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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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조선 영조(1724~76)때 황해도 곡산 기생 매화가 남긴 매화사(梅花詞)
梅花 노등걸에 봄철이 도라오니
노퓌던 柯枝에 픗염즉도 하다마는
春雪이 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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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의 해묵은 가지에도 봄이 돌아오니 옛 가지에 다시 꽃이 필 듯도 하다만은
때늦은 봄눈이 펄펄날리고 있으니 필지가 의문이구나]
조선시대의 가사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매화타령〉의 첫머리다.
〈매화(梅花)〉
황해도 곡산 땅의 기녀이다.
절세미모에 춤과 노래가 절창이었다. 산골벽지에 어찌 이런 절세미인이 숨어 있었는가.
매화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한량이 많았으나 매화는 정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매화의 냉담한 반응에
무안을 당하고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하루는 해주 땅의 만석꾼이 매화를 취하려 하였다.
"내 너를 취하기 위하여 부인을 친정에 보내고 왔느니라...평생을 호의호식하게 해 줄터이니 나와 함께 하자꾸나."
"지극하신 그 마음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오나 옛말에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 했습니다.
저를 얻기 위해 처를 친정에 보냈다면, 장차 다른 여인을 얻기 위해 저를 내치지 않겠습니까?"
해주 만석꾼은 무안하여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매화의 나이 열여섯이 되던 어느 날.
황해도 관찰사 어윤겸이 순행 중 곡산땅에 이르러 연회를 베풀었는데,
동석한 매화를 보고 지극히 총애하는 마음이 생겼다.
칠순에 가까운 어윤겸이 매화에게 수청을 들라 하였으나 이부자리만 깔고 나가려 하자 왜 그냥 가려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매화는 '비록 기생이기는 하나 모름지기 여인이란 한번 몸을 허락하면 평생 수절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 평생을 의탁할 분을 만나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어윤겸은 비록 천기의 몸일지라도 이러한 정절관을 가진 매화를 존중하여 수청을 폐하고 그만 나가 보라고 하였는데,
관찰사의 위엄으로 충분히 강압적으로 취할 수 있는데도 자신을 존중해 주는 어윤겸의 인품에 감복하여
스스로 정조를 바쳤고 어윤겸은 매화를 극진히 아꼈다.
그러나 이 무렵, 고을 사또 홍시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매화에게 반해 있었는데,
사또는 매화의 어미를 매번 관아로 불러 곡식과 재물을 내리며 몇 달동안 매화를 얻기 위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루는 매화의 어미가 사또에게 여쭙기를
"소인같은 미천한 자를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필시 소인을 쓸 곳이 있어서일 텐데,
어찌 교시하지 않으시는지요? 소인이 오랫동안 은혜를 입어 비록 불속에 뛰어 들라 해도 사양하지 않겠나이다."
"사실은 내 자네 딸을 연모하여 잊을 수가 없네...만약 딸을 데려와 나를 대면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인데 어찌 일찍이 교시하지 않았사옵니까? 종래에 데려오도록 하겠사옵니다."
매화의 어미는 집으로 돌아가 딸에게 편지를 썼다.
'내 이름 모를 병을 얻어 바야흐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너를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장차 눈을 감지 못할 터이니, 속히 말미를 얻어 상면하도록 하라'
모친의 편지를 받은 매화는 어윤겸에게 울며 고하여 모친을 살펴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윤겸은 속히 모친을 찾도록 허락하며 후한 노자까지 챙겨 주었다.
급히 달려온 매화가 어미를 보니, 어미는 사또와의 사연을 얘기하며 함께 관아로 가서 뵙기를 청하였다.
매화가 사또를 알현하여 보니 나이는 겨우 삼십을 넘겼는데,
칠순의 어윤겸과는 비교되지 않는지라 첫눈에 연모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날부터 매화는 스스로 청하여
사또 홍시유와 매일 동침하였다. 두
사람은 매화의 휴가가 끝나도록 흡족하게 정을 통하였으나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홍시유는 울며 하소연 하였다.
이에 매화가 이르기를
"첩은 이미 사또께 몸을 허락하였으니,
이번에 가게 되면 저에게 몸을 빼내어 돌아올 계책이 있으니 오래지 않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정절을 목숨처럼 여기던 매화가 어쩌다가 이렇게 변하였는가!
비록 몸은 늙었으나 어윤겸은 인품과 덕망으로 대하였거늘, 어찌하여 그를 버리려 하는가!
어윤겸에게 돌아간 매화는
어미의 병세는 차도가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하고는 태연하게 다시 어윤겸과 동침하였는데,
열흘이 지난 후 갑자기 병을 얻어 식음을 전폐하였다.
어윤겸은 근심하여 온갖 약과 의사를 불렀으나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져서 병을 얻은 지 열흘이 지나자
홀연히 일어나 속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와 때 묻은 얼굴로 박수를 치며 어윤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혹 만류하기라도 하면 발로 차고 입으로 물면서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였다.
이에 어윤겸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가마에 태워 고향땅으로 돌려보내었다.
훗날 홍시유가 감영에 들어갔을 때 관찰사 어윤겸은 홍시유를 따로 불러 매화의 안부와 보살핌을 부탁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매화는 그날로 곧장 관아에 들어가 홍시유와 동침하였다.
홍시유 또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이렇듯 주지육림에 빠져 있을 즈음, 곡산 땅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고
이 소문은 곧장 어윤겸의 귀에도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홍시유는 어윤겸이 눈치챈 것을 알아채고 급히 휴가를 얻어 상경하여 고관에게 뇌물을 바쳐
어윤겸을 파직하게 하였다.
홍시유가 매화의 주지육림에 빠져 지낸지 두어 달이 지났을 즈음 곡산 땅에서의 임기가 차서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매화를 함께 데려왔다.
그러나 홍시유는 병신년의 옥사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하였다.
홍시유의 참형 소식을 듣자 그의 아내는 매화에게 일러
"나는 이미 마음에 결정한 바가 있으나 너는 나이 어린 기녀로 어찌 꼭 여기에 있을 필요가 있겠느냐.
너의 집으로 돌아가 지내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하며 목을 매어 죽었다.
매화는 두 사람을 합장한 뒤에 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절개를 지켰다.
훗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토록 철저한 정절관을 가졌던 매화가 홍시유를 보는 순간 어찌하여 그렇게 변했는가에 대하여
혹자는 젊은 여인의 욕구가 늙은 남자에게서 느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홍시유를 보는 순간에
그를 무너지게 하였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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