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65)/ 라오스 -2
참파삭 문화 지역 내 푸 사원과 고대 주거지
(Vat Phou and Associated Ancient Settlements within the Champasak Cultural Landscape
; 2001)
와트 푸(Wat Phu) 사원
힌두교의 비전과 자연-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표현하고자 한 이 지역의 경관이 1,000년 동안 잘 보존되었다.
산 정상에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축을 이용하여 절, 사당, 그리고 분수를 10km가 넘은 지면에 건축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힌두교의 믿음을 반영하도록 계획하여 주로 크메르 제국과 연관되며,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르는 개발을 대표한다.
와트 푸 사원은
라오스 참파삭 크메르 유적지로 6세기경 메콩 강에서 약 2km 떨어진 이 곳 산기슭에 목조로 처음 건축되었다.
와트 푸는 ‘산사(山寺)’라는 뜻이고,
이 산의 이름은 산스크리트 어로 ‘링카프라와타’, 라오스 어로는 ‘푸카오’라 불리는데
‘남근산(男根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산의 정상은 시바신(神)의 상징인 ‘링검(남근상)’을 닮아있고
이것이 바로 이곳에 사원을 지은 결정적인 이유로서 사원은 이 산 기슭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힌두교에서 이러한 남근상은 매우 신성시되는 것으로서 생명력과 양기, 그리고 생산 능력을 상징한다.
처음 지어진 목조 건축은 9세기에 불타버리고, 그 위에 다시 지금의 사원이 지어지게 되었다.
사원으로부터 평지까지는 7단계의 층으로 이어져있는데
각 층은 7개의 계단으로 되어있으므로 모두 77개의 계단이 되는 셈이다.
크메르 양식의 층계는 가파른 것이 특징인데
이곳의 층계 역시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의 그것처럼 가파르게 되어 있다.
뒤쪽에는 커다란 바위 밑으로 샘물이 나오는데 이 샘물은 당시부터 매우 성스러운 성수로 사용되었다.
사원 바로 뒤쪽으로 조그만 안뜰을 만들어 놓고 사흘에 한 번씩 사원 주위의 크고 작은 ‘링검’들을 모두 모아
이곳에서 바위로부터 이어진 수도를 통해 성수로 씻는 의식을 갖곤 했다.
평지에는 양 옆으로 붉은 사암으로 지은 두 개의 크메르 양식의 커다란 궁전이 있는데 하나는 여자의 궁전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의 궁전으로서 사원을 순례하는 사람들이 남녀로 나뉘어 사원을 참배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닦고 순서를 기다리며 담소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커다란 사암의 바위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벽돌로 제단하고 가공해서 궁전과 사원을 지은 흔적이 궁전 뒤뜰에 남아있다.
궁전의 건너편으로는 역시 이 산으로부터 흘러나온 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장방형 연못이 있는데
당시 악어들을 사육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7세기부터 둥지를 틀고 살아왔던 크메르 인들은 이곳에 처음으로 산기슭에 사원을 짓고
그 밑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2km 앞의 메콩 강까지 이르는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이곳으로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13세기에 이들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여 지금의 캄보디아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그 곳에 거대한 앙코르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14세기 후반에 앙코르 제국은 시암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 거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유적이 이후에
모두 갑자기 사라져버렸는지 오늘날에도 베일에 쌓여있다.
아무튼 크메르 인들은 당시 풍수지리를 참고하여
시바의 상징인 링검(남자의 성기모습을 한 생명력의 상징)처럼 생긴 산기슭에 사원을 만들었고,
수도를 앙코르 와트로 이전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고향인 이곳의 사원으로 해마다 순례를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 이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6월이 되면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악의 여신인 칼리(시바신의 아내 우마의 변신)에게 바쳤다.
당시 제물로 처녀들을 희생했던 돌이 남아있는데
돌에는 악어모양의 홈이 깊게 파여 있고 그 홈을 따라 처녀를 눞힌 다음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옆으로 받아서 칼리에게 바쳤다고 한다.
오랫동안 숲 속에 파묻혀 있던 와트 푸는
15세기 뒤늦게 이곳으로 침투하였던 시암 족에 의해 불교가 전해지면서
사원 안에 있던 칼리와 시바의 석상은 불상으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여러 신들의 조각으로 현란한
힌두 양식의 건축물 내에 불상이 서있는 기이한 형태의 사원의 모습으로 되어있게 되었다.
지금은 17세기 경에 있었던 대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물론 이 사원과 궁전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와트 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세시 후반, 한 프랑스의 여행가에 의해 다시 그 모습을 내보였으나
이미 지진과 관리 부재로 인해 폐허가 된 상태였다.
이 와트 푸의 유적 일대는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유네스코에서 그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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