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低俗)에 항거(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을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국화(菊花)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白露)는 상강(霜降)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楊貴妃)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開闢)은 또 한번 뒷문(門)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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