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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투르크메니스탄 -3) 니사의 파르티아 성채(Parthian Fortresses of Nisa; 2007)

 

 

세계문화유산(189)/ 투르크메니스탄

니사의 파르티아 성채(Parthian Fortresses of Nisa; 2007)

 

 

니사의 파르티아 성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바기르 시[Bagyr settlement] 루하바트 구[Etrap of Rukhabad] 아할 빌라예트(Akhal Vilayet)에

위치하며, 구(舊) 니사와 신(新) 니사라는 두 텔(tell; 구역)로 구성되어 있다. 

니사의 파르티아 성채는 파르티아 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가장 초기 시기의 유적이다.

이곳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 주요한 권력의 중심지였으며, 아직까지 고대 문명의 유적은 완전하게 발굴되지 않는 채 잘 보존되어 있었다. 파르티아 제국의 고대 문명은 헬레니즘과 서로마의 문화 요소를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훌륭하게 결합한 것이었다. 두 유적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개인 가옥・공공건물・종교 건물의 실례가 되는 건축물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다. 중요한 상업적・전략적 축의 교차 지역에 자리했던 강력한 파르티아 제국은 동서・남북 간의 무역 중심지이며 중요한 교통 중심지로서 기능을 했으며, 로마의 팽창을 막는 장벽 역할을 했다.

 

니사의 파르티아 성채의 인간 활동에 대한 흔적은

기원전 제 4000년기부터 기원전 제2000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파르티아 제국이 탄생하기 오래 전에 니사 지역에 정착민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빠르면 기원전 제1000년기에 대규모의 정주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니사의 주요한 개발은 기원전 제3000년기 중반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파르티아 사람들은 최초 파르티아 왕조의 왕궁 거주지를 짓기로 결정하고 인상적인 건축물들을 건립했다. 유적의 이름은 미트라다트케르트(Mithradatkert)이며, 이 왕궁 거주지의 건립 시기는 니사에서 발견된 2,000개의 도자기편[ostraka] 중 하나의 비문에 쓰여 있었다.

도자기편에는 행정 관리 내용이 쓰여 있었는데 미트라다트케르트는 ‘미트라다트의 요새[the fortress of Mithidrat]’를 의미하며, 미트라다트 1세(MithradatⅠ; 기원전 174~기원전 138)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카락스(Kharax)의 이시도루스(Isidorus) 문서 같은 몇 가지 고대 기록에서 아르사키드(Arsacid) 왕조의 행정적・경제적 중심지로 파르타우니사(Parthaunisa) 시를 언급하고 있다.

왕족의 거처[구 니사]와 인접한 도시[신 니사]에 거점을 둔 아르사키드 왕조는

인더스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계속 정복해 나갔다. 니사는 페르시아, 그리스, 중앙아시아의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기원전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의 수준은 구 니사의 기념비적 건물의 초기 개발 단계와 경제적인 발전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요새의 황금기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황금기는 첫 세기가 오기까지 장기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24년 파르티아 왕국은 붕괴되었다.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가 시작되면서 파르티아 지방 영주였던 아르다시르(Ardashir; 사산 왕조의 설립자)는 파르티아 왕조의 팽창을 막고 도시와 영토를 정복했다. 니사가 파괴되고 인구가 감소하자 니사의 일부 지역은 버려졌다.

이후 니사는 12~14세기 동안 이슬람 시대에 다시 중심지로서 기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