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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시흥) 시흥갯골 늠내길의 가을 풍경

 

 

언제 :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어디 :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일대

 

 

올가을 들어 가장 차가운 날이다.

시흥갯골 생태공원에서 약 4km 거리의 연꽃으로 유명한 관곡지 인근에 사는 지인과 저녁을 하기로 하여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하고 카메라를 배낭에 담아 전철 소래포구역에 내리니

11:30

저녁 약속이라 일부러 느긋하게 움직이며 시흥갯골 가을 풍경을 담을 것이다.

 

주말이고 갑자기 날이 추워지니

김장용 새우젓을 사러 온 나이 드신 부부 혹은 아주머니들이 용기들을 들고 한꺼번에 나오니 도로가 막힌다.

바람 거센 수인선 소래철교를 건너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래포구 상가 건축물을 바라보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12:00

시흥갯골 늠내길에 들어서니 저멀리 자전거 다리=미생의 다리가 나를 반기나

지금이면 붉은 칠면초들로 자전거다리가 붉게 물들었어야 하는데, 지난여름 홍수 때 뻘이 칠면초에 붙어

이후 큰 물 혹은 비가 내리지 않아 붉은 빛 대신 허연 진흙을 쓰고 있어

꾸부정한 모습이 안타깝다. 

 

점심 드는 시간을 제외하곤 지금부터 17시까지 계속 걷게 될 것이다.

 

 

 

밀물이면

서해 바닷물이 소래포구를 지나 두 개의 물길로 나뉘는데,

한 개의 물길은 소래습지 생태공원(사진 상단 물길)으로,

다른 한 개의 물길(사진 하단 물길)은 시흥갯골을 통해 자전거 다리와 바라지 대교를 지나 시흥갯골 생태공원

내륙 깊숙한 호조벌까지 닿는다.

 

 

 

시흥갯골은

소래염전으로 불리던 198만평 규모의 구 염전지역 안에 위치하고 한때는 갯골의 물길을 이용하여

포구에서 내륙까지 어부들의 배가 들나들기도 하고,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에 바닷물을 대어주기도 했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염전이 하나로 유명했던 소래염전은 1934년 조성되어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소금은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로 부산항에 옮겨진 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우리 민족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으로,

1996년 폐렴 되어 현재는 소금 생산을 중단했다.

 

 

시흥갯골 자전거 다리 = 미생의 다리

 

 

 

 

 

 

한 무리 걷는 분들이

시흥갯골 늠내길을 걸어 갯벌을 뒤집어쓴 채 붉은빛을 잃고 엎드린 칠면초 사잇길을 걸어

자전거 다리를 향하고 있다.

 

 

 

 

 

 

멀리 서울 관악산이 늠름한 기상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이면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붉은빛을 맘껏 뽐내야 할 칠면초가 뻘을 뒤집어 쓴 채 붉은 빛을 잃어버리고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엎드린 모습이 안타깝다.

 

 

 

인천과 시흥 그리고 부천을 볼 수 있는 소래산이

붉은 빛을 잃은 칠면초 너머 고개를 뾰족이 들고 안타까이 시흥갯골을 내려다 보고

아래 사진은 안양 수리산이 조망된다.

 

 

 

 

 

 

 

멀리 출발지점인 소래포구 고층 아파트들이

붉은 칠면초와 하얀 백발을 날리는 갈대밭 너머로 보인다.

 

갯골 너머 습지는

지난여름 홍수에도 뻘을 뒤집어쓰지 않아 붉은빛을 곱게 발하고 있다.

 

 

 

 

 

 

 

 

 

 

 

 

 

 

시흥갯골 생태공원 안내 책에서 염생식물을 담은 사진이라 선명도가 떨어지지만 좋은 자료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 숙인 가을 들길을 걸으며 삶을 사유했던 시간이 행복이었다면

이제는

추수 끝난 들길 너머 

붉은 칠면초와 백발 기상을 날리는 갈대 그리고 가을 들꽃들이 이름 없이 피어있는

갯골길을 걷는 것은 기쁨이다.

 

 

 

 

 

 

 

갯골의 생태는 삶이다.

가장 뒤의 키 큰 갈대는 거센 바람을 등지며 바람을 이겨내며 키 작은 갈대의 바람막이가 되고

키 작은 갈대는 키 가장 작은 풀들이 곱게 자라도록 보호한다

 

 

 

 

갯골의 철새들

 

 

 

 

 

 

바라지 다리

 

 

몇 해 전만 해도 바라지 다리는 없었다.

소래포구에서 시흥갯골에 들어 자전거 다리를 건너서 걸으면 시흥갯골 생태공원까지 왔다가

다시 반대편 길을 걸어야 했고,

생태공원 흔들 전망대에 올라야 갯골 흐름을 내려다볼 수 있었지만,

이젠 시흥갯골 중간 즈음에 바라지 다리가 놓여 양쪽을 걸을 수 있어 편리하고,

다리 위에서 뱀처럼 쭉 늘어진 갯골을 조망할 수 있어 좋다.

 

 

 

 

 

 

 

나보다 더 젊어 보이는 부부가 정답게 손 잡고 바라지 다리를 건넌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며 잘 사는 나라임이 바로 저런 모습이라면 틀린 말일까?

 

5~60년 대 내가 자라던 우리나라는

부부가 함께 걷는 것도 흠 되어 남자가 앞장서면 부인은 몇 걸음 뒤 따랐고,

 

7~80년 내가 사회생활하던 때엔 

여자들이 아직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은 때라

남자들은 주로 직장 선후배 남자들과 산행을 하였고, 가족과 여행이나 산행은 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과 중동 건설 붐으로 

나와 선후배님들이 가족을 떠나 머나먼 타국 밀림 속에서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피땀 흘려

번 돈과 민주화로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저절로 된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니다.

목숨과 바꾸고 가족과 생이별한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로 이룬 오늘의 대한민국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두렵다

오늘에 이르게 한 그들을 잊어버릴까.

 

참 날 좋은 날 우촌의 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