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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사적 제157호) 고종이 황제에 즉위한 환구단(圜丘壇)

 

 

언제 :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어디 : 서울 중구 소공동 87-1번지

 

 

대한민국 사적 제157호로 지정된 환구단(圜丘壇)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으로,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제천의식은 삼국시대부터 였지만, 조선 세조 때 폐지되었는데,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고종은 환구단(圜丘壇)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당시 환구단이 마련된 곳은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자리로,

이때 만들어진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된 3층의 단이며, 중앙 상부는 금색으로 칠한 원추형(圓錐形)의 지붕이었다.

환구단에는 하늘과 땅, 별과 천지만물에 깃든 신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동지나 새해 첫날에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1912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으며,

이 건물은 1968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다.

 

 

 

 

 

 

황궁우에서 본 환구단 정문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재했던 제국으로 조선을 계승한 국가이자

한반도 마지막 군주국이다.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수립 선포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여러 개혁을 시도했고, 자주적 국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게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이후 일본과 체결한 여러 조약으로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였다.

 

이 이름에 사용된 대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거쳐, 오늘날의 공화국인 대한민국 국호로 이어지고 있다.

- 위키백과 참조 -

 

 

 

 

 

 

황궁우

 

 

황궁우(皇穹宇)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의 팔각 정자로,

환구단이 조성된 2년 후인 1899년(광무 4년)에 환구의 북쪽에 건립하여 신위판(神位版)을 모셨다.

황궁우의 건물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3층은 각 면에 3개씩의 창을 냈으며, 천장의 칠조룡(七爪龍) 조각은 황제를 상징한다.

황궁우 앞에는 1902년(광무 7년)에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돌로 만든 북[石鼓]을 세웠는데,

이 북은 제천을 위한 악기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몸체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용 무늬가 있다.

 

환구단과 황궁우는 당시 고종이 황제로서 제천 의례를 행하던 곳으로,

예로부터 천자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나 천황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 대해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ㆍ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는 황궁우와 3개의 돌북, 그리고 석조 대문만이 남아 있다.

 

한편, 1960년대 해체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환구단의 정문이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어 복원 공사가 진행되어

2009년 12월에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 위키백과 참조 -

 

 

 

 

 

 

삼문
삼문

 

삼문의 시설들

 

 

 

 

 

 

 

 

 

 

 

 

 

 

 

 

황궁우에서 본 삼문

 

 

 

 

 

 

 

 

 

 

 

 

 

옛 환구단 추정 배치도를 보면

황궁우와 내삼문을 가로막고 있는 시커멓고 거대한 조선호텔이 환구단이 있던 자리란다.

1914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지었는데,

1968년 조선호텔로 바뀌었단다.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입장하는 삼문이 조선호텔에 억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초라하게 옛 아픔을 말하고 있다.

나 역시

내삼문을 담으려는데, 조선호텔과 내삼문 공간이 너무 좁아 내삼문 전경을 담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나라 호텔은 초라해 조선호텔을 유지했다면,

이제는 일제에 의해 철거된 환구단을 우리 국민에게 돌려 주어야 옳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