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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순천) 태고종 총림 선암사 여름

 

 언제 : 2022년 7월 3일 일요일

어디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장인어른께서 별세하신 지 벌써 1년이 되어 오늘이 첫 기일이다.

 

2022년 7월 2일 토요일

07:45

아내랑 용산역에서 

KTX로 순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본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성하의 초록 세상

작년엔 침통한 마음으로 내려갔는데 

올해는 여행길에 나선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처가에 도착 가족과 함께 아버님 첫 기일을 잘 마쳤다.

 

2022년 7월3일  

일요일 오후 13:30 고속버스로 상경해야 하기에 

덥기 전 선암사를 다녀오려고 혼자 처가를 나서 선암사행 1번 버스로 선암사 주차장 도착

다음 순천으로 나가는 버스 시간은 

11:45분 버스네

 

순천에 내려 올 때면

선암사나 송광사를 찾아 조용히 나를 성찰하기도 하지만,

선암사 숲길을 걷는 일은 기분 좋고, 선암사 승선교 사이로 강선루를 바라보는 맛은 일품이라 

오늘도 선암사를 찾는다.

 

- 저멀리 희미하게 지리산 능선이 보인다.-

 

 

 

 

 

 

 

 

 

 

 

 

 

 

 

- 선암사 부도군 -

 

부도는 모두 정면을 향했는데,

유독 하나는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서 있는 부도가 인상적이다.

 

부도밭에 함께 있는 벽파대선사비(높이 3.75m)와 같은 시기인 1928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산대사 부도(높이 4.1m)로,

사자 네 마리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전남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8호, 8세기 중엽 작품)이나

충북 제천 빈신사터사사자석탑(보물 제94호, 1022년 작품)을 닮았다

 

 

 

 

 

부도밭을 지나 계속 가면

길가에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특이하게도 남녀상이 아니라 모두 남자상이다.

빼어난 조형미를 갖춘 갑진년(1904) 선암사 나무 장승 이후 정묘년(1987)에 새롭게 세워진 나무 장승이다.

갑진년 나무 장승은 1907년 이래 7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국내 최고의 나무 장승이었다.

보통 나무 장승은 10년 정도 지나면 썩어버리는데,

이 장승은 조직이 치밀한 밤나무로 만들어져 쉽게 썩지 않았다고 한다.

 

 

장승 군을 지나 올라가면 좌측 계곡을 건너는 무지개다리 두 개가 나타난다.

두 개 중 큰 무지개다리는 보물 제400호 승선교이다.

 

- 작은 무지개다리 -

 

 

 

보물 제400호 승선교

큰 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 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으며, 홍예석 중간에는 아무기 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재해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승선교는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으며 순조 25년(1825) 해붕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지난밤

숙취만 아니면 견딜만한 더위였는데,

전통 찻집에 들러 숙취도 달래고 더위도 식힐 겸 차가운 오미자차를 마시다.

 

- 오미자 찻잔 -

잠깐의 여유

 

 

 

 

- 선암사 삼인당 -

삼인당 :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장변과 단변이 2.2:1의 비를 갖는 기다란 계란 모양의 연못 속에, 장변 11m, 단변 7m의 크기를 갖는 계란 모양의 섬이

저부(底部) 가까이 4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중도형(中島形) 타원형 연못이다.

 

선암사의 사적에 의하면,

이 연못은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며,

연못의 장타원형의 안에 있는 섬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밖의 장타원형은 ‘自覺覺他(자각각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한 것으로,

이 연못은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삼인당’이라는 명칭과 독특한 양식 등이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 선암사 측백나무 숲 -

 

 

- 선암사 야생차밭 -

삼인당 차밭은 도선국사가 처음 조성하였고,

칠전선원 뒤 차밭은 중흥조 대각국사가, 산밭의 차밭은 선암사 주지스님을 지내신 지허스님이 1996년 조성하였다.

선암사의 야생차밭은 오랜 세월 우리 풍토에 맞게 가꾸어지고 뿌리를 내린

외래종이 섞이지 않은 '자생 차나무밭'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기에 더욱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숭유억불과 일제강점기, 근현대의 고단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선암사 야생차밭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선암사 스님들의 각별한 노력 덕이니, 한국 자생차는 선암사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선암사 일주문(仙岩寺一柱門)

 일주문은 절에서 속계와 법계를 구분하는 경계에 세운 첫 번째 정문으로

문(경계)을 들어서는 순간 부처를 향해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주문은 9개의 돌계단을 앞에 두고 있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2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앞뒤로 보조 기둥을 세웠으나 위로부터 30cm 중간에서 보조 기둥을 잘랐다. 이는 기둥 양 옆으로 설치된 담장 때문인 듯하며, 다른 일주문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배치된 다포식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배치되는 공간포를 앞면에 3구, 옆면에 1구씩 두어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위엄을 더하였다.

앞면 중앙에 ‘조계산 선암사(曺鷄山 仙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선암사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물로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일주문의 뒤편에는 ‘고 청량산 해천사’라는

물 흐르듯 유연한 글씨로 새긴 선암사의 역사를 알려주는 명판이 하나 더 걸려있다.

