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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산수국 - 허형만

 

 

 

 

 

산수국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자주도 아닌

한 달에 한 번 명시를 블로그에 소개하는데,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지난 1월 이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슬픔이며, 아픔이다.

여행길에서도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 돌아와 정작 사진 정리할 때는 그 자리에 서서 하늘 한번 바라보았으면,

가슴 열고 심호흡 한번 했으면 다르게 보였을 것을 하며 후회를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블로그 친구 집에게 마실 갔더니

허형만 시인의 산수국이 올라와 있다.

처음 읽어 본 시인데, 말귀들이 예사롭지 않아 가만가만 읽어보니

뜹뜨름하다가 달콤하기도 하고,

때론

매콤하기도 하여

6월의 명시로 올리며 또한 산수국 전설도 올린다.

 

 

산수국 전설 : 꽃말 - 변하기 쉬운 마음

 

옛날 어느 마을에 꽃을 좋아하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봄이 오자 처녀는 봄꽃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고을 원님의 아들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그 원님의 아들이 꽃나무 한 그루를 주었는데 원님의 아들 생각을 하면서 정성껏 키웠다.

두 사람의 사랑처럼 그 꽃나무는 연자주색 꽃을 탐스럽게 피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연자주색이었던 꽃이 하늘색으로 변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연분홍이 되었다. 처녀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진짜 원님의 아들이 죽고 말았다.

 

처녀의 슬픔이 너무 커서 부모님들은 새로운 혼처를 찾아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혼처가 정해지자 처녀는 원님의 아들 생각을 하며 원님의 아들이 처음 처녀에게 선물한 꽃나무를 보러 꽃밭에 갔더니

연분홍 꽃이 피었다. 다음날 다시 보니 꽃은 흰색으로 변해있었는데

처녀의 예감대로 약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두 번씩이나 약혼자를 잃은 처녀는 슬픔에 앞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방안에 들어앉아 있으니까 해가 바뀌어 부모님들은 다시 결혼을 서둘렀다.

절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부모들은 한 청년을 찾아 강제로 약혼을 시켰다.

또 쪽빛이 바뀌면 어쩌나 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데 꽃은 혼인날까지 하얀 빛깔 그대로였다.

혼인날이 되었는데 처녀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청년은 고갯길을 넘어오다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처녀는 통곡을 하며 꽃이 심어있는 밭을 보니 하얀빛이던 꽃이 연분홍으로 변해있었다.

어머니와 처녀는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처녀의 슬픔이 조금씩 희미해져갔고

처녀는 새로운 청년을 만나 결혼식까지 탈 없이 치렀는데 친구들의 심한 장난으로 숨을 거두었다.

처녀는 통곡을 하며 꽃밭으로 달려갔다. 어제까지 만해도 자주색이던 꽃이 하늘색으로 변해있었다.

처녀는 할 말을 잃었다. 처녀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과부가 되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평생 혼자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결혼식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처녀인 딸을

평생 과부로 살게 할 수가 없어서 다시 부모들은 신랑감을 구해 결혼을 시켰다.

처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꽃밭을 보았다.

꽃은 고운 하늘색 그대로였다. 안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신랑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잠이 들었다.

처녀는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게 꽃밭으로 가보니 하늘색이던 꽃이 밤사이 흰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신랑이 죽었다고 난리가 났다.

"처녀가 예쁘니까 귀신이 샘을 하나 봐 벌써 남자를 다섯이나 죽였어" 마을 사람들은

이제는 처녀를 보면 슬슬 피했다.

처녀의 부모들은 고심 끝에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처녀는 이제 눈물이 말라버렸다. 죽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고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처녀를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두 홀아비가 청혼을 해 왔다.

처녀는 두 홀아비의 청혼을 거절했지만 상대방 홀아비 때문인지 알고 두 홀아비는 양보할 수 없다고 싸움이 붙어

큰 상처를 입은 두 홀아비는 죽고 말았다.

 

처녀는 꽃을 원망할 마음도 없이 그대로 집을 떠났다.

처녀가 떠난 집은 비바람에 허물어지고 잡초만 우거졌다. 잡초 속에서도 해마다 그 꽃은 다시 피어났는데

그것이 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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