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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중국 -21) 용문석굴(龍門石窟; Longmen Grottoes; 2000)

세계문화유산(44)/ 중국


용문석굴(龍門石窟; Longmen Grottoes; 2000)

  

 




 




 




 




 




 




 




 




 




 




 




 




 




 




 




 




 




 




 




 




 




 




 




 




 




 




 




 

용문석굴(龍門石窟)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대동의 운강석굴(雲崗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힌다.


허난 성(河南省) 뤄양(洛陽)의 남쪽으로 14km 정도 이수(伊水)를 따라 내려가면

동서 양안의 석회암 산허리에 위치한 불교 석굴이 나온다.

그 암벽이 마치 우뚝 솟은 궐문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이궐(伊闕)' 또는 '용문(龍門)'이라 불렸다.


커다란 굴은 서산(西山)에 28개, 동산(東山)에 7개, 그 외에도 2,000여 개 정도의 작은 굴과 감실이 있다.

북위(北魏)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494년(태화 18)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隋), 당(唐), 북송(北宋) 등 각 시대마다 계속하여 조성되었다.

서산(西山)에는 가장 오래된 고양동(古陽洞)을 비롯하여

선무제가 발원한 빈양동(賓陽洞)과 연화동(蓮華洞), 위자동(魏字洞; 제17동) 등 북위 말기의 석굴이 많다.


운강석굴에 비해 탑굴이 없는 불상 중심의 석굴뿐이지만 불상은 중국식 복식을 한 상현좌(裳懸座)가 발달했다.

빈양중동이 용문 북위굴 중에서는 최대이다.

빈양, 남북동과 약방동(藥方洞)의 건설은 북위 때 시작되어 북제, 수까지 계속되었다.

초당 전기에는 위왕태(魏王泰)가 빈양 3동을 다시 보수했고,

재발동을 만든 후 그 곳에 저수량이 쓴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를 세웠다.


초당 후기는 용문석굴의 최성기로 경선사동(敬善寺洞), 쌍동(雙洞; 제7, 8동), 만불동(萬佛洞),

사자동(獅子洞), 혜간동(惠簡洞), 노용동(老龍洞; 제12동), 봉선사동(奉先寺洞)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당의 고종(高宗)이 발원한 봉선사동의 비로자나불은

 이 시기 최대의 것으로 672년(함형 3)부터 675년(상원 2)까지 만들어졌다.

수, 당의 굴은 서산 북쪽 끝에서 시작되었는데

측천무후 시대(690~705) 말기에 정토동(淨土洞), 극남동(極南洞) 등이 남쪽 끝까지 이르러

서산에는 더 이상 석굴을 뚫을 곳이 없게 되었으므로

동산(東山)에 간경사동(看經寺洞), 뇌고대동(擂鼓臺洞) 3동 등 여러 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당의 석굴은 대부분 성당(盛唐)까지 만들어졌는데 그 후로는 쇠퇴하였다.

그리고 북위의 석굴에는 불상 외에 불상 조성에 관한 글을 돌에 새긴 것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들은 <용문이십품(龍門二十品)>, <용문오십품(龍門五十品)>으로 불린다.

이 용문석굴은 허난 성과 뤄양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며,

명성에 걸 맞는 규모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을 보러 뤄양에 들르는 여행객이 대부분일 정도다.

현재는 2,345여 개의 석굴, 2,800여 개의 비문, 50여 개의 불탑, 10만 개 정도의 조각상이 남아있다.

용문석굴은 현존하는 종교, 미술, 서예, 음악, 의료, 건축 등 방면의 살아있는 역사 자료이다.

따라서 '대형 돌조각 예술 박물관'이라고도 칭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