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名詩 감상

가을에 - 서정주

 

 

가을에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低俗)에 항거(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을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국화(菊花)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白露)는 상강(霜降)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楊貴妃)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開闢)은 또 한번 뒷문(門)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名詩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이름에게 - 김남조  (0) 2021.12.15
상자속에 숨기고 싶은 그리움 -한용운  (0) 2021.11.10
그리운 등불하나 - 이해인  (0) 2021.09.15
8월 한낮 - 홍석화  (0) 2021.08.13
들길 - 고은  (0) 202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