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한용운
나는 당신의 눈썹이 검고 귀가 갸름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사과를 따서 나를 주려고 크고 붉은 사과를 따로 쌀 때에 당신의 마음이 그 사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둥근 배와 잔나비 같은 허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나의 사진과 어떤 여자의 사진을 같이 들고 볼 때에 당신의 마음이 두 사진의 사이에서 초록빛이 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발톱이 희고 발꿈치가 둥근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나의 사진과 어떤 여자의 사진을 같이 들고 볼 때에 당신의 마음이 두 사진의 사이에서 초록빛이 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발톱이 희고 발꿈치가 둥근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위의 인용한 <당신의 마음>은 크게 3연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마다 눈썹과 귀, 둥근 배와 잔나비 같은 허리, 당신의 발톱과 발꿈치와 같은 외형적인 모습을 ‘보았다’는 긍정과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다’는 부정의 반복시구反復詩句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라는 시적주체와 볼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다.
우선 당신이란 시적주체는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에 대한 전통적 의미와 동일하게 볼 수 있다. 한용운에 있어 님은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의미로 표현될 수 있다. 만해의 기본사상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의 영원한 이상이요 본체인 ①불타佛陀 또는 중생衆生이다. ②조국祖國 또는 민족民族일뿐만 아니라 ③이성異性이요 ④문학文學인 것이다. ‘님’은 현대어로 표기하면 ‘임’으로, 사모하는 사람 즉, 그리움의 대상을 지칭한다. 인용된 작품의 당신이란 의미 역시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당신의 마음’ 역시 “님의 침묵”의 ‘님의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의 긍정과 부정과 같은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각 연마다 외형적인 모습은 볼 수 있지만 내면적인 당신의 마음은 볼 수 없는 긍정과 부정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시적화자가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토록 사모하고 사랑하는 ‘님’이었지만 그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애달파하는 시적대상이자 주체인 ‘당신’인 것이다.
반면, 첫째 연의 ‘당신이 나름 주려고 딴 사과 속으로 당신의 마음이 들어가는 것’이나 마지막 연의 ‘당신이 떠나면서 당신의 마음이 나의 큰 보석 반지 너머로 얼굴을 가리고 숨는 것’은 “님의 침묵”의 다름 아닌 이별이자 침묵과 동일하다. ‘가리고 숨는’ 소극적인 이별 가운데 혁명가요 독립운동가의 만해 한용운을 발견하기가 왜 이리도 힘들고 벅찰 뿐일까. 아니 소음으로 가득한 이 시대 앞에 한용운의 침묵은 왜 이리 빛을 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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