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문화유산

(중국-25)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

세계문화유산(48)/ 중국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 2004)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중국의 랴오닝 성(遼寧省) 환런 현(桓仁縣),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集安縣)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쑤저우 회의에서

북한의 평양, 남포 등에 소재하는 후기의 고구려 고분군과 함께 등록이 결정되었다.

북한은 애초 2000년경부터 유적의 세계유산 등록을 단독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03년에 등록될 예정이었지만 중국이 북한의 단독 등록에 반대하여

지린 성에 있는 고구려 유적의 등록 신청을 실시했다.


그 이유로 북한과 중국의 유적이 2004년 동시 등록이라는 형태로 등록되었다.

북한과 중국의 사이에 고구려 역사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재차 인지되었다.

고대 고구려의 수도였던 오녀산성(五女山城), 국내성(國內城), 환도산성(丸都山城) 3개 도시와

무덤 40기(왕릉 14기, 귀족묘 26기)를 포함하고 있다.


고구려는 BC 37년에 오녀산성(졸본성)을 도읍으로 건국해 서기 3년 환도산성으로 천도하였다.

그 후 평성인 국내성으로 옮겼다가 427년 평양으로 다시 천도 했다.

668년에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이는 중국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다스렸던 고구려 문화유산이다.

오녀산성은 현재 일부분만 발굴된 상태이다. 현재 중국의 지안 현에 있는 국내성은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에 보조 수도의 역할을 했던 도시이다.


 환도산성에는 대규모 왕궁 터와 무덤 37기를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몇몇 무덤에서는 볼 수 있는 정교한 천장은 기둥 없이 지탱하는 널찍한 지붕 형태이며

무거운 돌이나 흙무더기를 운반해 올린 것으로 고구려 문화의 위대한 천재성이 잘 나타난 예이다.


이 유적지는 사라진 고구려 문명이 남긴 특별한 발자취이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이들 도시는

산악 지대에 자리 잡은 도시의 초기 예로 이후 주변 문화는 이를 본보기로 삼았다.

 특히 중요한 유적인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는 한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언어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무덤 벽화에서 보이는 예술적 기량과 독특한 양식에도 역시 다른 문화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도시 체계는 이후 고구려의 수도 건설에 영향을 끼쳤으며,

고구려 무덤들은 적석총과 봉토분 건축 발전상의 뛰어난 예이다.


국내성과 환도산성은 전체적인 배치와 구조면에서

동북아시아의 중세 도시들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지금은 사라졌으나 웅장한 고구려 문명의 증거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시들은 초기와 중기 고구려(1~5세기)의 수도로

평원에 있는 도시와 산악 지대에 있는 도시가 상호 보완하며 수도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에는

보조 수도의 역할을 수행했던 국내성은 돌 성벽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평지 도시 유적지이다.

환도산성에는 대규모 왕궁 터와 무덤 37기를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몇몇 무덤에 있는 정교한 천장은 기둥 없이 지탱하는 널찍한 지붕 형태로

무거운 돌이나 흙무더기를 운반해 올린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계된 이 산악 도시는 자연 환경과 인간 창조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이다.

 이 밖에도 산으로 둘러싸인 퉁거우(通溝) 평야에는 7,000여 기의 고구려 무덤이 있는데

이들 중 많은 무덤에는 세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장수왕릉(長壽王陵)과 태왕릉(太王陵)으로 대표되는 10개의 거대한 고구려 왕릉은

고구려 문화가 건축학적·예술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었음을 나타내는 전형이다.

태왕릉 서쪽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한자 비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의 글귀이다.


역사적 배경

지방 권력이며 씨족으로 출발한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첫 번째 수도인 오녀산성을 건설했다.

30년 후에는 국내성으로 천도했고,

427년에는 다시 현재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 천도했다.


국내성은 197년에 일어난 권력 다툼으로 파괴되었고,

209년에 환도산성이 세워졌다. 국내성과 환도산성은 수백 년 동안 고구려의 경제·정치·문화 중심지였는데,

이 두 도시는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복구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평양 천도 이후에는 국내성은 보조 수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 유적지는 1902년 현재의 지안 현이 세워진 후에 복구되었으며,

환도성의 잔해들은 1999년과 2002년에 복구되었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보호 기념물로 지정되어 1983년에 모든 거주민들은 새로 세워진 환도성을 떠나갔다.

현재 세상에 알려진 무덤 수천 기의 첫 발굴 작업은 2차 세계 대전 중인 일본 점령기에 시작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 유적지를 중요하게 여겨 보호, 연구, 보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