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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중국-12) 루산(盧山) 국립공원(Lushan National Park; 1996)

세계문화유산(34)/ 중국

 

루산(盧山) 국립공원(Lushan National Park; 1996)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540㎞ 떨어진 장시 성(江西省) 북부의 주장(九江) 시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루산(盧山) 국립공원은 많은 문인이 찾았던 안개와 폭포의 관광 명승지로 총면적은 500㎢이다. 해발 고도 1,300∼1,500m의 산등성이가 25㎞나 계속되는 명산으로 주(周)나라 때 광씨(匡氏) 7형제가 산중에 기거하면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항상 안개가 자욱하고, 두터운 운해(雲海)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송(宋)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가 이 경치를 시로 읊기도 하였다. 특히 경치가 빼어난 폭포가 많은데 이 가운데 삼첩천(三疊泉)의 폭포는 루산 제1의 볼거리로 알려져 있다. 루산의 많은 유적 가운데 동림사(東林寺)는 진(晉)나라 때인 386년에 명승 혜원(慧遠)에 의하여 창건되어 당(唐)나라 때 융성한 사찰이다. 경내에는 장대한 가람을 가진 정전(正殿), 신련보전(神蓮寶殿)이 있고, 이백·백거이·육유(陸遊)·왕양명 등의 비(碑)가 남아 있다. 루산은 중국 고대 교육 기지와 종교의 중심이며 주위에는 18개 나라의 별장이 600여 채나 있으며 유일하게 대규모 ‘세계촌’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명산이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동해의 노산만 못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루산은 명산으로 꼽힌다. 산둥 반도의 동서부에 위치해 있고, 황해에 인접해 있으며, 총면적은 1,133㎢이다. 특히 루산의 도교 사원은 매우 유명하다. 중국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할 목적으로 루산에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산 곳곳에 남아 있는 비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준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 동굴, 폭포, 오솔길은 절경을 이루어 루산은 중국 정부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 개의 등산로가 있으며, 1,113m 높이의 정상 코스를 등반하는 데에는 약간의 체력과 지구력이 요구되지만 청도의 경관과 정상으로부터 외곽 지역을 둘러싼 곳의 경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루산 국립공원은 빼어난 미적 가치를 가진 문화 경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중국인의 정신적·문화적인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자연환경의 관점에서 루산은 지난 2000년 동안 정신적 지도자, 학자, 화가, 작가들이 매력을 느끼며 관심을 가졌던 지역이다. 루산은 뛰어난 몇몇 중국 고시(古詩)에도 영감을 주었다. 루산의 풍경은 철학과 예술에 영감을 주었고, 수준 높은 문화유산은 금세기까지 섬세하게 완성되어 왔다. 루산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은 신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루산의 중요성은 기원전 3세기 후반에 시작된 한(漢)나라에서 비롯되었다. 한 왕조와 그 이후에 생긴 왕조의 황제들이 이곳에 오랫동안 기념비적 건물을 세우면서 루산은 점차 학문과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명승 혜원(慧遠; 334~416)은 동림사(東林寺)에서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淨土宗)을 창시했으며, 당나라 승려 감진(鑑眞)은 750년경에 일본으로 불교를 전파했다. 당나라 시대(618∼907)에 루산은 다른 교파인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황룡종(黃龍宗)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신적 중심지로서 이런 정체성 덕분에 많은 다른 종교들이 이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장(道藏)>의 편찬자인 육수정(陸修靜; 407~477)은 백운봉(白雲峯)에 도교 사원을 세웠으며, 이슬람 교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루산에 사원을 세웠다. 이들 사원의 정신적·정치적 중요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루산 국립공원에 있는 문화적 유산은 네 그룹이며 고고학적 기념물들, 비문들, 역사적 건물들, 중국인과 외국인의 산장으로 나눌 수 있다. 고고학적 기념물들은 팅쯔둔(Tingzi Dun; BC 4,000)에 있는 거대한 신석기 거주지와 하(夏)·상(商)·주(周)나라 시대(BC 1,600~1,000)의 농경·수렵·어업 거주지 전 생애에 걸쳐서 수시로 루산을 찾았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거처 포양호(鄱陽湖)의 전쟁터 삼국시대(220∼265)이다. 루산의 절벽이나 석조물에는 900개 이상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절벽에 있는 가장 오래된 명문으로 진(秦)나라(265∼420)의 위대한 목가시인 도연명의 작품이 있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송나라(960∼1279)의 유명한 시인 황정견(黃庭堅)과 서예가 미불(米黻), 철학자 주희(朱熹)의 작품이 있다. 또한 명나라(1368∼1644)의 철학자 왕수인(王守仁), 시인 이몽양(李夢陽), 문인화가 왕사임(王思任)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명문이 적혀 있는 평판에는 1050년경에 새겨진 것부터 항일군에게 중국말로 ‘복수와 명예’라는 격려문을 남긴 1938년의 것까지 있다. 루산 국립공원에는 약 200개의 역사적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 동림사가 가장 유명한데 루산 서쪽 향로봉(香爐峰) 끝에 있다. 동림사의 건물들은 기원후 38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수세기 동안 조금씩 중건하였다. 몇몇 법당은 중국 불교와 중국과 일본 간 국가적 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하다. 이 동림사는 중국의 가장 초창기의 정원 사원으로 여겨진다. 오로봉(五老峯) 끝자락에 있는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은 940년에 세워졌지만 사용하지 않다가 주희가 송나라 후기 12세기 후반에 다시 열어 학문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까지 추가 건물을 세워 오늘날에는 사원, 연구실, 도서관들이 있는 복합 단지가 되었다. 루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멋진 휴양지가 되었으며, 중국인과 외국인 방문객을 위해 많은 산장들이 세워졌다. 산장의 형태에는 여러 건축 양식이 반영되었으며, 전체적인 배치는 미국 국립공원과 영국식 정원 설계를 따랐다. 현재 남아 있는 600여 개의 산장 가운데 3곳이 주요 문화 유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1930∼1940년대에 중국 공산당의 공식 하계 수도였으며,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세 차례 이상 마오쩌둥(毛澤東)이 의장으로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