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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중국 -8) 취푸(曲阜)의 공자 유적

세계문화유산(30)/ 중국


취푸(曲阜)의 공자 유적

(Temple and Cemetery of Confucius and the Kong Family Mansion in Qufu; 1994)

 

 




 




 




 




 




 




 




 




 




 




 




 




 




 




 




 




 




 




 




 




 





공자와 유가 사상의 고향 취푸(曲阜)

취푸는 중국 산둥 성 중남부에 위치한

5천년 문명의 역사와 문물, 유적을 가진 특색 있는 관광 도시이면서 역사 도시다.

이곳은 또한 세계적인 사상가인 공자(孔子)의 고향으로 유명한데 공자의 사당과 공자의 묘가 이곳에 있다.

북으로 산둥 성의 성도인 지난(濟南)에서 160km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지닝(濟寧)에서 45km 떨어져 있다.


이곳은 공자의 고향이라는 꼬리표 덕에 중국 관광 도시 40위에 들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공묘(孔廟)와 공림(孔林), 공부(孔府)는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공

묘와 베이징(北京)의 고궁, 허베이(河北)의 승덕 피서산장은 중국 3대 고대 건축군으로 알려져 있고,

또 공묘의 대성전과 베이징 고궁의 태화전, 태안의 천전은 중국 3대 전(殿)으로 분류되어 있다.


 공묘 동쪽 옆에 있는 공부 역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큰 봉건유족장원이며,

공림도 중국 최대의 인조 원림이면서 역사가 오래된 가족 묘지다.

취푸는 이 3공(孔) 외에도 수많은 명승고적이 있다.

이곳이 공자의 고향이라는 말은

곧 유가 사상의 고향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가 사상가들의 사당과 사원이 있다.


공자의 사당, 공묘(孔廟)

베이징의 고궁, 타이완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 건축이라 불리는 공묘는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춘추시대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를 제사 지내는 곳인 이곳은 처음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 하던 행단에

대성전(大成殿)을 세운 것으로 시작해 그 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는 명, 청대에 완성된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공묘가 있지만

이곳 취푸의 공묘는 공자의 고향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전체의 길이가 약 1km 남짓하며,

면적은 약 22만㎡로서 전체 건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대성문을 기준으로 동, 서, 중삼로로 나뉘며 공묘의 사방에는 붉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공묘의 제일 처음에 보이는 금성옥진(金聲玉振)은

명대 건축물로 사근 팔각의 연화 모양의 정상에는 길함을 상징하는 동물이 새겨져 있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은

베이징 고궁의 태화전에 이은 제 2의 대건축으로 높이 24.8m, 너비 45.7m, 길이가 24.9m이다.

전내 중앙의 금박 입힌 신주를 모시는 곳에는 공자의 소상(塑像)이 안치되어 있고

양 옆에는 제자와 후대의 유가 16체의 소상이 있다.


또 28개의 돌기둥 가운데 정면의 10개 기둥에는 기둥을 휘감은 듯한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성전의 바로 뒤에 있는 침전(寢殿)은 공자의 부인인 올관씨(兀官氏)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북송 때 창건한 것이며 청대에 개축한 것이다.

침전의 바로 뒤에는 공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적전(聖迹殿)이 세워져 있는데

이 안에는 공자의 일생을 소개하는 석각화 120장과 공자 화상이 모여 있으며,

그 중의 하나인 ‘공자 행교상’은 진대의 화가인 고개자(顧愾子)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공자의 가문이 거주하던 장원, 공부(孔府)

공묘의 오른편에 위치한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장원으로 1038년에 세워졌다.

공부는 또 연성공부(衍聖孔府)라고도 불리며, 현재의 모습은 명, 청 양대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역대 황제들은 공자의 자손들을 제후로 대접하여 연성공이란 직위를 주었다.

이곳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며 서로(西路)에는 객실, 동로(東路)에는 공씨 가문의 묘지가 있고,

중로(中路)에는 전반부의 관공서와 후반부의 주택과 화원으로 나뉘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면적은 16만㎡에 이르며 방은 463개나 될 정도로 광대하고 화려한 장원으로

당시 공씨 가문의 권력과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공부의 관아(官衙)는 삼당[대당, 이당, 삼당]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연성공이 공무를 집행했던 관서로 육정은 연성공부의 집실 기구이다. 대당은 중앙의 난각 안에 있는데

연성공이 중요한 의식을 행하거나 정부의 관리들을 맞던 곳이다.

이당은 5개의 방으로 되어 있고, 공문을 받고 발송하거나 연성공을 거들던 관원의 집무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삼당은 이당의 뒤에 있는데 가족 내부의 일들을 처리하던 곳으로

동쪽의 방은 손님을 접대하던 객실로 청대 말기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내택문(內宅門)은 공부의 앞뒤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연성공이 놀던 내택과 관아를 구분 짓는 금문(禁門)이기도 하다.

내택문에는 영벽(影壁)과 가족의 윗어른 및 처녀들이 살던 전당루, 후당루, 내택의 뒤에 있으면서

 철산원(鐵山園)이라고도 불리는 수화원이 위치해 있다. 그

러나 이곳은 현재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 관람할 수 있으며,

제일 안쪽의 정원에는 공자 가문을 소개한 자료관이 마련되어 있다.


공자와 공자가의 묘림, 공림(孔林)

취푸의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공자와 그 자손들이 묻힌 묘소이다.

이곳의 묘가 약 10만기, 담장 둘레만 7.25km로 세계 최대의 씨족 묘지라 할 수 있다.

취푸 시의 북쪽을 따라 1km 정도 숲길을 지나면 지성림(至聖林)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림의 대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공림이 시작되는데 공림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묘비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림의 정문이 지성림방(至聖林坊)이 있고 여기서부터 이림문(二林門)까지 떡갈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다시 이림문에서 왼쪽으로 가면 수수교가 있고

이 다리의 북쪽, 숲 가운데로 들어가면 공자 축제 시 향단을 설치하는 곳인 향전(享殿)이 있다.

이곳은 또 해방 전쟁 당시, 중국의 군사 지도자였던 주더(朱德) 총사령관이 중요한 군사 회의를 연 곳이기도 하다.

공자의 분묘는 향전 뒤쪽에 있는데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씌어져 있다.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고, 돌보지 않은 듯 풀이 우거져 있으며 무덤 가운데 거목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묘를 돌보지 않은 이유는

중국의 대사상가인 공자의 무덤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신념 때문이다.

또 공자의 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 묘(鯉)의 무덤이 있으며,

그 앞쪽에 공자의 학문을 계승한 손자 자사(子思)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 같은 묘의 배치는 공자가 아들을 데리고 손자를 앉아주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