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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1930~1940년대 독립군 자료 사진



1930~1940년대 독립군 자료 사진 중에서



일본의 치하 아래 독립 운동을 하던 1930~40년대의 자료 사진들입니다.

귀중한 사진이고 우리에겐 소중한 자료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3.1 운동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항일 지사



일본은 많은 경찰서를 설치하여 민중을 억압하였다.




1939,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 ‘3.1 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출했다.



1939년 일본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한 포로 출신들이 조선 의용군 가입 의식을 진행하였다.



1940년 한국 광복군 결성 대회 단체 사진

가운데 착석한 짙은 색 옷을 입은 사람은 독립 운동의 영도자 김구(金九주석이고

오른쪽은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李青天장군이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 광복군이 성립되었다

류즈(劉峙장군이 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축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金九선생



1940년 광복군 결성 대회 때 내빈들 사인이 있는 선물용 수건이다

공산당 대표 조우언라이(周恩来)와 둥비우(董必武)의 사인은

두 번째 줄 오른쪽으로부터 세 번째네 번째이고기타 사인한 명인들은 당시 국민당 정부 요원

위유런(于右任), 쑨커(孫科), 손상희(孫祥熙), 우티예청(吳鐵城), 군계의 펑위샹(冯玉祥), 허잉친(何應欽), 

바이충시(白崇禧), 왕스제(王世杰), 류즈(劉峙), 허궈광(賀國光), 

중통과 군통의 양대 간첩 두목 캉저(康澤)와 대우농(戴雨农그리고 문화계 유명 인사

타오싱즈(陶行知등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 편입된 조선 의용대의 우리 국적 전사들



조선 의용대 중의 여성 대원들

많은 우리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하여 강제로 종군 위안부로 있었다가 체포된 후 의용군에 가입하여

항일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1943년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충칭에서 자유 한국인 대회를 거행하였다. 

애국 지사 한 사람이 의기가 북받쳐 원통해 하며 연설하였다.



항일 전쟁 기간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사무실을 설립하였다.



1945년, 귀국이 임박한 김구(金九) 주석



1947년 4월 이승만(李承晚박사가

중국을 방문하여 난징 샤관(下關역에서 한중 우호 인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1947년 4난징을 방문한 이승만(李承晚박사는

국민당 정부의 중요 인물인 우티예청(吳鐵城)을 만나서 그가 상하이 시 시장 임기 동안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대한 많은 협조에 감사를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