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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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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신석정 백목련 햇볕에 묻혀 눈이 부셔 못 보겠다. 희다 지친 목련꽃에 비낀 4월 하늘이 더 푸르다. 이맘때면 친굴 불러 잔을 기울이던 꽃철인데 문병 왔다 돌아가는 친구 뒷모습 볼 때마다 가슴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백목련 낙화소리… 대바람 소리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덜더니 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검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망향의 노래 -신석정 망향의 노래 - 신석정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꽃잎마다 지는 꽃잎마다 곱다랗게 자꾸만 감기는 서러운 서러운 연륜(年輪)을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소리랑 곤때 가신 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어린 손주랑 사는 곳 버리고 온 '생활(生活)'이며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만 싶어 밤을 새운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서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우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
슬픈 구도 - 신석정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작은 짐승 - 신석정 작은 짐승 신석정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을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 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서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꽃덤풀 - 신석정 꽃덤풀 ​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풀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그 마음에는 - 신석정 그 마음에는 신석정 ​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러게 쉬어 가게 하라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 ​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파란 하늘에 백로(白鷺)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