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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 사적 제424호 - 한옥의 강화성당

 

언제 :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어디 : 인천광역시 강화읍 관청리 422

 

 

코로나 19로 먼 지방 여행은 못 가니

주말을 맞아 오늘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인 강화도 여행길에 올랐다.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려고 벌써 서울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다.

먼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의 잠저(潛邸) 용흥궁을 찾아가니

(잠저(潛邸) : 나라를 새로 세웠거나 세자가 아닌 종실 가운데 즉위한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코로나 19로 임시 패쇄되어

그곳에서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사적 제424호인 강화성당을 찾았다.

 

예전에 이곳을 왔을 때엔 성당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이곳이 등록 문화재 제705호로 등록되면서 성당 내부를 공개하고 초창기에 찍은 사진들도

전시되어

항상 궁금했던 성당 내부도 보았고, 오래된 자료들도 볼 수 있어

알찬 여행길이었다.

 

 

성 마루에 높게 자리 잡은 성당 터는 배 모양으로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성당 규모는 250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40칸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 외형은 전통한옥 고건축 기법을 따랐으나 경건한 외양을 강조하기 위해 중층구조의 익공식 건축양식을 선택했다. 건물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고려하여 목재는 수령 백년 이상의 백두산 적송을 조마가 신부가 직접 신의주에서 구해 뗏목으로 운반했고, 석재와 기와는 강화산을 사용했다. 도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였으며, 중국인 석공과 강화 지역 교우들이 참여하여 1년 여 만에 성당 건축이 완공되었다.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

자전거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 날이 더우니 사진을 찍어도 비켜 주지 않는다.

 

 

 

 

 

 

 

교회종 - 1914년 영국에서 강화성당에 기증한 종은 1944년 일제에 징발당하고 현재의 종은 범종의 형태로 1989년 제작되었다.

 

 

 

현관 기둥의 5매 주련 - 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다. -- 선인선의율조증제대권형(宣人宣義聿䧂拯濟大權衡) -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니 이에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 되었다. - -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니 참 근본이 되신다.--신화주류유서물동포지락(神化周流囿庶物同胞之樂) - 하느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곳이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다. -- 복음선파계중민영생지방(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세례대

세례를 받는 곳으로 정면에 중생지천, 후면에 수기, 세심, 거악, 작선이라 새겨

교인이 세계 받을 때의 마음가짐을 표현했다.

 

 

교회기 - 1900년 축성식 순행 당시에 사용했던 깃발로 강화성당 수호성인이신 베드로의 천국의 열쇠와 바우로의 성령의 검을 비단에 수놓아 제작하였다.

 

 

 

 

 

 

 

성당축성 100주년 기념비

 

 

 

 

 

 

 

 

 

 

 

갑곶이 나루터의 성 니콜라회당(1893년)

강화 최초의 성공회 예배처소로 1897년 동문안으로 이동 할 때까지 교육과 의료사업이 함께 이루어 졌다.

 

갑곶이 나루터(1899년) 서울 마포나루터와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기점이었다.

 

강화성당 도면

성당의 터는 고려궁지 토성의 좌측 성마루에 위치하며, 대지는 배의 모양으로

뱃머리에는 내삼문과 외삼문을 중앙의 선복에는 성당을 선미에는 사제관을 두어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였다.

 

 

 

 

 

뒤에 보이는 산이 고려산

 

 

 

 

 

 

 

 

1893년 갑곶이 나루터(성 니콜라 회당)에서 선교를 시작한 강화성당은

1897년 조선왕실 해군사관학교(통제영학당)의 영국인 교관(Callwell 대위)으로부터 관사와 대지 3천여 평을

매입하여 성바우로 회당이라 축복함으로써 선교본부를 강화 성내로 이전했다.

이를 계기로 조마가(제3대 주교 M.N. Trollope)신부와 김희준(초대 한인 사제)교우 등은

선교본부라는 이름에 걸맞는 성당을 건축하고, 이를 고요한(초대주교 John Corfe)주교가

1900년 11월 15일 성 베드로와 성 바우로의 성당으로 축성하였다.

 

국가지정 문화재(사적 제424호)인 강화성당은 외부는 전통 한옥 양식으로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서구 기독교의 토착화 산물로서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이며

매 주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건축 당시부터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여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건축한 다민족, 다문화의 정신이

함께 하는 성당이다.

현재 성당 안의 제대 및 세례대는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5호로 등록되었다.

 

사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