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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구례) 52년 만에 찾은 산동 산수유길

 

언제 :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어디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길

 

 

52년 만에 찾은 산동면 중동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친구 고향이 구례라 겨울 방학 때 구례를 방문했었다.

구례 읍내에 살던 친구 따라

내 이름과 같은 친구가 산동에 있다며 생전 처음 산동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나 하룻밤 그 친구 집에서 자고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에서 세수도 하고 아주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도 하였는데

그곳이 산동면인데 동네 이름은 확실히 기억할 수 없네.

 

05:30

인천 집에서 지하철 첫 차 탔더니 일러 햄버거와 커피로 아침 요기를 마치고 

07:12

용산역 출발

09:38

 구례구역 도착하는  KTX 안에서 늘 내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추억을 꺼내보았다.

 

그날 반갑게 맞아준 우정에

가끔은 안부라도 전했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고 지내다 정작 산동을 다녀와야겠다는 그 이후

더 미안해 이번엔 찾지 않고 가만히 다녀오련다. 

 

 

- 기차에서 본 보리가 자라는 들 -

많이 망설였다.

구례 산동 산수유길이 이른 봄 전국적 유명세를 탄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태 찾아보지 못하다가 나이 일흔이 지나

마침 주중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나 산수유꽃이 조금은 늦은 감이 있으나

1박 2일 남도 꽃 여행길에 오른다.

 

- 구례구역에서 본 섬진강과 지리산 -

 

09:38

구례구역 도착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구례 버스터미널 가는 버스 기다리는 동안 

섬진강과 구례 교 그리고 멀리 지리산 노고단, 오산 정상 턱의 사성암을 담아 보았다.

 

 

구례구역에서 당겨본

중앙의 지리산 노고단(1,507m) - 우측 먼 봉우리는 반야봉(1,732m)

 

 

명승 제111호 -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求禮 鼇山 四聖庵 一圓)

우측 높은 산을 오산(531m)이라 하며,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원효대사, 도선·진각국사가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

오산 사성암 일원은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

 구례읍 등 7개면과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우수한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의 사찰 건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구례교 -

 

구례구역은 행정구역으로는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나, 구례의 길목인 구례교를 건너면 구례군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의 여행은 느리지만,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구례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여 분 지나 구례 공용버스 터미널에 도착 산동행 버스 시간이 남아

옛 친구를 그리워하며

읍내를 잠시 돌아보았으나 워낙 많이 변하고 기억도 가물하였다.

 

10:30

다시 산동면으로 가는 버스는 화엄사 방향 지리산 아래 마을들을 들러 

11:10

 산동면 중동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산수유길

우리나라 최대 산수유 군락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민들의 생활 속에 스며든

산수유 농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탐방로이다.

산동면 곳곳의 마을길이 지닌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총 5코스 12.4km로 조성되었으며,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천 년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독특하고 아름다운 산수유마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산수유길 코스

1코스 : 꽃담길+꽃길= 3.6km - - 2코스 : 사랑길=3.1km - - 3코스 : 풍경길 1.7km

 4코스 : 천년길= 2.6km - - 5코스 : 둘레길 = 1.4km

 

 

 

 

산수유 사랑공원에서 본 산동 산수유길

 

 

 

 

 

 

 

 

 

 

- 산수유 시목 안내판 사진 -

 

산수유 시목

산동면 계척 마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로 알려진 1,000년 수령의 할머니 나무가 있고,

인근 달전 마을에도 역사 깊은 할아버지 나무가 있다.

- 산수유 시목 -

 

 

 

 

 

 

개울 따라 저만치 우측 언덕에 정자가 보인다.

평소 내 여행에서 가장 많이 담는 사진이 정자이고 정자 문화를 좋아하기에

오늘도 

첫걸음을 그곳으로 향한다.

 

나지막한 언덕 방호동천이란 큰 글자가 새겨진 바위 위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지은 정자 그아래 지리산 계곡물이 흐른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지방유지들에 의해 세워진 방호정은 내가 기대했던 조선의 정자는 아니었지만,

지리산 깊은 골 나지막한 언덕에 정자를 짓고 매년 봄과 가을 시사회를 열어 암울했던 시대의

음풍농월(吟風弄月) 흥취를 계승해 온 것은  과연 큰 산 아래 있는

마을답다는 생각이다.

 

 

 

 

- 방호정 후면에서 본 전경 -

 

이곳에서 보니 

구례는 섬진강 유역의 너른 들과

지리산 만복대에서 발원한 서시천을 따라 좌우에 너른 들이 이곳 산동면까지 어어졌구나.

 

방호정과 방호 동천(方壺洞天)을 새긴 암벽

 

 

 

지리산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개울

 

 

 

 

 

 

 

빨간 설치물이 뭘까?

 

 

 

 

 

 

노란 산수유 숲 아래 초록 새싹들이 곱고

산수유 숲 사이사이로 이어진 도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산동애가

 

이렇게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에도 아픔이 있다.

 

 ‘산동애가’는

오빠 대신 처형장으로 끌려간 19세 처녀가 지어 불렀다는 애달픈 노래다.

백부전은 실존 인물로서

구례군 산동면 상관 마을에서 5남매 막내로 19살 나이에 국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부전의 본명은 백순례(白順禮), 노리개처럼 예쁘다고 하여 부전이라 불렀다는데.

큰오빠 백남수가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죽고,

둘째 오빠 백남승이 여순사건으로 처형됐으며,

셋째 오빠 백남극(나중에 여순사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또한 끌려가게 될 상황에서

백부전은 가문을 잇도록 하기 위해 대신 죽음을 자청하고 나섰단다.

 

죄 없는 양민들이 숨죽이며 살아가던 암흑의 시절,

산수유 꽃처럼 아리따운 열아홉 살 처녀가 형장에 끌려가면서 불렀던 가슴 저린 ‘산동애가’는

지금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로 재판도 없이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의혹만으로 사람을 총살하고

아들 대신 딸을 대살하는 상황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 역사이다. 

 

 

산동애가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한 채로

까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 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 혼자 총소리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