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17)/ 파키스탄
로타스 요새(Rohtas Fort; 1997)
로타스 요새는 파키스탄의 펀자브(Punjab) 주 젤룸(Jhelum) 시에 위치한다. 셰르 샤 수리(Sher Shah Suri; 수리 왕조의 창건자) 왕은 1541년 무굴 제국의 황제 후마윤(Humayun)에게 승리한 뒤 현재 파키스탄 북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로타스(Rohtas)에 강력한 요새를 지었다. 이 요새는 폭풍에 휩쓸린 적이 한 번도 없이 오늘날까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의 주요 요새들은 약 4㎞ 이상 뻗어 있는 거대한 방어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루가 줄지어 있고 기념비적인 성문이 있다. ‘킬라 로타스(Qila Rohtas)’라고도 불리는 로타스 요새는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초기 이슬람 군사 건축물이다.
로타스 요새는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이슬람 군사 건축물로서 터키와 인도 아대륙(亞大陸)의 건축과 예술 전통을 혼합하여 무굴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고 이후 정교함과 변화를 더하였다. 위엄과 규모 면에서 다른 많은 요새를 능가하는 이 웅대한 요새는 셰르 샤 수리 시대의 유일한 대표 건축물이며, 요새 건축 역사상 획기적인 성과물이다. 거대한 방어벽, 함정문(trap gates)과 함께 전망이 좋은 요새의 위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특별함을 더한다. 무슬림들은 인도 아대륙 북부에 1200년 무렵에 정착했지만 아랍계 공동체는 8세기 초기부터 인도 아대륙 전반에 걸쳐 있었다. 1526년에는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무굴 제국이 북부에서 탄생하였다. 무굴 제국의 황제 후마윤이 나중에 셰라 샤 수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셰르 칸에 의해 차우사(Chausa)에서 패배하고 쫓겨난 뒤인 1541~1543년에 로타스 요새는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 고원의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졌다. 이 요새는 적대적이었던 토착민인 가카르 인(Ghakkars)을 통제하고 후마윤이 돌아올 것에 대비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후마윤은 1545년 셰르 샤가 죽은 뒤 10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당시 총독이던 타타르 칸 카시(Tatar Khan Kasi)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요새를 넘겨주었다. 요새의 이름은 셰르 샤가 1539년 힌두 세력에 승리한 지역의 이름인 로타스가르(Rohtasgarh)에 유래한다. 무굴 제국의 침략자들에게 넘어간 후에도 아우랑제브(Aurangzeb; 1707년 사망)가 통치하기 전까지 이 요새는 계속 사용되었다. 이후 몇 세기 동안 이 요새는 원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두라니 왕조(1747~1842)와 시크교도의 지배자들에게 계속 이용되었다. 성벽 내부의 마을은 성장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로타스는 카한(Kahan) 강을 따라 자리 잡은 작은 언덕 주위에 있는 방어 진지이다. 거대한 방어벽은 평면상 불규칙하여 험한 지형과 어울려 4㎞ 이상으로 퍼져 있다. 돌로 된 방어벽의 두께는 최대 12.5m에 이르며, 높이도 지형에 따라 10.05m에서 18.28m까지 달라진다. 벽이 더 높으면 3단의 단이나 대가 되지만 보통은 2개인 내부의 단과 대가 있으며, 이들은 돌계단으로 연결된다. 성곽은 당당한 석조 돌출벽(merlons)이 떠받치고 있다. 두꺼운 성벽 내부에는 경비병들의 거주 공간 혹은 창고로 사용된 둥근 지붕의 직사각형 평면의 방들이 있다. 성벽 전체에는 68개의 튼튼한 반원형 보루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12개의 성문은 이중문인 것도 있고 외문인 것도 있다. 성벽을 둘러싼 안쪽에는 똑같은 건축 방식으로 쌓은 길이 533m의 문간벽(cross-wall)이 내부 요새를 구성하고 있다. 사암으로 된 성문들은 육중하고 장식이 되어 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소하일 문(Sohail Gate)이며 그 양옆에는 정교하게 장식된 받침과 튼튼한 보루로 이어진 발코니가 있다. 초기 파탄(Pathan) 모델을 바탕으로 한 이러한 양식은 무굴 건축의 발전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시시 문(Shishi Gate)의 이름은 외부 아치의 공복(拱腹; spandrel; 인접한 아치가 천장 기둥과 이루는 세모꼴 면)에 사용된 광택 타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문은 이 지역에서 광택 타일을 사용한 가장 초기 사례에 해당하고, 이 기법은 무굴 제국의 건축물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특히 접근하기 쉬운 다른 4개의 성문은 이중(함정)으로 하거나 비스듬하게 함으로써 침략자들에게 좀 더 위협이 되도록 하였다. 요새 내부에는 수비대에게 제공할 식량을 만들기 위한 용도의 건물만 몇 개 지었다. 카불리 문(Kabuli Gate) 인근의 샤히 마스지드(Shahi Masjid)는 기도실과 마당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모스크이며, 외부 아치의 백합 문양과 같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이 모스크의 장식은 힌두 사원의 장식에서 기원하는 요소와 더불어 이후 무굴 건축물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요새에는 자체에 내부에 갈색 사암으로 칸을 질러 만든 2개의 바올리스(baolis; 계단식 우물 또는 수조) 급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카불리 문 가까이에 있는 바올리스는 왕족의 목욕탕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은 방들로 둘러싸여 있다. 무굴 황제 아크바르가 신임한 장군의 이름을 딴 하벨리 만 싱(Haveli Man Singh)은 바위투성이 언덕에 세워졌다. 벽돌로 된 2층 구조이며, (요새의 나머지 것들과는 달리) 순수 힌두교 양식이고 덮개가 달린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전망대 네 곳 중 하나만 온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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