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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북 여행

(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8) : 속리산 법주사의 국보와 보물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8) : 속리산 법주사의 국보와 보물 - 1

(명승 제61호) - (사적 제 503호)

 

 



 언제 : 2019년 2월 9일 토요일

어디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옛말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처럼 최첨단 기술과 고도의 산업 그리고 문화 시대에는 강산은 조석 간에도 변한다고 한다.


07:00

집을 출발

고속도로 출근 시간 전에 안산 구간을 통과하기 위하여 일찍 나섰다.


당연히 예전처럼 말티재를 넘어 갈 줄 알았는데,

속리산 IC에서 장안면을 지나 서원리 소나무를 보느라 잠깐 머물고, 삼가터널과 갈목터널을 지나니

 곧 정이품송이 보인다.


10:00

정이품송을 보고

속리산 법주사 앞 상가에서 아침겸 점심을 들고


11:00

법주사 일주문에 들어선다. 

 

  

보은군 장안면 장안리- 동학교단의 중심지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의 도피처로 동학교도의 중심지(1893년)였고,

장안리에서 약 10km 거리의 보은읍 북실마을에서

 1894년 12월 동학군은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보은동학농민운동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법주사 앞 상가

다른 절 앞 상가에 비해 이곳 상가는 매우 번창하다.


 

 ▲

법주사 일주문과 법주사 오리(2km)길

 일주문

호서제일가람

사찰의 경내와 외부와의 경계를 나타낸다.

속리산대법주사

 ▼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

법주사와 속리산 가는 갈림길에 예전엔 없던 부도군



세조의 길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복천암을 다녀온 길을 새로 조성

 ▼ 

 




작은 문장대

속리산 문장대 가는 길의 작은 문장대 모형의 바위

 

 

 ▲

하마비

세조가 왔다 간 절이라 하마비가 있나 보다.

 

 

 

 가람배치 안내



법주사 지정문화재현황(2009.09.11)


국보 (3점)

1. 쌍사자석등 (국보 제5호)

2. 팔상전 (국보 제55호)

3. 석연지 (국보 제64호)


보물 (12점)

1. 사천왕석등 (보물 제15호)

2. 마애여래의 상 (보물 제216호)

3. 신법천문도 병풍 (보물 제848호)

4.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5. 원통보전 (보물 제916호)

6. 법주괘불탱화 (보물 제1259호)

7. 소조삼불좌상(3구) (보물 제1360호) 

8.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361호)

9. 철확 (보물 제1413호

10. 복천암 수암화상탑 (보물 제1416호)

11. 법주사 희견보살상 (보물 제1417호)

12.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 (보물 제1418호)


지방유형문화재 순조대왕태실 외 21점 - 문화재 자료 2점 - 사적 제503호 - 명승 제61호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외 1점






 




 


봉교금유객제잡역비(奉敎禁遊客除雜役碑)

 1851년에 왕명에 의해 속리산에 들어와 놀지 말고 승려들에게는 함부로 잡역(부역)을 시키지 말라고

 왕이 비변사를 통해 내린 명령을 이 비를 통해 알린 것이다.

그만큼 속리산의 법주사는 위엄 있는 사찰로 일종의 금표의 역할을 한 셈이다. 



수정교

피안의 세계와 사바의 세계의 경계

세속의 온갖 번뇌에 찌든 영육이 저 다리를 건너면 부처님 세상에 발 들여 놓는다.



▲ 

금강문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문


 

 

중앙 어칸은 통로로 이용하고

양쪽 어칸에는 1974년에 조성한 금강역사 2위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법주사의 사천왕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워진 법주사의 정문이다.

몇 차례 고쳐지으면서 조선 인조 2년(1624) 벽암 대사가 중창을 하기  전까지 몇 차례 다시 지었다.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자들이다.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 들이다. 

  ▼ 

법주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현존 한국 유일의 목탑(木塔) : 팔상전(捌相殿·국보 55호) 

 

이전에 신라의 황룡사에 목탑이 있었고, 화순 쌍봉사에 목탑이 있었으나 모두 화마가 삼켜버려

현존하는 한국 유일의 목탑이 팔상전이다. 

 


팔상전의 총 높이는 22.7m, 평면은 8m의 정방형으로,

전체적인 기단의 형태는 정사각형의 돌을 맞춰 높이 1.34m의 기단부를 형성하고,

그 위에 목조로 5층 탑신부를 짜고, 가장 위쪽에는 철재로 제작된 상륜부를 두고 있다.


