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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국보 및 보물)

보물 제1041호 : 양산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梁山 通度寺 靈山殿 八相圖)

 

양산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梁山 通度寺 靈山殿 八相圖)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로,

1990년 9월 20일 대한민국 보물 제1041호로 지정되었다.

 

부처가 태어나 도를 닦고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이다.

가로 151cm, 세로 233.5cm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팔상도는 모두 8폭으로 액자에 끼워

벽에 붙여 놓아 보관하고 있다.

 

이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거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51년(1775)에 여러 화가에 의해 그려졌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위키백과 참조)

 

 

1775년에 완성된 보물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4점은 밑그림인 초본과 나란히 전시해

스케치가 불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過去現在因果經》에 보이는 바와 같이 석가가 이미 보살육도(菩薩六度)의 행(行)을 마치고

도솔천상(兜率天上)에서 염부주하생(閻浮洲下生)의 시기가 왔음을 천인중(天人衆)에 고(告)하여 도솔천궁으로부터

흰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마야부인의 몸에 입태(入胎)하는 내용이 공통 그림 주제로 되어 있다.

통도사의 팔상도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는 맨 위쪽 월륜(月輪)안에 흰코끼리를을 타고 내려오는 보살상과 이를 에워싸고 기악을 연주하며 시종하는 모습의 천중상(天衆像)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단 왼쪽에 마야부인이 여러 시녀를 거느리고 잠든 모습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몽을 묘사한 것이다.

중간 오른쪽에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의 모습이 있고, 하단 오른쪽에는 2구의 신장(神將)이 성을 외호(外護)하고 있다.

건물이나 나뭇가지의 표현 기법은 1728 년작 쌍계사 팔상도에서와 같이 간략한 표현이 아니라

세밀하고 색채가 풍부한 표현이다.

 

 

 

 

비람강생상(毘籃降生相)

 

비람강생상(毘籃降生相)은 마야부인이 룸비니(Lumbini)공원에 출유(出遊)하여 그곳에서 태자 탄생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즉 마야부인 룸비니원출유(藍毗尼園出遊), 불탄우협생(佛誕右脇生), 석범봉접(釋梵奉接), 칠보거수사자후(七步擧手獅子吼), 용왕관불(龍王灌佛), 아사타불인점상(阿私陀佛人占相)등의 여러 모습이 한 도폭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상단부에 불탄생상이 묘사되어 있는데,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로부터 출생하시는 불의 모습과 강탄 후 일곱 걸음을 옮겨,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상단 왼쪽에는 용왕관불상(龍王灌佛相)으로 구름 위의 구룡왕(九龍王)이 청정수(淸淨水)를 토)하여 탄생불의 몸을 씻겨 주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하단 오른쪽에는 아사타(阿私陀 )(Asita)선인점상(仙人占相)으로 아사타선인(阿私陀仙人)이 정반왕(淨飯王)의 궁에 들어가서 태자의 상을 보고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리라 예언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태자가 사문출유시(四門出遊時)에 동문에서는 노인을 만나고 남문에서는 병자를, 서문에서는 죽은자를, 북문에서는 비구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즉 인간세상의 무상과 출가한 사문의 수도생활의 고귀함을 깨달으시는 장면인 것이다.

가운데 쌍송(雙松)의 엉켜있는 모습과 가로지른 전각의 묘사 구도는 4장면을 자연스럽게 분할하여 구분시켜 주고 있다.

1725년작 송광사 팔상도의 사문유관상이나 1728년작 쌍계사 팔상도 사문유관상에서와 같이 빈 공간이 거의 없고, 빽빽하게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점은 역동적 표현과 함께 생동감을 준다.

 

 

 

 

 유성출가상(瑜城出家相)

 

유성출가상(瑜城出家相)은 궁을 버리고 출가하는 모습의 그림이다.
상단에 태자가 차닉(車匿 )(Chandaka)과 함께 백마건척(白馬건陟 )(Kantaka)을 타고 성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때 제천(諸天), 야차신(夜叉神)등이 와서 사족(四足)을 받들고 신중(神衆)들이 수종(隨從)하는 모습이 서운(瑞雲)의 활달한 필치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하단 가비라성(迦毗羅城 )(Kapila-Vastu)내에는 탁자에 기대어, 혹은 비파를 안고 잠들어 있는 야수다라(耶輸陀羅 )(Yasodhar■)와 채녀(채女)들이 묘사되어 있고, 맨 아래 오른쪽에는 성문에 기대어 잠든 위사(衛士)들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차닉(車匿)과 건척(건陟)이 돌아와서 정반왕(淨飯王)에게 태자의 출가를 고(告)하여 모두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화면을 가로지른 지그재그식 성벽은 석가가 출성하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구분해주는 구도로 사용되고 있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수도상은 출성 후 십년 수행하는 모습의 그림이다.
하단에 태자가 말에서 내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 천신인 제석천이 태자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다.

삭발하고 있는 태자앞에 꿇어 앉아 있는 차닉(車匿)과 비탄(悲歎)하여 울부짖는 듯이 표현된 건척(건陟)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오른쪽 아래에는 태자와 고별하고 성으로 돌아가는 차닉(車匿)과 건척(건陟)이 묘사되어 있다.

