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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투르크메니스탄-1) - 고대 메르프 역사 문화 공원

세계문화유산(187)/ 투르크메니스탄

고대 메르프 역사 문화 공원

(State Historical and Cultural Park 'Ancient Merv'; 1999)

 

메르프(Merv)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마리 빌라예트(Mary Vilayet)에 위치하며,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건설된 오아시스 도시들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도시이다.

드넓은 오아시스 유적에는 4,000년에 걸친 인류 역사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수많은 기념물들 중 특히 최근 2,000년간의 기념물들이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메르프 오아시스에 도시가 건설된 순서,

도시 안의 요새와 도시의 배치는 수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중앙아시아의 문명에 대한 이례적인 증거이다. 

메르프 오아시스 도시는 4,000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이란의 문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셀주크 시는 건축, 건축 장식, 과학, 문화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카라쿰 사막에 있는 메르프 오아시스

부하라(Bukhara)와 사마르칸트(Samarkand)로 가는 주요 동서 교역로에 있으며,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교차 지점에 있다. 메르프 오아시스는 기원전 제3000년기부터 수많은 도시 중심지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었다. 청동기시대 초기(기원전 2500~기원전 1200)에는 중심지가 오아시스 북쪽에 있었는데

무르가프(Murghab) 강이 흐르고 있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관개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중심지들은 오아시스의 남쪽과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중요한 초기 철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 역사 도시 중심지는 기원전 500년 무렵 오아시스의 동쪽에서 개발되었다.

 

이곳은 동쪽 노선을 이용하기에 편리한 위치였다.

도시들은 성벽으로 둘러싼 일련의 인접한 도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총면적은 1,200㏊ 이상이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에르크 칼라(Erk Kala)로 아케메네스 왕 시절(기원전 519~기원전 331)부터 기록에 나타나며,

서부 이란 비시툰에 있는 3개의 언어로 쓰인 다리우스 대왕의 유명한 비문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오아시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Historia Naturalis)>(6권, 16~17쪽)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헬레니즘 도시를

직접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셀레우코스의 왕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Antiochus I Soter; 기원전 281~기원전 261)는

오아시스 도시를 다시 건설하고 ‘마르기아나 안티오키아(Margiana Antiochia)’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에르크 칼라와 갸우르 칼라(Gyaur Kala)를 일컫는 것이다.

파르티아 사산 왕조에서 초기 이슬람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이곳을 점령했다.

 

기원전 53년 카레(Carrhae) 전투에서

로마가 파르티아에게 패배하고 살아남은 그리스와 로마의 군사들이 마르기아나(Margiana)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651년에 마지막 사산 왕조의 왕,

야즈디기르드 3세(Yazdigird III)가 죽음으로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가 우세해졌다.

비록 11세기에서 12세기까지도 중앙 모스크가 계속 이용되긴 했으나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메르프

소규모 산업 지역일 뿐이었다. 갸우르 칼라가 쇠퇴하면서 도시의 중심지로 바뀐 셀주크의 중세 도시는

갸우르 칼라의 서쪽에서 발달했다. 술탄 말리크샤(Sultan Malikshah; 1072~1092)는 여기에 성벽을 쌓았다.

북쪽과 남쪽으로 발전해 나간 교외 지역에도 나중에 술탄 산자르(Sultan Sanjar)가 성벽을 쌓았다.

600㏊ 이상 넓어진 도시는 대 셀주크 제국의 수도였고(11~13세기), 그 시대의 중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도시에는 유명한 도서관들이 있어

문학자이자 시인인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과 지리학자 야쿠트 알 하마비(Yaqut al Hamavi)를 비롯한

전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빛나는 전성기는 1221~1222년 몽골에 의해 약탈당하면서

종말을 맞았다. 몽골에게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관개 시설은 파괴되었다.

 

이후 티무르 제국(1370~1405)의 일부로서 소규모 도시가 되었다.

티무르의 후계자 샤 류흐(Shah Rukh; 1408~1447)가 오늘날 압둘라 칸 칼라(Abdullah Khan Kala)라고 알려진

새롭고 매우 작은 도시를 남쪽의 다른 지역에 건설했다. 16세기에 메르프는 우즈베크투르크(Uzbek Turks) 족의

지배를 받았다. 1세기 후에 메르프는 페르시아 제국에 통합되었다.

18세기에 인구가 증가하자 바이람 알라 칸 칼라(Bairam Ala Khan Kala)로 알려진 요새를 확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오아시스의 북쪽에 있는 초기 5개 정착지는 켈렐리(Kelleli),

아지 쿠이(Adji Kui), 타이프(Taip), 고누르(Gonur), 토홀로크(Togoluk)이다.

 

켈렐리는 두 가지 주요 유적이 있는 정착지이다. ‘

켈렐리 3’에는 옆에 대칭인 입구가 4개 있으며, 옆에는 탑들이 있는 이중 외벽과 남서 구역에 정비된 주택 지역이 있다. ‘켈렐리 4’에도 탑이 있는 이중 외벽이 있다.

두 유적 모두 보존 상태는 그리 좋지 않지만 마르기아나의 청동기시대 중기의 중요한 증거가 남아 있다.

아지 쿠이도 같은 시기에 건설했다. 타이프의 두 고분은 남쪽에 커다란 안뜰을 가진 사각형 담으로

영역이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 별개지만 인접해 있다. 무르가프(Murghab) 삼각주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유적은

고누르 데페(Gonur Depe)이다. 토홀로크 지역은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이곳에서는 요새화된 대형 건물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철기시대 두 중심지는 야즈(Yaz)-괴베클리(Gobekli) 데페와 타히르바지(Takhirbaj) 데페이다.

타히르바지 데페는 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다.

야즈 데페는 그 시대의 기본적인 형태로 만든 도자기가 많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근처에는 잘 보존된 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직사각형 요새인 괴베클리(Gobekli) 요새가 있다.

 

역사적인 도시 중심지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이루어진다.

에르크 칼라, 갸우르 칼라, 그리고 중세 도시인 술탄 칼라 혹은 마르프 알 샤히잔(Marv al-Shahijan)이다.

에르크 칼라는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다각형의 유적으로 성벽과 안쪽 성채가 30m가량 남아 있다.

갸우르 칼라는 평면도로 보면 거의 정사각형이고 성벽은 약 2㎞이다. 안쪽에는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중앙의 베니 마한 모스크(Beni Makhan mosque)와 저수지, 불교 사리탑과 절, 북서 지역의 ‘타원형 건물’이 그것이다.

술탄 칼라는 11세기에 성벽을 쌓았고, 술탄 산자르(1118~1157)의 능묘, 중세 도시의 독특한 성벽과 성채가 있다.

 

15세기의 성벽과 해자는 몇 안 되는 궁전의 벽과 함께 성채에 남아 있다.

이들은 기원전 5세기부터 15~16세기까지 군사 건축의 진화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아시스에는 이 시대에 만든 훌륭한 모스크와 능묘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