청량산 해천사는 조계산 선암사의 옛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된 선암사를 심혈을 기울여 중창했던

상월선사가 조계산(장군봉)은 산이 강하고 물이 약한(山强水弱) 지세이며, 절의 위치가 불이 일어나는 아궁이 터와 같은

형세로 인해 화재가 잦다는 당시의 풍수적 믿음에 따라 화재를 예방하려는 방편으로

1761년(영조37년) 산의 이름을 청량산으로 절의 이름을 해천사로 바꿨다.

1824년 해붕대사가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하니

현재 일주문의 ‘조계산선암사’ 현판은 이때 만들어졌고, 뒤편에 걸린 ‘고 청량산 해천사’ 편액은 옛 이름을 기리기 위해 1916년(대정5)년 경 풍관산인 안택희의 글씨로 제작하여 걸어둔 것이다


 

 

 

- 범종루 -

 

 

 

만세루= 육조고사(六朝古寺)

만세루 '육조고사' 현판은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부친인 김익겸(1614~1636)이 쓴 글씨.

 

선암사 만세루는 부석사의 안양루처럼 루 아래로 진입하는 누하 진입의 형태가 아니라 만세루 좌우를 돌아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만세루는 강당으로 학승들에게 강학을 하는 곳이다.

만세루에는 ‘육조고사(六朝古寺)’라고 쓰인 편액이 있는데 ‘고사’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육조’는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를 일조로, 그 법통을 6번째로 이은 분이 혜능선사이다.

그래서 혜능선사를 육조 혜능이라고 부르는데,

‘육조고사’란 ‘혜능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아 선종을 널리 전파하는

유서 깊은 오래된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육조고사 앞에서 본 선암사

 

- 범종각이 멀리 보인다.-

 

 

 

만세루를 돌아 가면 대웅전이다.

 대웅전 마당은 생각보다 넓지 않고 마당 좌우로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 석탑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3층 석탑은 보물 제395호이다.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글씨로

임금만이 글씨 앞에 이름을 새기는 것인데 자신의 이름을 글씨 앞에 쓴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웅전 마당에서 삼층석탑 이외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바로 괘불지주이다.

괘불지주는 9시, 10시, 2시, 3시 방향으로 각각 자리하고 있다. 괘불지주는 법회 시 대형 불화인 괘불을 걸어두는 곳으로,. 겉모습은 당간지주와 비슷하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이다.

대웅전의 특이한 점은 석가모니만 모셔져 있다. 보통 좌우로 협시보살이 함께 하기 마련인데

선암사 대웅전에는 협시보살이 없다. 대웅전 협시보살과 함께 선암사에는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사천왕문이다.

보통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을 만나게 되는데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다.

선암사는 어간문과 협시보살, 그리고 사천왕문이 없는 ‘3無’의 절이다.

그렇다면 선암사에는 왜 이 3가지가 없을까?

선암사는 조계산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인데 이 장군봉이 선암사를 지켜주고 있어 사찰을 지켜주기 위해 사천왕이 자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웅전에 협시보살이 없는 이유는 대웅전에 자리한 석가모니불이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대웅전에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선암사하면 무조건 '늙은 매화'다.

고매 한 그루만 있어도 그 향이 천리만리를 뻗어간다는데 선암사에는 수백 년 된 노매 20여 그루가 향으로 유혹하니

매화가 피는 계절이면 선암사로 달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선암사의 600년 된 토종 매화.

절의 제일 끝단 칠전선원과 종정원인 무우전 사이 차밭 가는 돌담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대략 10그루. 3월 말부터 4월 초 예의 고고한 자태를 다소곳하게 뽐내고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선암사 토종 매화는 향이 아주 짙다. 절정인 4월 초쯤이면 경내가 온통 매화향으로 진동한다.

선방의 한 스님은 돌담 너머 가지를 뻗친 홍매화의 진한 향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오전 9시 전후해선

집중이 안 될 정도라고 말한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지 13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자 왕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선암사의 두 스님이 기도를 시작했고 눌암 스님은 원통전에서, 해붕 스님은 대각암으로 들어가 100일 기도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790년 훗날 순조가 된 '이공'이 태어났다.

훗날 왕위에 오른 순조가

선암사에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 편액과 은으로 만든 향로, 금병풍, 가마 등을 선물했다고 전해지며

인(人), 천(天)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대복전은 원통전 내부에 걸어놓았다.

 

 

 

 

 

 

 

 

 

 

 

- 선암사 와송 -

 

 

 

선암사 뒤깐

선암사에서 어느 보물보다 유명한 것은 바로 뒤깐(화장실)이다.

선암사 뒷간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 볼일을 봐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선암사 뒷간은 천 길 낭떠러지처럼 깊다.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으면 나무판자 하나에 의지해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공'에 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꽃이고 바람인데,

그것을 모르고 평생 꽃과 바람을 찾아 허공을 헤매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득도'의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 시인 -

 

 

태고종의 본산인 순천 조계산 선암사.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 하나 없지만 단청 없는 전각과 색 바랜 기왓장, 고색창연한 돌계단 그리고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매력으로 국내 산사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다.

영화 ‘동승’ ‘아제아제 바라아제’나 드라마 ‘상도’ 등의 촬영지로 애용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의 1.5㎞쯤 되는 흙길은

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최고의 명상로. 도심에서 묻혀온 온갖 번뇌와 번거로운 일상을 벗고

깨달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줄 즈음 무지개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승선교 아래 다리를 건너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면

승선교의 둥근 천장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무더운 날이지만,

11:45

선암사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순천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