상단에는 고행림(苦行林)에서 수행을 마친 다음 니연선하(尼連禪河 )(Nairanjan■)에 목욕하고 난타파라(難陀波羅 )(Nandabala)의 유미(乳미)공양을 받으시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배경이 되는 산악의 묘사가 청록산수(靑綠山水)를 연상케 하며 괴탈감을 갖고 있는 암석과 토파(土坡)의 필치가 돋보인다.

특히 상단 맨 뒷쪽에 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설산이 구름에 감싸인 채로 백색 처리의 효과가 잘 되어 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중앙 오른쪽 보리수 아래 결가부좌한 석가 앞에는 각종의 무기를 든 마군과 칼을 든 마왕 파순(波旬 )(P■piy■s)의 모습이, 또 한편에는 마군 퇴거의 모습이 율동적이고 생기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극적인 표현은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48일을 정진하여 지금까지 그를 유혹하던 온갖 마중(魔衆)을 항복받고 명성(名星)을 보시고 오도(悟道)하시는 모습을 가장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단에는 마군(魔軍)이 퇴거(退去)하는 모습과 상단 왼쪽에는 항마상(降魔相)의 부처 두광에 표현된 과거칠불(過去七佛)이 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팔상도중 가장 표현적이고, 또한 석가가 인간에서 부처가 되는 획기적인 순간으로, 즉 불교의 시발점을 여기에 둘 수 있기 때문에 그 도설(圖說)의 중요성은 대단한 것이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이는 부처 성도(成道) 뒤에 처음으로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하게 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상단에는 수미단상에 보관을 쓰고 천의(天衣), 화만(華만), 영락(瓔珞)을 걸친 설법하는 부처와 그 주위에는 협시보살과 보살중(菩薩衆), 천중(天衆), 외호신중(外護神衆)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부처 위쪽에는 제불(諸佛)의 내영상(來迎像)이 있다.

하단에는 보탑(寶塔)과 그 위에 합장의 불입상(佛立像), 좌우측에는 십방세계(十方世界)의 불(佛), 신중(神衆), 성중(聖衆)이 묘사되어 있다.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부처가 구시나가라(拘戶那竭羅 )(Kusirnagara) 쌍수림(雙樹林)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이다.
석가의 열반은 비록 육신은 없어졌으나 그가 남긴 법은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광경이다.

하단 부처가 열반에 드신 모습은 의와우협(倚臥右脇) 저지(著地)하여 우주(右주)로써 머리를 괸 자세로 표현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비탄하고 있는 비구상, 합장한 보살상, 외호(外護)하고 있는 신중상(神衆像)이 묘사되어 있다.

상단에는 불의 입멸(入滅) 후 다비(茶毗)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중앙에는 불입멸(佛入滅) 후 다비시(茶毗時)에 시자(侍者)를 거느리고 내려온 마야부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1775년에 제작된 작품으로서

「예천용문사팔상도」(1709년), 「송광사팔상도」(1725년), 「쌍계사팔상도」(1728년) 등보다

다소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일부 박락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8폭이 완전하게 잘 남아있으며 화면 구성이 뛰어나다.

 

많은 인물과 사건을 수목과 바위, 건물 등으로 적절하게 구분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수목과 바위는 청록산수에 수묵기법을 혼용하여 일반산수화적인 요소도 보여준다.

인물은 생동감이 넘치며 건물은 공포와 단청까지도 세밀하게 묘사되었고 심지어는 화문석의 문양까지도

자세하게 표현되는 등 세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

 

통도사의 영산전 팔상도(八相圖)는 1775년(영조 51년) 포관, 유성 등 10여 명의 화원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팔상도란 불전도(佛傳圖)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석가의 일생을 팔상으로 나누어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들 팔상에 대하여 명칭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강도솔(降兜率), 탁태(託胎), 강탄(降誕), 출가(出家), 항마(降魔), 성도(成道), 설법(說法), 열반(涅槃)의

내용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팔상을 십이상으로 하거나 세부 묘사법의 차이는 있으나

가장 보편적이고 불화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라 하겠다.

석가의 팔상이란

<1>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2>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3>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4>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5>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6>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7>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8>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가리킨다.

 
이 팔상에 의하면 석가의 일생은 천(天), 인(人), 불(佛)의 삼상(三相)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중 석가의 불상은 성도상(成道相), 설법상(說法相), 열반상(涅槃相)인 것이다.

보통 석가의 설법 내용을

경전상으로《화엄경(華嚴經)》,《아함경(阿含經)》,《방등경(方等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열반경(涅槃經)》으로 그 순서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경전 내용을 팔상의 위에서 보면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은 불상(佛相)으로서 석가 생애상에서 현현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화엄경은 석가 성도(成道)의 상을, 법화경은 전법륜(轉法輪) 설법의 상을, 열반경은 입열반(入涅槃)의 상을

각각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월인석보》에 판각인화로 된 팔상도가 들어 있고, 그 서문에 ‘세간에서 부처의 도리와 출처시종을 알고자 하여도 불과 팔상에 지나지 않는다 ’고 서술되어 있어서 당시 팔상도에 대한 인식을 짐작케 한다.

 

 

영산은 영축산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던 곳인데,

바로 이 영산을 이 땅에 재현한 것이 영산전이다

 

- 통도사 영산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