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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세계유산) 종묘(宗廟)의 가을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언제: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종묘(宗廟)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바로 짓기 시작하여 1395년에 궁궐의 왼쪽인 이곳에 자리를 잡아

경복궁보다 먼저 완공했다.

 

그 후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 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 건물의 규모가 커져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 34위를 모셔 두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종묘제례는 국가의 가장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녕전에서는 1년에 2번 열렸으며, 왕이 친히 주관했다.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하였으며, 음악(樂). 노래(歌). 춤(舞)이 일체화한 종묘제례악에

맞추어 진행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다.

제사외에도 종묘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으로 등재되었다.

 

 

  외대문(종묘 정문)

 

 

 

 

 

 

 

외대문(정문)망묘루공민왕신당향대청어숙실(재궁)공신당칠사당정전정전수복방전사청제정영녕전정전 악공청영녕전 악공청외대문(정문)망묘루공민왕신당향대청어숙실(재궁)공신당칠사당정전정전수복방전사청제정영녕전정전 악공청영녕전 악공청

 

 

 

 

 

 

 

 

 

 

 

 

 정전 신위 봉안도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

 

 

 

 

 

 

 

 

 

 

 

 

 

 

 

종묘의 역사

 

년도 내 용
1394년(태조3년) 종묘기공
1395년(태조4년) 9월29일 정전 7실 준공
1395년(태조4년) 윤9월28일 추존 4대(목왕,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새 종묘에 봉안
1398년(태조7년) 2월 종묘 남쪽에 가산(假山)조성
1406년(태종6년) 2월 재궁건립
1421년(세종3년) 정종(定宗)을 부묘할 때 태실(太室)부족으로 송조사조전 전례 (宋朝四祖殿 前例)에 따라 동년 10월 태묘서방에 영녕전(永寧殿) 4실을 건립[12월16일 목조를 영녕전 정전 제1로遞遷하였음]
1546년(명종원년) 정전 4실 증축
1592년(선조25년) 5월3일 임진왜란으로 정전ㆍ영녕전이 모두 병화(兵火)로 소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5월30일 정전 중건(重建) 정전 11실이 됨. 영녕전 10칸 규모로 다시세움
1726년(영조2년) 정전 4실 증수(增嫂)
1836년(헌종2년) 정전 4실 증수(增嫂)
1928년 正殿(太祖→純宗 19室 48位)
永寧殿(穆祖→莊祖 15室 32位/室空間)
功臣堂(太祖부터 純宗까지 83位의 功臣配享)
1931년 육교가설
1945년 종묘대제(宗廟大祭)
1961년 일반공개
1963년 1월18일 종묘 史蹟 125號 지정
1964년 12월7일 宗廟祭禮樂 重要無形文化財 1號로 지정
1969년 순정효황후를 부묘하여 정전 신주가 49位가 됨
종묘대제봉행 재개
10월1일 1회 대제봉행(국가)
1970년 英親王 昇遐
1971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초 일요일에 종묘대제를 봉행키로 결정함.
1973년 영녕전 16실에 의민황태자(영왕) 부묘 총33위가 됨.
1975년 5월3일 종묘제례가 重要無形文化財 56號 지정
1985년 4월15일 정전ㆍ영녕전 일반공개
1991년 영녕전 16실에 의민황태자비(이방자) 부묘. 총34위가 됨.
1995년 12월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19차 정기총회에서 '서울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1997년 5월2일 세계문화유산 표석 제막
2001년 5월18일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

 

종묘 제례 및 제례악

 

  •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2008년부터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행사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문화유산이다. 종묘제례는 왕조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고대중국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중한 조상전래의 제례의식이다. 조선조에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에 행하였으며 1969년 대동종약원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은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 종묘대제에는 종묘제례가 봉행되며 각 제사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초헌, 아헌, 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送神禮)를 갖춘 후에 축(祝)과 폐(幣)를 망료(望燎)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률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종합예술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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