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찔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사람들은 유치환을 가리켜 흔히 `비정(非情)의 시인'
또는 `의지의 시인'이라고 한다. 「바위」는 그에게 왜 그러한 호칭이 따르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썩 알맞은 작품이다. 그가 여기서 노래하는
바위는 바위 그 자체로서보다 어떤 이념 또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에 적합하게 그는 단호한 어조로 시상을 전개하여
나아간다.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작품의 서두는 아주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그
이하의 부분은 이 의지적 선언의 이유를 노래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그는 바위에 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 그렇게 노래하는가?
바위는
무엇보다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애정과 번민에 흔들리는 일도 없으며, 기쁨이니 성냄이니 하는 것들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는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모든 것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비정함 속에서 자신의 단단함을 지킨다. 유치환은 이러한 모습을
의인화하여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라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바위는 마침내 스스로의 생명조차 잊고 모든 흔들림을 초극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에게는 감정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도 춥고 더움이 없다. `흐르는 구름 / 머언 원뢰'라는 구절은 이 초월적 경지를 동양화적인
수법으로 간결하게 암시한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구름', `우뢰 소리'는 바위의 경지에 도달한
미래의 시인에게 주어지는 어떤 외부적 자극을 암시한다. 그러나 모든 감정과 번뇌에서 초탈한 그에게 이러한 자극은 아무런 흔들림도 일으키지
못한다. 구름은 다만 먼 하늘을 흘러 지나가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우뢰 소리 또한 그의 고요함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여 바위가 된 그는 이 모든 것에서 조금도 동요를 느끼지 않는 초연함을 가진다. 구름이 흘러가든 우뢰가 울리든 바위처럼 무심하여 아무런
흔들림도 나타내지 않는 달관의 경지를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거쳐서
「바위」의 주제는 끝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는 어떤 간절한 소망, 즉 꿈이 있어도 결코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노래하지 않고, 스스로가
깨뜨려지는 아픔 속에서도 한 마디 소리조차 하지 않는 바위가 되기를 의지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 어조 : 단호하고 강렬한 남성적 어조
▶ 표현상의
특징 : 상징적 수법으로 자아의 의식 세계를 바위로 표현하고 있다.
'노래' 즉 생명의 기쁨을
거부하는 비정한 의지 속에서 오히려 생명의
참다운 의미를 추구하는 자세가 두드러진 표현상의
특징을 나타낸다.
애련(愛憐), 비정(非情), 함묵(緘默), 원뢰(遠雷)와 같은 한자어로 된
시어 구사로써 의미의 압축을 시도하고 있으나 시어로서는 거칠게
느
껴진다.
▶ 제재 : 바위
▶ 주제 : ① 허무 초극의 의지 ② 생명(현실)의 허무 의식
극복
'名詩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사랑 노래 (0) | 2006.01.20 |
---|---|
세상 읽기/천양희 (0) | 2006.01.10 |
고독과 그리움/조병화 (0) | 2005.12.26 |
귀거래사(歸去來辭)/도연명 (0) | 2005.12.17 |
겨울 바다/조병화 (0) | 200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