기단은 다듬은 돌로 낮게 2단을 쌓고 그 위에 갑석을 얹고 각 면의 가운데에 돌계단을 두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의 문을 내어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전체 높이에 달하는 중심기둥을 세웠다.

보를 위에 앉은 4층 높이의 내부를 3층까지 올라가는 외부 틀 등의 여러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틀 위에는 틀이 받치고 있는 처마가 다섯 층의 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목탑에서 볼 수 있는 노대는 생략되고 창문이 있다. 


팔상전의 공포형식은 l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식, 5층은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첨차는 상단부 1층에서 5층까지 모두 직선으로 처리되고, 하단부는 1층에서는 크고 작은 두 개의 S자가  

연결된 쌍 S자형이고, 2층에서 5층까지는 직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팔상전이란 의미는 문자 그대로 여덟 폭의 그림이 있는 법전이란 뜻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를 여덟 개의 장면을 나누어 설명한 그림인 팔상이 모셔진 곳이다.


팔상전에서는 동쪽의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라고 하는 입태(入胎)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라고 하는 탄생을 시작으로 남쪽과 서쪽, 북쪽으로 회전하면서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입멸(入滅)에 이르기까지 8폭의 탱화를 배치했다.


사천주에 의해 형성된 네 면의 벽에 각각 2폭씩의 탱화와 불상 한 존씩을 배치하여

우요삼잡(右繞三團) 할 수 있는 예불공간으로 꾸며진 것이 팔상전의 공간구성이다.

대부분 사찰의 팔상전에 모셔진 팔상도는 불단을 향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법주사의 팔상전은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한가운데 정방형의 네 벽을 돌아가면서 각 벽에 두 폭씩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벽면을 보며 돌아가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없다.


팔상도의 8폭을 전부 보기 위해서는 팔상전 내의 정방형의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이를 따라 돌다 보면 결국 가운데 벽 심초석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셈이다.



팔상전 풍경

법주사 팔상전 풍경소리는 다른 절의 풍경소리와는 완연하게 다르다.

속리산을 달려 내려온 바람이 멈추지 못하고 법주사 높이 솟은 팔상전에 부딪혀 풍경 울리는 소리는

수도하는데 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청아하여

법주사를 찾은 관광객일지라도 그 풍경 소리에 마음의 평안을 갖게 된다.

 ▼


 ▲

대체로 우리나라 불탑이 석탑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팔상전은 탑이 아니고 목조 건축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팔상전이 목탑이냐 전각이냐의 구분은 가장 쉽게 상륜부를 보면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각은 용마루가 있지만, 탑의 꼭대기에는 상륜부가 있어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탑이라고 한다.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를 보면

사모정이나 육모정, 팔각정의 꼭대기에도 탑의 상륜부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절병통을 올려놓은 것이 탑과는 다르다.

  

 


사람이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마음을 주었다는 의미이다.


나는 불자도 아닌데,

유난히 법주사 팔상전이 이따금 그리웁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늘을 기다려왔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달려 내려온 바람이

법주사 경내를 지나다 5층 팔상전에 부딪히는 바람의 소리가 바로 풍경 소리이다.

그 소리는 천상의 것으로

그윽하고 청아하여 이곳 외엔 들을 수 없고, 들으면 기쁨이 샘솟는다.


내 나이 68세

언제 다시 법주사에 다시 온다면 터벅터벅 산길 걸으며 "이 뭣고 다리" 건너

 복천암 올라 맑은 석간수로 세상 번뇌 씻어낸 후

 천상의 소리인 풍경 소리 들으며 아름다운 팔상전을 돌고 돌리라.


법보신문의 글이 향기로와 이곳에 올린다.

 

여명의 붉은 빛이 미륵대불
이마에 내려앉을 즈음 산사가 품어온 국보도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현존 한국 유일의 목탑(木塔) 팔상전(捌相殿·국보 55호) 풍경 소리가 고즈넉한 도량에 퍼져 가면
석련지(石蓮池·국보 64호)는 돌 속의 연꽃을 피워 낸다.

 

그리고 
이내, 햇살에서 떨어져 나온 금빛 한 줄기가 쌍사자 석등(雙獅子 石燈·국보 5호)을 밝히는데,
1000여 년의 세월을 버텨 온 두 마리 사자는 1000여년의 미래도 끄떡없다는 듯
우람한 근육질의 허벅지를 당당하게 내 보인다.

 

한국이 자랑하는 국보, 그것도 무려 세 점을 한 공간, 한 찰나에 볼 수 있는 건 법주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