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의 세인트조지 역사 도시와 방어물
(Historic Town of St George and Related Fortifications, Bermuda; 2000)
세인트조지 역사 도시는 버뮤다(Bermuda) 세인트조지(St George)에 위치하며,
1612년에 세워진 신대륙 가장 초기 시대의 대표적인 영국의 도시 정착지이다. 버뮤다 방어물은 17~20세기에 발달한 포병 기술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 시기 영국 군사 공학 발달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인트조지 역사 마을은 17세기 초에 건설된 후
계속 군대가 주둔했던 요새화된 식민지시대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신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 도시이다.
세인트조지는 신대륙에 최초로 정착한 영국의 식민 도시를 그림처럼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 도시의 방어물은 17~20세기에 발달한 영국의 군사 공학과 포병 기술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에스파냐 선장 후안 베르무데스(Juan Bermudez)가 1505년에 발견한 버뮤다는
이후 에스파냐 인들이 배가 난파할 경우에 대비하여 피난처로 남겨 두었다. 1612년 8월에 정부 관리자,
성직자 및 60명의 정착민들이 세인트조지에 도착하면서 이 섬에 영구 정착이 시작되었다.
그 몇 달 후에는 600여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정착하였다.
그들은 세인트조지 항구와 캐슬(Castle) 항구로 진입하는 초입을 경비하기 위해 포트조지힐(Fort George Hill)에
망루를 짓고 군사 시설의 토대를 다졌다. 식민지 관리가 버지니아 회사[Virginia Company]에서
서머스아일랜드 회사[Somers Island Company]로 넘어가면서 식민지 주민이 대부분이 본섬[main island]으로
이주함에 따라 인구는 1615년까지 150명으로 줄었다. 영국 정부에서 1684년에 이 식민지에 대한 책임을 맡았고,
세인트조지는 19세기 중반까지 수도로 남아 있었다.
이 기간 중 아프리카 인들과 인도인들을 버뮤다로 보냈으며, 현재 다민족 사회의 대다수는 이때 들어온 후손들이다.
20세기에 이 섬의 경제는 선박 건조에 사용하는 삼나무 위주로 형성되었다.1693년에 땅을 받은 마을 거주자들은 임의로 집을 지었고 그 방식이 오늘날 거리와 차선 배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18세기 초엽에는 돌을 쌓아 집을 짓도록 소유자들을 독려하였다. 이때 해안가에 부두와 창고가 건축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이 마을 경제가 불황이었으나 미국 독립혁명[American Revolution; 1776~1783] 기간에 군사 활동으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세인트조지 회사[Corporation of St George]가 1797년에 설립되었고, 1995년에 미국 해군 기지가 폐쇄될 때까지
다음 2세기 동안 군사 요충지였다. 자본이 부족하였지만 마을은 계속 번성하였다. 이후 자유 흑인인 버뮤다 인들이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34년에 노예 해방이 있던 당시 인구의 45퍼센트가 자유 흑인이었다.
4년에 걸친 미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세인트조지는 다시 한 번 활기를 되찾았다.
선박들은 봉쇄를 뚫고 미국 남부 연합의 항구, 특히 윌밍턴(Wilmington;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드나들면서 목화를 받고 무기와 탄약을 실어 나르며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19세기 말엽에는 관광 산업의 발달로 경기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나 관광이 유산에 미치는 위험을 인식한 마을과 회사에서는 일찍이 1920년부터 역사 건축물을 지키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세인트조지는 초기부터 수비대가 주둔하는 마을이었고, 군사 시설은 마을 동쪽에 발달하였다. 많은 군대 막사 가운데 첫 막사를 1780년 배럭힐(Barrack Hill)에 지었고, 뒤이어 19세기에는 고위 장교 관사, 장교 식당, 병원, 주둔군 예배당 같은 건물 들을 축조하였다. 이 막사들은 현지 자재를 사용하여 영국군 표준 양식으로 지었다.
17세기 초엽에는 패짓 섬, 거버너 섬, 찰스(Charles) 섬, 캐슬 섬에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시설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재건을 반복하며 강화하였다 미국 독립혁명이 끝나자 영국은 세인트조지 섬을 해군의 주요 주둔 기지로 만들고 잃어버린 미국 식민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영국은 육군 공병대를 파견하여 기존의 1780년대와 1790년대 군사 시설을 근본부터 재설계하고 재건하였다. 추가된 방어 체계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였다. 세기가 바뀌고 해군 공창 공사를 시작하였다. 조지(George) 요새, 빅토리아(Victoria) 요새, 세인트캐서린(St Catherine) 요새, 앨버트(Albert) 요새, 패짓(Paget) 섬에 커닝햄(Cunningham) 요새를 건설하였다. 1850년대에는 선장 대포가 등장함에 따라 군사 시설을 추가로 변경하고 강화하였다. 커닝햄 요새는 버뮤다에서 가장 중무장한 방어 요새가 되었다.
1880년대에도 좀 더 효율성이 높고 안정적인 포를 제조할 수 있는 강철의 등장을 고려하여 추가 변경이 필요하였다.
1956년에 연안 방어를 끝낼 때까지 군사 시설은 계속 가동되었다. 따라서 이 군사 시설이 3세기 반에 걸쳐 영국 연안 전역의 수비를 담당하였다. 버뮤다의 건축은 독특하며, 17세기 말 이후로 기본 요소는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1층이나 2층 구조가 훌륭하게 균형 잡힌 단순한 가옥은 하중을 견디도록 막벽을 세워 파스텔 색조로 칠하였으며
석판 지붕은 흰색으로 칠하였다. 브리지하우스(Bridge House), 헌터 빌딩(Hunter Building), 화이트홀(Whitehall) 같은
대 저택은 매우 인상 깊은 건축물이다. 이들 건물은 19세기에 지어진 그대로 오늘날 모습과 같으며 멋스러운 발코니와
베란다가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교회도 몇 채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교회인 세인트피터 교회[St Peter's Church]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서 줄곧 사용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 성공회이다. 1840년에 건축한 에버니저 감리교회[Ebenezer Methodist Church]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훌륭한 건축물이다. 이 세계유산에는 섬의 방어물과 함께 마을과 요새 항구로 접근하는 초입을 내려다보는 작은 섬들이 많이 있다. 영국의 해안 방어와 해외 포병대의 거의 전체를 대표하던 군사 시설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거나 고고학 유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방어물은 캐슬 섬[Castle Island], 사우샘프턴 섬[Southampton Island], 세인트데이비드 섬[St David's Island], 거버너 섬[Governor's Island], 패짓 섬, 페리 섬[Ferry Island], 코니 섬[Coney Island]에 있다. 세인트조지 섬에는 게이트 요새[Gate's Fort], 알렉산드라 포대[Alexandra Battery], 앨버트 요새, 세인트캐서린 요새가 있다. 빅토리아 요새는 버뮤다에 얼마 남지 않은 요새 중 하나이다. 마을 자체는 1820년대에 쌓은 서부 보루[Western Redoubt], 세인트조지 요새의 두 요새, 마텔로 타워(Martello Tower), 무기고, 석회 가마로 방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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