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
어디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2013년 5월 4일 금일 오후 2시에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현판식을 치렀고 TV 중계가 되어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화재 이래
5년 3개월에 걸친 복구를 완료한 숭례문은 중요무형문화재 등 최고의 기술자가 참여해 전통의 기법으로 복구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어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런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해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로로 쓰인 숭례문 현판”
도성 문의 현판은 모두 가로로 쓰여 있지만, 숭례문만은 세로로 쓰여 있다.
이것은 ‘불의 산’이라 일컬어지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관악산의 화기가 강해
경복궁에 화재가 나기 쉬운데, 현판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리면 성문 밑을 막고 누르는 셈이 되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은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으로 알려져 있다.
6.25 때 탄흔
숭례문 성벽에는 석장 이의상과 이재순 그리고 참여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석장 이재순(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숭례문 복구의 핵심인 상하층 문루 목공사의 총책임자는 신응수 대목장(71,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제와(기와 제작)장 한형준 씨(84세,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지난 97년 숭례문 보수공사 때 직접 기와를 올리기도 했던 번와장 이근복 씨(중요무형문화재 제121호)
숭례문 서쪽(좌)16m, 동쪽(우) 53m 총 69m 성곽 날개가 다시 만들어졌다.
숭례문 중앙 통로인 전면 홍예문(虹霓門)
숭례문 중앙 통로인 후면 홍예문(虹霓門)
한 눈에 본 숭례문 홍예문 천장의 용
대문짝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으로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 다음날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붕괴됨.
2013년 5월 4일 5년 4개월만에 복원을 마치고 공개되었다.
성곽 복원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선 "응당 복원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숭례문을 작게 보이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숭례문 복구에 참여했던
장인과 학자들은 "성곽이 복원되면서 숭례문이 조선시대 한양의 진정한 정문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평하고 있다.
우측 후면에서 본 숭례문
뒤에서 본 숭례문
좌측에서 본 숭례문
반영
반영
남산 가는 길에서 본 숭례문
야간에 본 숭례문 - 문이 닫혀있고 사람도 통제합니다.
장중하고 멋스런 숭례문 야경
우측에서 본 숭례문 야경
후면에서 본 숭례문
숭례문 야경
좌측에서 본 숭례문과 남산 타워의 야경
남산타워의 야경
숭례문은
조선시대 외교사절 등이 왕을 만나기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갈 때 통과해야 했던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양 옆으로 성곽이 펼쳐져 있었으나
양쪽 성곽은 대한제국 말기인 지난 1907~1909년 사이 훼손됐다.
'고종실록'에는 1907년 3월 의정부 참정대신(參政大臣) 박제순 등이 고종에게
숭례문 좌우 성곽을 8칸씩 헐자고 요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숭례문 주변에 사람들이 붐비고 수레와 말 등이 복잡하게 드나들며,
전차가 그 복판을 가로질러 다니기 때문에 접촉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6월에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등이
흥인지문(동대문)과 숭례문 주변 나머지 성곽을 모두 헐 것을 왕에게 청해 허락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번 성곽 복원 작업은
이 같이 잘리고 훼손된 숭례문의 일부를 복원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성곽 복원 작업은 2년 넘게 이재순(58)ㆍ이의상(72) 석장이 주도해 연인원 8185명이 참여했다.
복구 작업팀 측에서는 성곽 복원 규모를 본래 더 길게 잡았으나 남대문 시장 차도와 지하철 1호선을 고려해 줄였다.
이들은 "성곽 복원으로 숭례문의 의미와 조형적 가치가 더욱 살아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숭례문 반영
숭례문 반영
서울 성곽길(Fortress Trail)
서울의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터, 숭례문, 숙정문)과
4소문(헤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을 지나는 21km 성곽길은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역사. 문화 탐방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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