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정희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이는 것이 보이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두어 송이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쓰라린 기억들
강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물구나무서서 매달린 희망 맑디맑은 눈물로 솟아오르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리운 어머니 수백수천의 어머니 달려와 곳곳에 잠복한 오월의 칼날
새털봉숭이로 휘어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돌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둘 트는 것이 보이고
'名詩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마음 - 정채봉 (0) | 2016.08.20 |
---|---|
편지 - 천상병 (0) | 2016.07.20 |
내가 흐르는 강물에 /김남조 (0) | 2016.05.19 |
4월의 노래/박목월 (0) | 2016.04.16 |
오래된 기도/이문재 (0) | 2016.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