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민사박물관
The Museum of Korea Emigration History
어디 :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329
한국 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아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입니다.
한국 이민사박물관 전경
이민사 연표(1860~ 현재)
A.D. 372~475
능허대 아래 한나루는 백제시대에 중국과 교류한 곳
1882년 조선과 영국 수호통상조약 교섭차 월미도 정박 중인 영국 배로 향하는 조선 관리들
1882년 화도진에서 서구와 최초로 체결한 조선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집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인천 내리교회
정감이 가는 소박한 교회인데 지금은 공룡보다 더 크고 높게 재건축 되어 위세를 떨치고 있네.
여권
인천항 모습
하와이 이민 모집 광고
하와이 이민의 모집과 송출에 관련된 실절적인 모든 업무는
미국인 데쉴러가 설립한 동서개발회사에서 이루어졌고,
데쉴러는 이와 함께 이민자의 재정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데쉴러 은행을 설립하였다.
이민자의 모집은 개항장 제물포를 비롯한 항구 도시와 내륙 주요 대도시의 기차역, 시장 등에 모집 광고를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하여 이민 사업은 지지부진하였다.
집을 멀리 떠나본 일이 없는 한국인들은 낯선 땅에 간다는 두려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친척과 헤어지고 조상의
분모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때 제물포 웨슬러메모리얼교회(현재 인천 내리감리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존스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
데쉴러의 요청을 받은 존스의 설득과 권유는 우선 그의 교인과 주변 기독교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겔릭 호에 승선한 첫 이민자 중 절반 가량이 내리교회의 신도였으며, 이들은 하와이까지 가는 노정과 도착 후
정착 과정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첫 이민자 수송선 게릭 호(S.S. Gaelic)
이민자의 물품
함하나 할머니의 이민 수송선에서의 고통을 증언
하와이 이민자 명단
게릭 호 모형도
1903~1905 약 3년에 걸쳐 총 64회에 7,415명 송출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하와이 이민자 중 혼기를 놓친 노총각들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진으로 선을 보게 되었다.
하와이에서 다시 멕시코에서 에니껭 작업
중남미 각지로 이민
이민사회의 독립운동
영문 독립선언서
1919년 한글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인쇄
독립 의연금, 독립 공채, 독립 신문
우표
1903년 1월 13일부터 1905년 8월 8일까지 총 64회에 걸쳐 7,415명의 명단
'해외동포에게 엽서 보내기'는 특별 이벤트로 책상 위의 엽서를 써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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