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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인간 관계/조병화

 
인간관계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네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오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ㅡ 시집 《공존의 이유》에서


  나에겐 그리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피하며 사는 버릇이
다. 나이들며 이 버릇을 고치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좋아하는 사람도 그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 적당히 살다 적당히 작별
할 사람들이 아닌가.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더라도
다 그런대로 서로 타인이 아닌가. 또한 아무리 싫어하고
미워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 그런대로 또한 인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돌리다가도 생리적으로 다가드는 감정을 억
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풀어놓고 살아야지, 바람이나 구름처럼 살아야지 하면
서 아직 그걸 다 풀어 놓지 못한 옹색한 철학 속에서 스스
로를 지키려 애를 쓰고 있는 거다.
  이 시는 가장 좋아하던 친구 한 사람과 감정이 서먹서먹
하게 되었을 때 같이 술을 나누며 생각하던 쓸쓸한 나의
심정이다. 깊이 사귀고 많은 시간을 같이하고 실로 많은
이야길 했기 때문에 이것이 무너져 가는 아픔은 어느 정리
없이는 좀 견디어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게 남자들 사회에 있어서 그 우정이 상했을 때 그
고립과 분노, 그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나의 시로써
매듭을 지었던 거다.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오늘날의 도시적 우정들, 그 인
간관계에 있어서 나는 나의 경험으로 이러한 뜨거우며 찬
어느 거리를 두고 있는 현대 인간관계를 생각하곤 하는 거
다.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주제가에 흐르고 있는
가사 내용이 먼저 들은 나의 시를 스크린에 반복해 주고
있는 걸 발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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