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계사년 마지막 산행에서 태워버린 응어리
언제 ;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어디 : 천마산과 원적산
2013년 마지막 산행을 원적산에서 천마산을 거쳐 계양산까지 가려고 11:30 집을 나섰다.
15:05
천마산 정상에 서니, 중구봉과 계양산이 눈앞에 보인다.
그런데
2013년 일몰이 찍고 싶어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며, 내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던 못된 것들을 꺼내
태워 버리고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한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원적산과 청라지구
오늘 걸어야 할 원적산과 천마산 능선과 계양산
천마산 팔각정에서 바라 본, 2014년 아시안게임 주 경기장 신축공사장
청라신도시와 영종대교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멀리 강화도 마니산
천마산 팔각정에서 부터 천마산 정상까지 산행길
원적산과 천마산 중간 멀리 인천 월미도 앞바다가 조망된다.
천마산 정상의 초소가 조그맣게 조망된다
천마산 정상 올라오는 길
천마산 정상 초소
11:30 집을 나서 쉬엄쉬엄 걸으며 15:05 천마산 정상에 섰다. 빠른 걸음이라면 2시간 30분 거리인데, 3시간 30분 소요.
처음 사진의 오늘 산행 시작 점인 원적산과 멀리 문학산 뒤로 송도국제도시 건물과 팔미도 앞 바다가 조망된다.
부평과 부천
중앙 푸른색 지대가 대우자동차
부평과 부천의 북쪽 풍경- 김포공항방향
계양산
원래 목적은 계양산까지였는데, 행여 남은 날은 날씨가 흐릴까 봐 마지막 일몰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원적산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멀리 한강 건너 고양시
검단 지역과 뒤로 멀리 김포신도시
검단지역과 김포한강신도시 그리고 고양시와 김포시
어딘가 말로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늘 2013년 계사년 마지막 산행을 할 수 있음이 행복이다.
내년 2014년 갑오년은 더욱 건강하여 예전처럼 고산도 오르며 생활하고 싶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소임은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갖고 또한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 할 천마산 팔각정과 원적산
처음 사진의 원적산
인천으로 이사 와서 처음 원적산에 올라, 내가 이사한 곳을 바라보니 그다음은 인천 앞바다였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젠 잊어버려야 할 몹쓸 나의 아픔
아내를 만난 것은 어머니 친한 친구인 아내 이모님 소개로,
1980년 12월 7일 고향에서 처음 만나
내 결혼 조건(1, 키 163cm 이상, 2, 고졸, 3. 부모님 모시는 일)과 결혼 후 아내에 대한 바램에 확인 동의하여,
그날 장인과 어머니 그리고 처 이모님 참석으로 약혼까지 하였고, 불과 한 달도 안 된, 1981년 1월 3일 결혼을 하였다.
정연이를 낳고 10개월 뒤,
터키에 근무할 때 함께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도 어떤 조건의 미비로 함께 할 수 없었다.
그 후
귀국하여 집도 장만하고 그 아픔은 성격이 좋은 아내이기에 묻어버리고 살았는데
다시 바그다드 근무 중, 이란. 이라크 전쟁과 근무 조건의 문제로 휴가 나와 바그다드 대신 리비아 벵가지 지점을
선택할 즈음,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아내가
누님이 아내에게 자영업 조건을 제시하여 갑자기 퇴직하고, 자영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 결국 집도 날리고, 돈도 날리게 되니
못난 나는 그동안 쌓였던 그런 일들과 잘못됨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며,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결국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살고 싶은 욕망은 사라졌지만, 두 딸과 아들이 귀엽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방황하고, 아내는 삶의 현장으로 나가니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차라리 죽어버리지, 죽을 용기는 없어 살아
두 딸에게 학창시절을 힘들게 했다.
