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
고은
입은 옷 그대로도 왜 그런지 새롭습니다
사람에게는 10년 20년의 가파로운 단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어떤 울음이 잠겨 있습니다
반쯤 혹은 다 물 속에 잠겨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런 사람의 울음을 만나러 나섭니다
어찌 그것을 내가 손쉽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유난스레 서쪽으로 드넓게 트인 날
아침 이슬이 풀 속 깊이 박혀 풀 끝에 맻힌 그것이 스러진 뒤에도
간난아기의 숨은 넋으로 반짝거리며 잘 젖어버리는 들길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들길이 이따금 있어야 합니다
늘 하는 일밖에 모르다가도 수시로 있다가 없어지는 구름 아래
까닭없이 나서는 들길
그러다가 먼 데 가 있는 사람이듯
무엇인가 그리워할 들길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길 오다가다 하늘 속인가 땅 속인가 모르게
누구의 울음소리와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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