씨들은 언젠가 외국인처럼 염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반소매에 짧은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신세대들이다.

열사의 중둥. 이 식상한 표현 그대로 이란을 포함한 중동 지역은 대부분이 사막지대이며, 사막은 정말로 뜨겁고 건조하다. 마치 대형 건조기 안에 들어온 것처럼.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은 피부를 갈라지고 목을 잠기게 한다. 그러나 사막의 열기보다 뜨거운 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과 삶의 의지였다.


▶ 이란 입국시 유의사항

이란에 입국할 때 공항에서 소지한 외환 금액은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이란 법규에 따라 입국 때 신고한 금액은 소지할 수 있으나, 신고하지 않으면 법규에 따라 소지한 외환이 불법으로 간주되어 압류 등의 조치가 따른다.

의류, 가정용품, 문구류, 옷, 식품류 등의 물품은 통관이 쉬우나, 무기류, 술, 마약, 과일 등은 통관이 허락되지 않는다.

반대로 출국할 때 페르시아 카펫은 1인당 1장만 살 수 있다, 출국 역시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검사가 대체로 엄한 편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므로, 공항에 3~4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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