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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감상

그대 뒤에 서면 / 황동규

그대 뒤에 서면 / 황동규


그대 뒤에 서면
흐린 들판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 뒤에 서면
같이 걷다 걸음 멈춘
그대 뒤에 서면
모든 것이 새벽 꿈으로 환해진다

석등 뒤에 늦춰 서서
머리 나직이 숙인 또 하나의 석등.

그대 걸음 옮겨 돌다리를 건너면
봄에 새로 깨어나는 시냇물의

아라한들이 저절로 소리내고 있다
몸에 담긴 소리 그대로
드러내는 소리
소리내는 것들이 모두 환하다.

아는가 아는가 새벽 시냇물 빛
돌다리와 그대와 나를 싸고 도는

아라한들의 환한 아랫도리
환한 땅과 하늘이 비치는 빛.

아는가 아는가
따로 기울이던 귀 녹고 혀 녹고 얼굴도 녹고
말 한마디로 더듬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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