사방을 쏘다니며 솔직히 어디서 죽을 것인가를 찾아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죽으려면 두 딸과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살겠다고 나름 노력을 했으나
원체 가진 것이 없어 허덕이며 살 때, 그 사이 두 딸은 어렵게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였다.
두 딸과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워 항상 마음으로 사랑하며 또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본디
내 마음은 모나지 않고 정 많으며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며,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는 아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 깨달아
잘 살 수 있다면 더 욕심 없다.
이젠
영원히 그런 문제는 내 기억에서 태워 버리고, 2014년부터는 사랑하는 마음과 측은지심으로 살아갈 것을
나의 양심에 맹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건강해야 하는데, 요즘 엉치와 어깨와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움직이면 기분 나쁜 통증이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아내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는데 왜 나는 병원에 아니 가고 아프다고 하고 있을까?
(이 글은 2014년 1월 3일 17:00 결혼 34년 기념일에 쓴 글이라 아랫 글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사실 오늘 산행의 속사정은
12월 25일 18시경, 정연이가 남자친구와 싸우고, 울면서 아내에게 전화 한 것에 대해 생각 하며,
아린 마음과 답답함을 정리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아픈 것을 보며 아리지 않는 사람 있을까만,
유독 정연이의 아픔이 내게 더 큰 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40대에 하던 일의 실패와 좌절로 예민한 나이의 정연이는 어렵게 학창시절을 지내야만 했고,
아르바이트하며 성장했기에 못 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에 더욱 아픈 것이다.
정말 그땐 어려웠다.
몇 번인가 나쁜 마음을 먹었는데,
문득 깨달음은 죽으려면 가족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다가 죽자며, 뉘우치고 마음을 다잡고 살기 시작했으나,
가진 것 없어 노동하니 일어서지 못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살았다.
그 사이 두 딸은 성장했고, 겨우 허리를 펴고 살 즈음 딸들에게 지원하지 못한 학업을 아들에게 지원했지만,
아들은 기대와는 달리 학업도 포기하고, 지금 26살임에도 아직 병역도 해결치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새해 2014년 갑오년에는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엎친 데 겹친다는 말이 있는데,
10년간 눈물겹게 모은 돈을 부풀려 준다고 가져간 처제가, 정작 약속한 기일이 지나 벌써 2년이 되는데도 돌려주지 않고,
내 집 장만의 꿈은 허물어져 가고, 2014년 봄에는 정연이 결혼식 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싶은데,
돈 회수가 지금 확실치 않으니 내 속은 시커멓다.
그렇다고
아내를 탓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요즘 유행어- 미리미리 완죤 나 미춰 버리겠다!
낮에 산에서 아내에게 전화해 정연이 문제를 물으니, 다행스럽게 앞으로 절대 싸우지 않기로 화해를 했단다.
약 7시간 산에 머물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둘이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나의 삶에 많은 아픔이 있었던 이유는,
어떤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예방하지 못했고, 정작 일이 터지면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딸 정연이는 문제가 발생키 전에 냉철한 판단으로 예방하고, 일이 터지면 슬기롭게 대처하면 정말 좋겠다.
귀갓 길에
탕수육에 고량주를 마셔 어떻게 계산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집에서 또 소주를 마셨다니,
그리고 아내에게 내 속에 담은 아픈 말을 했다니 정말 미안할 뿐이다.
12월 28일은
아내와 나는 낮에 서울 작은집 영숙 동생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우리 가족 송년 모임이다.
(28일 저녁에)
아내와 둘이 서울 결혼식장에서 돌아와, 시장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하였다.
식사 준비 중에 승연이가 먼저 왔는데, 정연이가 아빠 기분이 어떤지 승연이에게 전화로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정연이에게 남자친구는 저녁 식사에 참석하지 못하는가 물었더니,
회사 동료들이랑 스키장 예약이 되어 함께 하지 못한단다.
2014년 갑오년은
우리 가족 건강하고, 많이 웃으며, 하고자 하는 일 모두 순조롭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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